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한양 조씨(漢陽趙氏)-307,746명
(26)한양 조씨(漢陽趙氏)-307,746명
  • 정복규
  • 승인 2014.08.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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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중엽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냈다. 그 후 후손들이 조선 개국 때 한성(현재의 서울)으로 옮겨 가세가 크게 번영하였고,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한양을 본관으로 했다.

고려시대에 시조 조지수의 외아들인 조 휘는 고려 고종 45년(1258) 원(몽고)의 쌍성총관부 초대 쌍성총관을 지냈다. 조 휘의 아들 조양기는 13세의 나이로 제2대 총관이 되고 부원수를 지냈다.

공부상서와 예의판서를 역임하고 삼중대광 용성군에 이른 조 돈, 판의덕부사를 지낸 조인벽 등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 개국공신 한천부원군 양절공 조온과 한평부원군 양경공 조연 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면서 가문의 기틀을 세웠다.

조광조는 14세 때 아버지의 부임지인 희천에 가서 그 곳에 유배중인 김굉필에게 수학한다. 이때부터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이에 훈구파의 심 정 등은 조광조 일파가 조정을 문란케 한다고 공격했다. 이때 궁중 안에서는‘주초부왕(走肖孚王)’이란 글자로 왕에게 충격을 주었다.

‘조(趙)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 것이다. 중종도 사림파의 체포에 동의하면서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조광조는 능주에 귀양 갔다가 곧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 이후 사림의 등용문인 현량과도 폐지된다.

조병옥은 1909년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왜경에게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였고,1937년 수양동지회사건으로 다시 2년간 복역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비판하며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1960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입후보 했으나 병사하고 말았다.

청록파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조지훈(1920~1968)의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다. 그가 태어난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한양조씨 집성촌이다. 그래서 흔히 주실조씨라고 한다. 입향조는 호은공으로 불리는 조전(1576~1632)이다. 이곳의 종가는 호은종택(壺隱宗宅)으로 불린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조헌영(제헌의원), 조맹선(독립운동가), 조영원(독립운동가), 조창선(독립운동가), 조종승(국회의원), 조진만(대법원장), 조병일(법무부장관), 조시형(농림부장관, 국회의원), 조윤형(국회의원), 조순형(국회의원), 조경목(국회의원), 조병봉(무임소장관, 국회의원), 조일문(국회의원), 조종익(국회의원), 조종호(국회의원), 조광하(성균관대총장), 조근영(성균관대재단이사장), 조기준(고려대교수), 조병하(경북대교수), 조병화(시인, 경희대교수), 조성환(서강대교수), 조홍식(성균관대교수), 조경희(여류수필가), 조병학(의학박사), 조성욱(검사), 조운해(의학박사), 조의영(변호사), 조찬형(검사, 국회의원), 조태형(검사, 법무연수원장), 조경서(대한생명보험 사장), 조국원(한학자), 조흔파(소설가), 조병준(쌍용양회 회장), 조봉구(동광기업 사장), 조덕송(조선일보논설위원), 조상원(현암사 사장), 조동화(평론가), 조동규(경희대교수), 조병국(이화여대교수), 조병찬(한양조씨대종회장), 조영환(한양장학회 창설자), 조종석(치안본부장, 국회의원)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2세 鍾(종) 載(재), 23세 元(원) 允(윤), 24세 炳(병) 昺(병), 25세 行(행) 衡(형), 26세 成(성) 誠(성), 27세 熙(희) 紀(기), 28세 慶(경) 庸(용), 29세 新(신) 章(장), 30세 廷(정) 聖(성), 31세 揆(규) 葵(규), 32세 學(학) 存(존) 厚(후), 33세 書(서) 肅(숙) 用(용), 34세 演(연) 寅(인) 璜(황), 35세 卿(경) 邵(소) 迎(영), 36세 震(진) 振(진) 養(양), 37세 範(범) 龍(용), 38세 年(년) 南(남) 準(준), 39세 東(동) 洙(수) 來(래), 40세 重(중) 建(건) 暢(창), 41세 弼(필) 尊(존) 猷(유), 42세 璣(기) 義(의) 武(무), 43세 夏(하) 遠(원) 俊(준)이다.

