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문화 류씨(文化柳氏)-284,083명
(28)문화 류씨(文化柳氏)-284,083명
  • 정복규
  • 승인 2014.08.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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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류차달(柳車達)은 후삼국 통일전쟁 당시 유주(儒州, 문화의 당시 이름)의 호족이었다. 이곳은 현재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묵방동이다. 왕건이 후백제군을 정벌할 때 류차달이 수레와 군량을 보급하여 큰 공을 세워 삼한공신이 된다.

문간공(文簡公) 류공권(7세손)이 고려 명종 때 정당문학과 참지정사 등을 지내고 문장과 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아들 류언침과 류택으로부터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양대 산맥을 이룬다.

고려 고종 45년(1258년) 류 경이 당시 세도가인 최 의를 제거하고 무신정권을 종식시켰다. 나라에서는 유주(儒州)를 그의 고향이라 하여 문화(文化)로 바꾸고 현으로 승격시켰다. 그래서 후손들이 문화를 본관으로 삼았다. 문화는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의 지명이다.

류성원(柳誠源)은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1445년 집현전저작랑으로‘의방유취’의 편찬에 참여했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를 했고, 다음해에는‘고려사절요’를 편찬할 때 최 항, 박팽년, 신숙주 등과 함께 열전(列傳)을 담당하여 찬술했다. 춘추관기주관으로‘세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1455년 6월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그는 박팽년,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 그러나 1456년 성균관 사예 김 질의 고변으로 이 사실이 탄로 나자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결했다. 그 뒤 남효온이‘추강집(秋江集)’에 육신전을 실어 널리 알려졌다. 1691년(숙종 17) 관작이 회복되었고,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노량진 민절서원, 홍주 노운서원, 영월 창절사 등에 제향되었다.

류희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명종 16년(1561)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한 뒤 선조 14년(1581) 형조참판으로 동지사가 되어 중국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첨지중추부사로서 왕을 호종하여 좌승지로 발탁되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예조참판 등을 거쳐 1597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으며 문양공에 봉해졌다.

반계 류형원(1622~1673)은 조선 후기 실학의 개척자다. 그는 2세 때 아버지가 유몽인의 옥사에 연루되어 죽었다. 그 뒤 1653년(효종 4) 가족과 함께 선대의 사패지지(賜牌之地)인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으로 이주했다. 1654년 진사시에 급제했지만 당시 과거제의 폐단이 극심한 것을 보고 이후 다시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지리·어학은 물론 사회 개혁을 위한 정치·경제 문제의 연구에 힘썼으며 군사학도 연구했다.‘반계수록’은 국가의 전면적 개혁을 제시한 저술이다.

