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창녕 조씨(昌寧曺氏)-338,222명
(23)창녕 조씨(昌寧曺氏)-338,222명
  • 정복규
  • 승인 2014.08.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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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그의 어머니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으로 조계룡의 출생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 태생으로 그녀가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병이 생겼다. 그녀는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이 완쾌되었다. 그런데 몸에 태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이다. 잘 기르면 자손만대 번영이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후 달이 차서 진평왕 48년에 아들이 태어나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가 붉게 씌어져 있었다.

이것을 본 학사는 이상히 여겨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도 신기하게 여기며 성은 조, 이름은 계룡, 자는 인경(鱗卿)이라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 뒤 조계룡은 부마가 되고 벼슬자리에 오른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본관을 창녕으로 했다. 고려 말 문하시중 조민수(曺敏修)가 있다.

고당 조만식(曺晩植.1883~1950)은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민족주의를 자기사상과 민족운동의 거울로 삼았다. 그는 북한이 공산화된 뒤에도 동포를 버리고 월남할 수 없다며 끝까지 북한에 남았다. 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조연흥은 고당의 3남이며, 전 적십자병원 치과과장 최한준 박사는 고당의 사위다.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1898-1959)은 제헌 국회의원, 초대 농림부장관,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까지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가 급서하는 바람에 사실상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다. 투표 결과는 이승만 504만여 표, 조봉암 216만여 표였다. 절반도 안 되는 득표였지만 조봉암의 부상은 당시 자유당과 이승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 뒤 죽산은 1956년 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1958년 조봉암, 양명산, 서상일 등 진보당 간부들을 간첩혐의로 구속했다. 결국 조봉암은 사형선고를 받고 1959년 7월 2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법원은 그가 사형당한 지 52년 만인 2011년 1월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조국현(제헌의원), 조재천(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조명환(국회의원), 조일환(국회의원), 조창대(국회의원), 조영규(국회의원), 조형부(국회의원), 조덕현(국회의원), 조기상(국회의원), 조상현(국회의원), 조규창(국회의원), 조만종(국회의원), 조규갑(국회의원), 조희철(국회의원), 조정환(외무부장관), 조재호(교대학장), 조무성(광운대초대총장), 조좌호(사학자, 성균관대총장), 조규상(가톨릭의대교수), 조준승(경북대의대학장), 조증출(MBC사장), 조두흠(한국일보이사겸주필), 조상호(대한체육회장, 체육부장관), 조병구(문수암주지), 조성파(통도사주지), 조우연(변호사), 조재석(서울고검부장검사), 조훈현(바둑기사), 조상현(음악평론가, 성악가), 조문환(육군중장, 국방부차관), 조경식(교통부차관), 조병춘(문산학원재단이사장), 조민식(부산시교육감), 조해영(창원시장), 조수봉(부산고법부장판사), 조건호(대구고법판사), 조영진(서울지검검사), 조석윤(동양화재보험 고문, 대종회장), 조희량(서울버스 사장), 조희철(국회의원), 조기항(변호사), 조자현(변호사), 조성기(변호사), 조희채(변호사), 조규대(변호사), 조규광(변호사), 조진환(변호사), 조희종(변호사), 조영주(재일거류민단장), 조희순(동의전문대학장), 조세환(기전전문대 이사장), 조동환(서울신문출판국장), 조병세(강남상호신용금고회장), 조광룡(광남병원재단 이사장), 조규박(전북대교수), 조운현(전남대교수), 조순환(한국일보논설위원), 조수종(충북대교수), 조소윤(세종대교수), 조사홍(백화양조 사장), 조동구(영남일보부사장), 조기주(대전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조희웅(국민대교수), 조희구(연세대교수), 조정호(영남대교수), 조의환(명지대교수), 조기성(주과테말라대사겸 온두라스대사), 조규진(경향신문논설위원), 조수미(성악가), 조성모(가수), 태진아(가수, 본명-조방헌)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2세 ○(승)承,23세 ○병(秉), 24세 ○환(煥) 섭(燮) 열(烈), 25세 ○규(圭) 희(喜) 재(在) (基), 26세 ○현(鉉) 호(鎬) 종(鍾), 27세 ○ 영(永) 영(泳) 해(海) 수(洙), 28세 ○근(根) 식(植) 목(穆), 29세 ○용(容) 형(炯) 연(然), 30세 ○재(載) 곤(坤) 훈(塤), 31세 ○일(鎰) 건(鍵) 용(鏞), 32세 ○태(泰) 순(淳) 연(淵), 33세 ○동(東) 상(相) 영(英), 34세 ○섭(燮) 열(烈) 걸(杰), 35세 ○균(均) 중(重) 원(垣), 36세 ○용(鎔) 진(鎭) 석(錫), 37세 ○윤(潤) 준(準) 문(汶), 38세 ○직(稷) 백(栢) 표(杓), 39세 ○희(熙) 영(煐) 형(螢)이다.