주요파는 안정공파, 도총제공파, 지평공파, 판관공파, 월계당파, 백당공파, 세마공파, 봉사공파, 첨추공파, 한풍군파, 도제공파, 참판공파, 고사공파, 총제공파, 판돈령군파, 공안공파, 병참공파, 사정공파, 현령공파, 현감공파, 사정공파, 파서공파, 봉례공파, 사직공파, 집의공파, 정랑공파, 호의공파, 현감공파, 참의공파, 대의군공파 등이다.

본관 한양은 현재 서울특별시에 해당하는 옛 지명이다. 371년(백제 근초고왕 26) 백제가 먼저 이 지역을 점령하고 한산이라 했다. 392년(고구려 광개토대왕 2)에는 고구려가 점령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한주(漢州)라 개칭하면서 서울 일원을 한양군(漢陽郡)으로 하였다.

1393년(태조 3)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고 이듬해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했다. 이 때 도성을 중심으로 주변 10리에 이르는 5부(東部·西部·南部·北部·中部) 52방(坊)의 행정구역을 확정한다. 1910년 경성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5년에 서울시로 개편했다.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한양김씨(漢陽金氏), 한양박씨(漢陽朴氏), 한양부씨(漢陽傅氏), 한양이씨(漢陽李氏), 한양장씨(漢陽張氏), 한양정씨(漢陽鄭氏), 한양조씨(漢陽趙氏), 한양한씨(漢陽韓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조 윤(趙贇,1587 丁亥生) : 문과(文科) 인조 2년(1624)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 경(趙絅, 1586 丙戌生) : 문과(文科) 인조 4년(162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덕순(趙德純, 1652 壬辰生) : 문과(文科) 숙종 16년(1690)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광조(趙光祖, 1482 壬寅生) : 문과(文科) 중종10년(1515) 별시 을과(乙科), 조 우(趙佑, 1484 甲辰生) : 문과(文科) 중종 14년(1519) 현량과 을과(乙科), 조 박(趙璞, 1484 甲辰生) : 문과(文科) 중종39년(1544)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28명이 있다. 문과 91명, 무과 30명, 사마시 284명, 역과 5명, 의과 2명, 음양과 16명이다.

경북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는 한양조씨 집성촌이다. 이곳은 모시밭이 많아서‘모시밭’이라 했다. 저전(苧田)은 모시밭의 한자 표기이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양조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조종의 아들 5형제가 경북 영주로 몸을 피했다. 이후 넷째 아들 조신완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에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조신완의 증손자인 조적이 세상을 뜨자 부인 청송심씨는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저전리에 정착했다. 190여 가구 가운데 한양조씨는 약 160가구에 이른다.

그 밖에 집성촌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충북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충북 음성군 금왕읍 유포리, 충북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 충북 청원군 강내면 연정리, 충남 당진군 면천면 자개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한양조씨는 1985년에는 총 64,881가구 273,408명, 2000년에는 총 95,206가구 307,74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3만1천여 가구,3만4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81,497명, 부산 7,097명, 대구 5,818명, 인천 12,207명, 경기 46,241명, 강원 15,463명, 충북 14,128명, 충남 28,434명, 전북 12,233명, 전남 29,619명, 경북 12,403명, 경남 4,252명, 제주 4,010명이다. 서울, 경기, 전남, 충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79,929명, 부산 8,004명, 대구 7,359명, 인천 20,936명, 광주 11,032명, 대전 9,391명, 울산 3,047명, 경기 78.422명, 강원 12,444명, 충북 14,022명, 충남 18,194명, 전북 10,390명, 전남 14,908명, 경북 11,311명, 경남 3,990명, 제주 4,367명이다.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충남, 광주, 전남 지역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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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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