류달영은 우리 농학계의 권위자다. 그는 서울대 농대교수로 마을금고를 창설했으며 한-데마크 협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에‘류달영인생론집’‘협동과 복지사회’‘자연과 사랑과 인생’‘나라꽃 무궁화’등이 있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류진산(신민당총재), 류기춘(문교부장관), 류병현(육군대장, 농림부장관, 주미대사), 류양수(육군소장, 교통부장관), 류태현(광주고법 부장판사), 류길선(춘천지검장), 류흥수(국회의원, 치안본부장), 류홍열(서울대교수), 류달영, 류형진(교육학박사, 대한교육연합회장), 류태영(건국대교수), 류경채(서울대교수), 류인곤(국회의원), 류광열(국회의원), 류지원(국회의원), 류창열(국회의원), 류한열(국회의원), 류인범(국회의원), 류재희(국회의원), 류경현(국회의원), 류제연(국회의원), 류제국(경기은행장), 류호욱(미진산업 사장), 류용갑(페리관광호텔 사장), 류용곤(타워호텔 사장), 류주현(소설가), 류헌열(지방법원장), 류지민(청주지검차장검사), 류근국(육군중장), 류목상(중앙대교수), 류윤선(대구대교수), 류영선(계명대교수), 류덕환(계명대교수), 류지소(한림대교수), 류근조(중앙대교수), 류한우(계명대교수), 류호열(경북대의대교수), 류지수(미국유타주립대교수), 류증선(안동교대교수), 류광수(연세대교수), 류종열(부산대교수), 류인일(부산공대교수), 류재덕(연세대교수, 세브란스병원장), 류문수(조선대교수), 류동길(숭전대교수), 류재만(전남대교수), 류병하(육군중장), 류재호(육군소장), 류지환(육군소장), 류광현(해군소장), 류정식(부천시교육장), 류재희(국회의원), 류수환(국회의원), 류인학(국회의원), 류수택(여천시장), 류덕현(청양군수), 류웅열(공주군수), 류인형(육군소장), 류근철(경희대교수), 류주현(연세대교수), 류지윤(원광대교수), 류일영(동국대교수), 류승남(국민대교수), 류재국(미국코넬대교수), 류인희(연세대교수), 류재영(원광대교수), 류관수(조선대교수), 류정모(전주대교수), 류재신(전북교육감), 류응교(전북대교수)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1世 근(根)○ 인(寅)○, 32世 ○열(烈) ○걸(杰), 33世 지(志)○ 재(在)○, 34世○선(善) ○현(鉉), 35世 제(濟)○ 호(浩) ○, 36世 ○환(桓) ○간(?), 37世 영(榮)○ 황(煌)○ ,38世 ○곤(坤) ○헌(憲), 39世 종(鍾)○ 용(鏞)○, 40世 ○영(泳) ○승(承), 41世 래(來)○채(采)○, 42世 ○희(熙) ○로(魯), 43世 응(膺)○ 증(增)○, 44世 ○호(鎬) ○구(銶), 45世 온(溫)○ 준(濬)○, 46世 ○억(檍) ○락(樂), 47世 병(炳)○ 형(炯)○, 48世 ○기(?) ○재(裁), 49世 회(會)○ 회(澮)○, 50世 ○우(雨) ○하(河), 51世 본(本)○ 빈(彬)○, 52世 ○연(然) ○훈(勳), 53世 수(壽)○ 수(垂)○, 54世 ○탁(鐸) ○갑(鉀), 55世 명(溟)○ 한(瀚)○, 56世 ○동(東) ○병(秉), 57世 령(寧)○ 응(應)○, 58世 ○주(周) ○요(堯), 59世 침(針)○ 전(銓)○, 60世 ○기(沂) ○태(泰) 등이다.

주요파는 시랑공파, 문숙공파, 하정공파, 장령공파, 곤산군파, 문평군파, 지후사공파, 좌상공파, 검한성공파, 정숙공파, 판사공파, 수사공파, 부윤공파, 충경공파 등이다.

본관 문화(文化)는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문화면 일대에 있던 옛 지명이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유주(儒州)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풍주(豊州)로 다시 바뀌었다. 1259년(고종 46)에 문화현으로 승격된 이래 조선시대에도 유지되었다. 시령(始寧), 문성(文城) 등의 별호가 있었다. 1909년에 문화군은 신천군으로 폐합되면서 문화면으로 축소되었다.

집성촌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 충북 제천군 청풍면 황석리, 전북 남원시 수지면 초리, 전남 화순군 동면 언도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충남 서산시 부서면 동사리,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등이다.

문화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문화김씨(文化金氏), 문화류씨(文化柳氏), 문화박씨(文化朴氏), 문화윤씨(文化尹氏), 문화이씨(文化李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610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문화류씨는 1985년에는 총 60,911가구 255,632명, 2000년에는 총 87,186가구 284,08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1천여 가구, 2만9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66,039명, 부산 17,881명, 대구 12,073명, 인천 10,056명, 경기 35,663명, 강원 8,419명, 충북 15,378명, 충남 27,777명, 전북 15,879명, 전남 17,129명, 경북 8,222명, 경남 20,204명, 제주 912명이다. 서울, 경기, 충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64,704명, 부산 18,368명, 대구 13,533명, 인천 17,499명, 광주 7,839명, 대전 12,660명, 울산 4,948명, 경기 59,867명, 강원 7,874명, 충북 15,014명, 충남 15,220명, 전북 12,635명, 전남 8,220명, 경북 7,650명, 경남 16,829명, 제주 1,223명이다. 대전, 충남, 충북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한편 그 동안 문화류씨가 연안차씨와 뿌리가 같다고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그것은 잘못된 사실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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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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