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뭄 풀릴까?..."돈 더 풀어 경기 부양" 실효성 의문
돈가뭄 풀릴까?..."돈 더 풀어 경기 부양" 실효성 의문
  • 강민우 기자
  • 승인 2014.07.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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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넘쳐 사절'하는 은행권...넘치는 자금 은행에 맡기려는 대기업과 대비

넘치는 자금을 은행에 맡기려는 대기업과 돈이 너무 많아 받지 않으려는 은행이 맞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대기업과 은행권 사이에서 과거의 '갑을관계'가 역전된 진풍경이 벌어진다.

중소기업들은 돈을 못 빌려 안달인데 일부 대기업은 넘치는 돈을 맡길 데가 마뜩잖아 고민이다. 은행들이 저금리 탓에 역마진이 난다며 예금을 마다한다.

기업들이 은행에 맡기는 돈은 대부분 여유자금이다. 금액이 크다 보니 금리가 0.1% 포인트만 달라져도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이 차이 난다. 그래서 대기업 자금 담당자들은 은행, 보험, 증권사 등에 돈을 나눠 굴리며 ‘금리 협상’을 시도한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한꺼번에 수천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대기업의 자금 담당 부서장은 은행들에 ‘슈퍼 갑’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서로 자신들한테 돈을 맡겨달라고 굽신거리던 금융사들이 되레 튕긴다. 최근 우리은행은 “수백억원을 예금할 테니 연 2.5% 우대금리를 달라”는 지방의 한 기업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은행 측은 “꼭 받아야 하는 거래선이 아니면 역마진 때문에 거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예금을 받으면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초단기대출(콜론)로 운용해야 하는데 워낙 시장금리가 낮아 '역(逆)마진'이 난다는 것이다. 장기로 굴리려 해도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해 대출해줄 곳이 별로 없다는 하소연이다.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돈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기업들을 서로 경쟁 은행에 떠넘기는 현상도 벌어진다. 같은 은행원들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영업 부서가 어렵사리 기업 고객을 뚫어 예금을 끌어왔는데 이 돈을 굴려야 하는 자금 부서가 퇴짜를 놓기도 한다”고 전했다.

은행권에 예금을 기피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긴 것은 올 봄 이후의 일이다. 연초 고금리 특판 예금으로 저마다 수신기반 확충에 '올인'했던 모습과는 영 딴 판이다. 반면 대출을 늘리기 위한 '영업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시중자금의 예금 '쏠림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데 비해 대출은 잔뜩 움츠러든 탓이다.

이에 따라 각 은행 자금시장본부엔 비상이 걸렸다. 높은 금리로 유치한 자금은 넘쳐나는데 마땅히 돈을 빌려줄 만한 곳이 없어서다. 계속되는 시중금리 하락세에 맞춰 은행들은 예금금리를 연초보다 평균 1%포인트 가량 내렸다. 그런데도 예금 증가세는 꺾일 기미가 없다.

난감한 처지에 놓인 은행들은 신용대출 영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통상 은행들은 대출모집인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고객들을 끌어 모은다. 그런데 최근에는 신용대출을 확대하는 것에도 대출모집인을 동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은행들이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요새 직장인 치고 한번 쯤 휴대폰이나 문자로 신용대출 권유를 안받아본 경우가 드물 정도다.

결국 넘치는 돈이 문제다. 고금리 특판 예금이 부메랑이 돼 수익성이 악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돈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은행들이 앞 다퉈 국고채 투자 등 채권시장에 뛰어들고 있기도 한다.

현재 국내 100대 기업의 잉여현금이 12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다.

기업들은 그러나 돈을 쓰기 싫어서 남아도는 게 아니라 쓸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전략 담당 임원은 “신규 투자 관련 기획안이 수도 없이 쌓여 있지만, 각종 규제와 노사 문제 등으로 검토만 하고 보류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 돈이 넘치는데 정부가 돈을 더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하니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돈이 시중에서 얼마나 잘 도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통화승수는 지난 5월 19.4배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다.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제대로 안 도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정부의 재정금융 담당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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