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안동 김씨(安東金氏)(구파)-425,264명
(18)안동 김씨(安東金氏)(구파)-425,264명
  • 정복규
  • 승인 2014.07.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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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이다.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한편 본관이 같으면서도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계통을 안동김씨 구파,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계통을 안동김씨 신파로 구분한다.

안동김씨 구파는 김방경 이후 가문이 번성하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손자가 계속 재상의 지위에 올라 고려 말에 최고 가문의 지위를 누렸다. 그의 현손인 김사형이 조선개국 1등공신이 되고 태종조에 좌정승에까지 오름으로써 조선조에서도 가문의 세력을 유지, 발전할 수 있었다. 안동김씨 구파의 분파는 김방경의 현손을 파조로 하여 나누어진다.

충렬공 김방경은 병부상서를 지낸 김효인의 아들이다. 고종 때 음보로 16세에 산원이 되어 관직에 나갔다. 여러 관직을 거쳤고 서북면을 두 번 진무하여 서북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원종 때는 몽고의 침략에 항복한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의 환도 문제로 원과의 사이에, 또 왕실과 무인정권과의 사이에 갈등을 나타내고 있었다. 개경으로의 환도는 몽고에 대한 완전 항복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삼별초를 비롯한 무인들은 반대한 반면 몽고 세력을 등에 업은 무인 집정자들로부터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던 왕실측은 환도를 서둘렀다.

당시 고려의 대표적 장수였던 김방경은 몽고 장수 등과 함께 진도를 함락하고 이어 제주로 옮겨간 삼별초의 반군까지 쳐서 평정했다. 원종 말에서 충렬왕초에 원의 강압에 의해 여원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그는 중군장, 또는 도원수로 고려군을 거느리고 출전했다. 제1차 정벌 뒤 충렬왕 4년에 그는 반역을 꾀했다는 무고를 받아 혹독한 고문을 받고 원으로 압송되기도 했다.

김 질은 세조의 집권 과정에서 사육신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세조 정권에서 크게 출세한 인물이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한 다음 해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위해 거사를 꾀했다가 여러 번 기회를 놓치자 발각이 두려워 고변, 사육신 사건을 일으켰다.

김수동은 재치가 넘쳐 연산군 폭정 때 처벌을 받지 않으면서 많은 문신들의 화를 면하게 했다. 중종반정에 참여, 정국공신2등으로 좌의정에 승진, 영가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4년 뒤 영의정에 올랐다.

김자점은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1등에 올랐다. 그의 손자가 인조의 딸 효명옹주와 결혼하자 왕실의 외척으로써 실권을 잡고 세력을 떨쳤다. 1649년 인조가 죽고 효종이 즉위하자 김경록, 송준길 등으로부터 국정을 농하고 조정을 어지럽힌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된다. 그의 파직으로 가문의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적의 군대에 포위되자 3천8백여 명의 의병으로 7일 밤낮을 버틴 끝에 3만여 명의 왜군을 사살하고 전사한 김시민 장군도 후손이다.

백범 김 구는 항일민족 운동가이자 위대한 민족주의자이다.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을 역임하면서 1928년 이시영, 이동령과 한국독립당을 조직, 당수가 되어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의 의거를 지휘했다. 1944년 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된 후 조국의 광복을 맞아 귀국한다.

이승만 측이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여 1948년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북한에 가서 정치회담을 열었으나 실패한다. 남한만의 정부 수립에 참가하지 않고 중간파로 남아 있다가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졌다.

