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과 '자살보험금'
샤일록과 '자살보험금'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7.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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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안흘리고 살 떼가려다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샤일록-. 영국의 위대한 문호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굳이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대충 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샤일록은 피도 눈물도 없는 '수전노(守錢奴)'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살점을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재판장 포오셔의 희대의 '인육(人肉)재판'  판결이 나오면서 정점에 이른다. 이를 통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베니스의 상인은 1596년 매혹의 도시 베니스를 배경으로  세익스피어가 재치있는 필체로 써내려간 낸 명작이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지나친 욕심과 이 때문에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처한 남자를 살려낸다는 줄거리다.  유대인인 샤일록은 돈을 빌려준 계약서를 근거로 엄격한 법의 집행을 주장한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법을 넘어선 자비를 요청한다. 여기에 셰익스피어는 ‘살(인육) 재판’을 통해 독자들의 사고를 자극하고 논쟁으로 유도하는 것이 흥미롭다.
 
필자는 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세익스피어 문학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세익스피어의 세계적인 명작인 베니스의 상인, 그리고 샤일록을 감히 언급하는 것은 이 작품이 고전적인 금융생활의 법칙과 판결의 지혜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6세기 말로부터 무려 400여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서도 오늘날까지 정의와 자비 또 법과 도덕의 문제를 잘 상징하는 까닭이다.
 
또 다른 작품 하나가 생각난다. 재작년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탄 ‘피에타’라는 영화다.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이른바 보험사기의 잔인한 피해 실상을 실감케 하는 영화로 필자의 뇌리에 남아 있다.
 
불쌍한 중소기업 사장님은 사채에 손을 내밀고, 기한이 되면 어김없이 악마 같은 빚쟁이가 찾아온다. 악마는 불쌍한 사장님의 한쪽 손을 프레스에 밀어 넣어 절단시킨다. 아니면 빌딩에 올라가 밀어버린다. 딱 죽지 않게, 딱 보험금 받아먹을 정도로만 ‘반병신’을 만드는 것이다. 사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생기고...
 
우리나라 사채업자들의 범죄적 실태는 주변에서 충분히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과중한 빚의 결말은 안타깝게도 항상 불행하고 비극적이다. 마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금전차용계약서를 근거로 ‘1파운드의 살덩어리’를 요구했듯이 말이다. 영화 피에타는 그런 사채업자를 둘러싼 자살이나 보험사기같은 인간비극에 눈길을 돌린 점이 강렬한 메시지로 남는다.
 
그동안 생명보험업계의 최대 현안이었던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에 대해 지난 주 금융감독원이 최종적으로 지급 결정을 내렸다. 생명보험은 자살면책 기간 2년을 넘긴 고객이 자살하면 일반사망으로 보고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2010년 4월 표준약관 개정 이전 ING생명 등 대부분의 보험사는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 준다고 해놓고 일반사망금을 지급해 왔다. 재해로 인한 사망보험금의 경우 일반 사망보다 보험금이 2배 이상 많다.
 
ING생명과 같은 상황에 처한 보험사는 푸르덴셜생명과 라이나생명을 뺀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대부분 생보사다. 생보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면 소급 적용되는 보험금만 2천18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지급될 보험금까지 합치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전망이다.
 
하지만 생보업계는 자살보험금은 ‘약관상 표기실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생보사는 자살은 재해로 볼 수 없다며 이번 제재안에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내비친다. 일부에선 이번 제재와 보험금 지급문제를 ‘법정공방’으로 끌고 갈 채비를 한다고 한다.
 
학계나 법조계, 보험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살'을 '재해'로 인정해 타당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전후 관계를 덮어두고 최대치인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당국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세간에서도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에 대해 보험금을 받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한 자살이라고 판단을 내린다면 이 경우에는 법률적으로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자살보험금을 지급받는 경우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일반인 처럼 컨트롤 할 수 없다거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또한 최근에 갑작스러운 우울증이나 급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라면 자살이라도 우발적 행동으로 간주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해석이다. 확실히 어떠한 이유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것이 증명돼야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이 약관에 명시되어 있다는 핑계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당국은 이번 결정에 약관의 토씨까지 들이대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들이 수세에 몰리자 이중잣대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여론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에 대해 샤일록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베니스에서 샤일록은 자신에게 돈을 빌리러 온 거상 안토니오에게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할 경우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위의 살점 1파운드를 떼어 내 줄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다가 돈을 못갚게 되자 이 계약서를 손에 쥐고 돈을 갚으라고 압박한다.
 