주요파는 밀직사공파, 진사공파, 헌납공파, 지중추공파, 문정공파, 좌시중공파, 중추공파, 대호군공파, 충간공파, 병조참의공파, 사정공파, 사직공파, 충순위공파, 대사헌공파, 양평공파, 태학사공파, 부사직공파, 시랑공파, 태복경공파, 청구당공파, 시랑공파, 문익공파, 사성공파, 수찬공파, 참판공파, 장양공파, 시중공파, 낭장공파 등이다.

본관 창녕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년(경덕왕 16)에 화왕군으로 바뀌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창녕군으로 고치고,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 : 密陽)의 속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창녕군·영산군이 되었으며,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산군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창녕감씨(昌寧甘氏), 창녕공씨(昌寧孔氏), 창녕구씨(昌寧具氏), 창녕김씨(昌寧金氏), 창녕박씨(昌寧朴氏), 창녕성씨(昌寧成氏), 창녕손씨(昌寧孫氏), 창녕염씨(昌寧廉氏), 창녕이씨(昌寧李氏), 창녕장씨(昌寧張氏), 창녕정씨(昌寧鄭氏), 창녕정씨(昌寧丁氏), 창녕조씨(昌寧曺氏), 창녕최씨(昌寧崔氏), 창녕표씨(昌寧表氏), 창녕황씨(昌寧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전남 화순군 북면, 전남 화순군 동면, 전남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 경북 영천시 금호읍, 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 경남 산청군 삼장면, 경남 통영시 도산면 원산리 사계마을, 전남 해남군 송지면 사구미 마을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성삼문(成三問) : 문과(文科) 세종 29년(1447) 중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성진(成晉) : 문과(文科) 세조 11년(1465) 춘당대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성몽열(成夢說) : 문과(文科) 중종 34년(1539)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성이민(成以敏, 1565 乙丑生) : 문과(文科) 선조 28년(1595)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482명이 있다. 문과 134명, 무과 21명, 사마시 322명, 음양과 5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창녕조씨는 1985년에는 총 72,213가구 299,669명, 2000년에는 총 105,282가구 338,22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만3천여 가구,3만8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63,518명, 부산 32,256명, 대구 18,710명, 인천 7,745명, 경기 27,528명, 강원 9,344명, 충북 7,293명, 충남 15,299명, 전북 12,659명, 전남 47,869명, 경북 20,557명, 경남 35,832명, 제주 1,032명이다. 경남,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67,537명, 부산 33,048명, 대구 22,667명, 인천 14,631명, 광주 20,830명, 대전 7,970명, 울산 6,661명, 경기 56,022명, 강원 8,390명, 충북 7,357명, 충남 9,415명, 전북 10,551명, 전남 21,313명, 경북 18,575명, 경남 31,840명, 제주 1,41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경남 지역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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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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