현대 인물은 김태동(보사·체신장관, 경제학박사), 김신(교통부장관, 독립기념관이사장), 김용우(국방부장관, 배재대학장), 김명회(국회의원, 경제학박사, 청주대학교 총장), 김재광(국회의원), 김학묵(보사부차관), 김사달(의학박사, 박애의원장), 김재익(경제학박사, 청와대경제담당수석비서관), 김재섭(의학박사, 적십자병원부원장), 김태길(철학박사, 서울대교수), 김사우(문학박사, 이화여대교수), 김재관(공학박사, 인천대대학원장), 김재호(의학박사, 가톨릭의대교수), 김국진(정치학박사, 서울대교수), 김용회(도로공사부사장), 김상균(수산의원장), 김원회(부산대교수), 김용원(동아병원장), 김경회(부산지검장), 김태조(변호사), 김차회(대구지검부장), 김사만(변호사), 김양남(변호사), 김상훈(변호사), 김종표(서울지법판사), 김상형(변호사), 김용연(부산지검검사), 김회선(서울지법판사), 김재홍(경기공업개방대교수), 김영수(청주대교수), 김형연(청주대교수), 김태성(충북대교수), 김충회(충북대교수), 김태룡(의학박사, 재미), 김길성(육군소장), 김종찬(육군소장), 김재덕(국세청장), 김인회(산림청장), 김동철(법무부교정국장), 김용태(대흥기계공업 상무이사), 김태동(변호사), 김태형(변호사), 김섭(변호사), 김재현(변호사, 재미), 김재헌(충북은행장), 김태옥(국민대교수), 김태유(서울대교수), 김윤회(경찰서장), 김재갑(호고당 대표)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1世 ○원(源), 22世 영(榮)○,23世 ○묵(), 24世 재(在)○,25世 ○회(會), 26世 태(泰)○, 27世 ○식(植), 28世 용(容)○, 29世 ○교(敎), 30世 종(鍾)○, 31世 ○우(雨), 32世 병(秉)○, 33世 ○희(熙), 34世기(基)○, 35世 ○현(鉉), 36世 수(洙)○, 37世 ○동(東), 38世 연(然)○, 39世 ○혁(赫), 40世 진(鎭)○, 41世 ○영(泳), 42世 근(根)○, 43世 ○병(炳), 44世 효(孝)○, 45世 ○용(鏞), 46世 택(澤)○, 47世 ○목(穆), 48世희(熹)○, 49世 ○규(圭), 50世 련(鍊)○, 51世 ○준(浚) 등이다.

본관 안동(安東)은 경상북도 안동시의 지명으로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으로 개칭했다. 조선시대에 안동대도호부로서 경주와 함께 경상좌도(慶尙左道)의 대읍으로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안동 본관 성씨는 안동강씨(安東姜氏), 안동고씨(安東高氏), 안동권씨(安東權氏), 안동김씨(安東金氏.구), 안동김씨(安東金氏), 안동남씨(安東南氏), 안동노씨(安東盧氏), 안동류씨(安東柳氏), 안동문씨(安東文氏), 안동박씨(安東朴氏), 안동배씨(安東裵氏), 안동서씨(安東徐氏), 안동안씨(安東安氏), 안동우씨(安東禹氏), 안동유씨(安東劉氏), 안동이씨(安東李氏), 안동임씨(安東林氏), 안동임씨(安東任氏), 안동장씨(安東張氏), 안동전씨(安東全氏), 안동정씨(安東鄭氏), 안동조씨(安東曺氏), 안동천씨(安東千氏), 안동최씨(安東崔氏), 안동추씨(安東秋氏), 안동허씨(安東許氏), 안동황씨(安東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안동시 일원, 충북 청원군 오창읍 일원, 충북 증평군 증평읍 일원, 충북 괴산군 불정면 탑촌리,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원,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경북 예천군 감천면 일원, 전남 고흥군 도덕면 도덕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120명이 있다. 문과 319명, 무과 61명, 사마시 716명, 역과 10명, 의과 5명, 음양과 2명, 율과 6명, 주학 1명 등이다. 한편 과거 급제자는 구파와 신파의 구분이 안 된 것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안동김씨는 1985년에는 총 95,736가구 398,245명, 2000년에는 총 132,645가구 425,26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만7천여 가구,2만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05,121명, 부산 25,309명, 대구 27,481명, 인천 15,121명, 경기 50,284명, 강원 20,139명, 충북 25,503명, 충남 28,472명, 전북 10,137명, 전남 6,661명, 경북 59,374명, 경남 24,085명, 제주 553명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94,981명, 부산 27,861명, 대구 32,603명, 인천 24,279명, 광주 2,937명, 대전 12,312명, 울산 8,887명, 경기 87,728명, 강원 16,050명, 충북 25,397명, 충남 17,932명, 전북 8,274명, 전남 3,787명, 경북 41,780명, 경남 19,516명, 제주 940명이다. 대구, 경북, 충북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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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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