(16)동래 정씨(東萊鄭氏)-442,363명
(16)동래 정씨(東萊鄭氏)-442,363명
  • 정복규
  • 승인 2014.07.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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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씨는 대부분 신라 6부촌의 진지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신라 유리왕 때 지백호가 정씨로 사성(賜姓)된 것이 정씨의 시작이다.

동래정씨의 시조 정회문(鄭繪文)은 고려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 1세조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이다. 그 후 안일호장을 지낸 정문도(鄭文道)를 중시조로 한다. 후손들이 동래에 터를 잡으면서 동래를 본관으로 삼았다.

정 항은 청백리로 이름이 높아 고려사에 오른 인물이다. 30년 동안 벼슬을 지내고 죽었으나 초상 치를 한 섬의 곡식조차 없었다. 왕이 그의 청빈함에 놀라 쌀 1백 섬과 베 2백 필을 하사하고 친필로 시호를 내렸다.

그의 아들 정 서는 국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고려 인종과 동서 간으로 내시중랑을 지냈으나 의종이 즉위한 뒤에 모함을 받아 동래로 귀양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임금을 그리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후대 사람들이 이 노래에 그의 호를 붙여서‘정과정곡’이라 불렀다.

세종 때 벼슬길에 오른 정갑손은 청렴결백하고 서슴지 않는 직언으로 이름이 있었다. 그의 동생 정창손은 세조의 집권에 참여한 공으로 세조, 성종 대에 벼슬이 크게 올라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14세손 정난종(鄭蘭宗)에 이르러 동래정씨는 명문의 반석을 더욱 굳혔다. 성리학자인 정난종은 판서를 거쳐 우참찬에 이르고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다. 성종 14년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외교가로도 수완을 보였으며 서예에도 뛰어났다. 원각사비 글씨는 바로 그가 쓴 것이다.

그의 네 아들 중 정광필(鄭光弼)은 중종 때 영의정에 오르고 당시에 어진 정승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그의 손자 정유길은 대제학, 좌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자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정광필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 중심의 사림세력이 모두 화를 입을 때 임금의 노염을 사면서도 이상파 소장학자들을 두둔, 희생을 막았다. 그의 집은 당시 서울 남산 아래 회동(지금의 회현동)에 있었다. 이곳을 근거지로 정씨 일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으며 그 후 이들을 회동정씨라 불렀다.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은 전북 완주군 상관면 월암리에서 전주의 명문으로 꼽히는 동래정씨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22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의 학유, 예조좌랑, 홍문관수찬 등 벼슬을 지냈다.

실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자신을 조정에 천거한 이이를 비판한 것이 선조의 진노를 사 관복을 벗은 것으로 되어있다. 결국 낙향한 정여립이 처음에 터를 잡은 곳은 김제시 금산면 동곡마을이다.

정여립은 그 뒤 산 속의 섬으로 불리는 진안군 죽도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에서 서당을 짓고 학문을 가르쳤다. 그래서‘죽도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또 이곳에서 무예를 가르치고 600여 명을 모아‘대동계’를 조직한다. 1587년 정해왜변 당시 전주부윤 남언경이 도움을 요청하자 정여립은 대동계를 모아 왜구를 격퇴했다.