샤일록은 "난, 계약대로 하겠다"고 큰소리치며 더욱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편다. 그래서 빌려준 돈의 10배의 거액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며, 계약서대로 ‘한 줌의 살점’을 요구한다. ‘수전노’ 샤일록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이론을 펼쳐도 결론은 샤일록의 참패로 나온다. 명장면인 재판 과정에서 샤일록 쪽으로 잘 진행되다가 결국 재판장의 "1파운드의 살은 가져가되, 피는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말 한 마디에 판세는 급변한다. 샤일록으로서는 실행 불가능한 판결에 밀린다. 결국 그는 유죄판결을 받아 재산을 몰수당하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받는다. 원래 샤일록은 단순한 악역이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를 비극적으로 묘사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베니스에서 샤일록은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에 제법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 시대라도 '유대교의 이론'으로 보면 당연한 일을 했다. 이 때문에 멸시받고 조롱받고 증오를 받았다. 그래서 샤일록은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계약서를 흔들며 대항한다.
 
우리나라 보험사들도 지금 샤일록을 생각할 지도 모른다.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면 손실이 큰데다 약관상 실수로 너무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감원의 이번 결정은 보험금 지급에 있어 절대적 기준은 ‘약관’이라는 대원칙을 거듭 확인해 줬다. 또 이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추가 징계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뒀다.
 
우리나라에서 보험업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샤일록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평소 안면이나 거절할 수 없는 특별한 인연으로 가입하는가 하면 중간에 해약을 해도 원금도 못찾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탓이다. 그래서 종전에 보험사를 떠올리면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 같은 유대인 이미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또한 과거 한국 보험회사들이 약관규정을 들이대며 서민들을 많이 울렸던 것도 사실이다.
 
샤일록과 피에타가 보험사들의 이미지와 겹치는 시점에서 이번에 자살보험금 파동은 앞으로 한국 보험업계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방향타가 될 것이다. 보험업계는 이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 땅의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마주앉아 호흡하는 국민의 금융기관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 보험업계는 평소 ‘약관 제일주의’ ‘약관 만병통치주의’의 신봉자들이다. 다른 보험은 가입자가 피해를 입어도 약관대로라며 밀어붙이기 일쑤였다. 아무리 가입자들의 원성이 자자해도 보험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자살보험금의 경우에만 예외를 들어 지급을 기피하는 것은 뭔가 일관성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 다른 사안을 놓고선 샤일록같이 “계약대로 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자살보험금문제 만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꼴이다.
 
우리나라 보험사들은 설계사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른바 ‘갑질’을 하는 등 문제가 많다. 보험해약시 소비자들로부터 해약공제를 하고 보험설계사로부터 또 수당을 환수해 이중이득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보험설계사들에게 수당으로 지급했던 돈을 소비자들이 '보험 해지 및 취소' 했다는 이유로 설계사로부터 수당을 다시 환수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국내 26개 보험사는 고객 보험 해지·취소 명목으로 설계사들로부터 무려 1218억원을 돌려받았다고 최근 금감원이 밝혔다.
 
보험업계는 샤일록이 나중에 "1파운드의 살은 가져가되 피는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재판장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바꿔먹은 사실을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만일 금감원의 판정에 불복, 법률쟁송으로 시간을 끌면서 가입자 유가족들을 외면한다면 지금 ‘호미’로 막을 일을 나중에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
 
보험회사들이 이번 자살보험금 처리를 놓고 400여년 전 세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설파한 것처럼 ‘피를 한방울도 안흘리고’ 살을 떼어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혹시라도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이야 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는 일이다.
 
지금으로선 생보사가 계약서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처리수순이다. 보험사는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돈’이 아닌 ‘신뢰’가 우선이다. 이번 조치에 불응하는 보험사는 앞으로 금융소비자들로부터 곧바로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날씨는 무덥지만 생보사 경영자들이 시원한 피서지로 가서 베니스의 상인을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를 통해 샤일록의 처신에서 자살보험금 논란의 해답과 지혜를 구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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