실록에 의하면‘정여립은 대동계원을 모아 치밀하게 거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탄로 나고 조정에서는 즉시 체포령을 내린다. 정여립은 죽도로 도망쳐 그곳에서 자결했다’고 기록됐다. 이 사건이 바로 선조 22년(1589)에 일어난 기축옥사다. 기축옥사는 조선조 최대의 옥사다. 정여립 역모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다가 죽거나 사형당한 사람은 1천 명이 넘는다. 조선의 4대 사화에서 죽은 사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일제침략의 난세 속에서 5천 년 간 이어온 조선의 얼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운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도 후손이다. 유학자이자 사학자인 그는 해방 이전에는 연희전문과 이화여전 등에서 국문학을 강의했다. 시대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국학 발굴에도 힘썼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낸 정양모는 정인보의 아들이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정진숙(을유문화사 사장), 정태성(부산성창목재 회장), 정한수(노동부장관), 정진동(교통부장관), 정범모(한림대교수), 정진황(대전신학대학장), 정석모(국회의원), 정진길(국회의원), 정인섭(동양방송편성부장), 정달영(한국일보편집위원), 정범모(서울사대학장, 충북대총장), 정진우(변호사), 정현식(변호사), 정종식(대검공안부장), 정한모(문예진흥원장, 문공부장관), 정운수(해운공사 사장), 정순응(강릉명주병원 원장), 정경모(해군소장), 정일환(성균관재단이사), 정윤모(변호사), 정운조(변호사), 정운경(중앙일보이사), 정지철(변호사), 정경걸(변호사), 정석영(변호사), 정진태(육군소장), 정대연(서울기업사장), 정수기(검사), 정진환(태조산업 이사), 정진홍(서울대교수), 정영한(주택은행장), 정상명(서울지검검사), 정진황(대전신학대학장), 정휘동(국회의원, 퍼시픽호텔 회장), 정경모(일본동경병원 운영), 정순(일본동경병원 운영), 정우창(은행장), 정경식(대검 공안부장), 정진규(시인), 정창영(연세대교수), 정하복(기업인), 정진웅(서울대교수), 정용길(독일교수), 정채진(경북도지사), 정진방(재미, 경제학박사), 정용인(판사), 정도영(육군준장), 정진권(육군소장), 정극수(서울지법부장판사), 정진규(검사), 정진우(영화감독), 정준모(보사부장관), 정순석(검찰총장), 정경모(변호사), 정규웅(중앙경제신문국장), 정인규(국제종합금융사장), 정우식(미캔자스대 교수), 정문영(일진금속 대표), 정희경(이화여고 교장), 정진영(조흥은행 지점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동래(東萊)는 현재 부산과 양산의 일부 지역을 차지했던 옛 행정구역으로 경상남도 남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동래군(東萊郡)으로 고쳐 동평(東平)과 기장(機張)은 동래의 영현으로 삼았고, 동래는 양주(良州 : 梁山)의 관할로 개편하였다. 1510년(중종 5)에 삼포왜란으로 왜관을 폐쇄하였다가 1547년(명종 2)에 다시 왜관을 설치하면서 동래를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950년부터 3년간 임시 수도이기도 하였다가 1963년 직할시로 승격하였다. 1973년에는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폐합되었으며,1994년 부산광역시로 개편되었다. 동래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동래김씨(東萊金氏), 동래이씨(東萊李氏), 동래임씨(東萊林氏), 동래장씨(東萊張氏), 동래정씨(東萊鄭氏), 동래정씨(東萊程氏), 동래조씨(東萊趙氏) 등이 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는 동래정씨 집성촌이다. 이곳은 소가 누워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고 있는 형세라 해서 와우망월산이라 부른다. 이 산의 이름을 따 우망골(牛望-)이라 했던 것을 고종 때에 음이 같은 글자를 따 근심을 잊고 사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우망골(憂忘-)로 고쳤다.

마을 전체 170여 가구 중 160여가구가 모두 동래정씨로 27세손부터 34세손까지 8대 한 핏줄이 모여 산다. 처음에는 경북 안동군 구담리에 살다 성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12세손 정균령이 자손이 번창할 곳이 못 된다 하여 약 2백40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동래정씨는 조선시대에 모두 72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문과 196명, 무과 30명, 사마시 483명, 역과 4명, 의과 1명, 음양과 3명, 율과 6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동래정씨는 1985년에는 총 98,423가구 414,785명, 2000년에는 총 137,524가구 442,36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만9천여 가구,2만8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79,749명, 부산 59,761명, 대구 39,675명, 인천 8,839명, 경기 35,419명, 강원 8,452명, 충북 13,145명, 충남 27,121명, 전북 33,133명, 전남 10,007명, 경북 42,729명, 경남 50,286명, 제주 6,466명이다. 부산,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79,195명, 부산 57,457명, 대구 45,327명, 인천 16,037명, 광주 4,557명, 대전 12,814명, 울산 15,149명, 경기 66,998명, 강원 7,089명, 충북 13,085명, 충남 15,212명, 전북 26,105명, 전남 5,640명, 경북 35,518명, 경남 35,885명, 제주 6,295명이다.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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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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