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진주 정씨(晋州鄭氏)-238,505명
(33)진주 정씨(晋州鄭氏)-238,505명
  • 정복규
  • 승인 2014.08.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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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정씨는 동성동본이면서도 각각 시조를 달리하는 8개 파가 있다. 이 가운데 충장공파, 은열공파, 공대공파, 어사공파 등 4개 파가 주류를 이룬다. 본관 진주는 고려조 역대 선조들의 세거지이다. 진주정씨는 고려의 개국에 참여한 집안으로 고려조에 이미 수많은 인재를 냈다. 조선 개국 후에도 탄탄한 인맥을 형성했다.

▲충장공파(忠莊公派)의 시조 정 예(鄭藝)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을 지냈다. 1세조는 고려 문종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정시양 혹은 정시양의 아들 정유다.‘고려사’를 편찬한 정이오(鄭以吾.1347~1434)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문양공 정을보(文良公 鄭乙輔)는 고려 후기인 1352년(공민왕1) 찬성사가 되었다. 문영공(文英公) 정수(鄭需)는 고려 때 대제학을 지냈으며, 문영공파의 파조다. 정수규는 고려 때 정당문학, 정천귀는 대제학을 각각 지냈다. 감정공 정길보(監正公 鄭吉輔)도 후손이다.

충장공(忠莊公) 정 분(鄭)은 정이오의 아들이다. 정 분은 경남 진주시 비봉산 아래 대안리에서 태어났으며 1452년 단종 때 우의정에 올랐다. 당시 영의정은 황보인, 좌의정은 김종서였다. 이들은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하라는 문종의 유명을 받들고 있었다. 그러나 계유정난 때 낙안으로 귀양을 갔다가 다시 광양으로 옮겨지면서 노비로 전락했다. 수양은 정 분의 처남인 정인지를 통해 정 분을 회유했으나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의 부인은 대호군 임자번의 종으로 보내졌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정 분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1746년(영조22) 김종서, 황보인과 함께 관직이 복구되었다.

충장(忠莊)은 그의 시호이며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다. 진주에서는 도동서원을 세워 정 분을 비롯 황보인, 김종서, 김문기 등을 배향했다. 지금은 유허비만 남아있다. 묘소는 경남 진주시 상대동에 있다.

▲은열공파(殷烈公派)의 시조 정자우(鄭子友)는 고려 때 호장을 지냈다. 그의 6세손 정신열(鄭臣烈)이 고려 현종 때 병부상서에 올랐다. 거란의 침입을 격퇴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에 올라 진양부원군에 봉해진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판부사가 되었던 정천익(鄭千益)은 당시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 향리에서 퇴헌정(退軒亭)을 짓고 자적하다가 사위인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오자 이를 시배(始培)하여‘물레’와‘씨아’를 창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려 때 첨정을 지낸 정중공을 시조로 하는 첨정공파도 있다.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 탈환, 정유재란 때의 성주, 초계, 의령성 탈환 전투에도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9년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라 남해안을 방어하던 중 통영진중에서 숨졌다.

▲공대공파(恭戴公派)의 시조 정 장(鄭莊)은 고려 말에 통정첨지를 지냈다. 그의 4세손 정 척(鄭陟)은 조선 태종 때 판윤을 지냈다. 공대공 정척을 중조로 삼는 파도 있다. 세종 때 명신이었던 정 척은 교서관 정자를 거쳐 봉상시 주부와 감찰, 판한성부사. 수문전 대제학에 이르렀다. 1463년(세조 9) 양성지와 함께‘동국지도(東國地圖)’를 만들었다. 정 척의 아들 정성근은 천성이 굳세고 곧았다. 정성근의 아들 정주신(鄭舟臣)은 승무원 박사를 역임했다. 정주신의 아우 정매신(鄭梅臣)과 정매신의 아들 정원린(鄭元麟), 정원기(鄭元麒)와 정원린의 아들 정효성(鄭孝成)이 모두 효행이 뛰어나 4대 6명의 정문이 세워졌다. 정대유(鄭大有)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자 80노모를 업고 전남 광양군 골약면 마동리로 피난했다가 중동리에 정착했던 효자다. 그의 아들 5형제의 후손들이 현재 광양지방에 살면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어사공파(御史公派)의 시조 정 헌(鄭櫶)은 고려 말에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장손 정 온(우곡)은 고려 말에 대사헌을 지냈으며 후에 우곡공파의 시조가 된다. 둘째 손자 정 택은 고려 때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어사공파를 이어간다. 정 택의 10세손으로 조선조 대제학을 지낸 정경세(鄭經世)는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수제자였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웠고 성리학 뿐만 아니라 예학에도 밝아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파를 형성했다. 지후공파의 시조 정 선은 고려 때 지후에 올랐다. 내부사공파는 고려 때 판내부사를 지낸 정안교를 중조로 한다.

현대 인물은 정갑주(국회의원), 정경희(한국일보논설위원), 정균환(국회의원), 정기승(대법원판사), 정대철(국회의원), 정덕기(변호사), 정동규(약학박사, 숙명여대약대학장), 정동호(국회의원), 정배기(광주교대교수), 정상열(국회의원), 정상용(국회의원), 정상천(서울시장, 변호사), 정세환(국회의원), 정수봉(법학박사, 동국대총장), 정순덕(국회의원), 정요한(이학박사, 조선대교수), 정용식(광주지검순천지청장), 정운오(미일리노이주립대교수), 정원식(국무총리, 서울대사대교수), 정일형(국회의원, 외무장관), 정재각(문학박사, 동국대총장), 정재구(제일제당사장), 정재기(이학박사, 인하대교수), 정재완(국회의원), 정재환(법무부차관, 동아대총장), 정정환(부산대대학원장), 정주영(부산상공회의소회장), 정 준(국회의원), 정창운(검찰총장), 정창훈(대검검사, 변호사), 정헌국(공군준장), 정헌조(국회의원), 정헌주(국회의원), 정헌준(외환은행장), 정성호(검사), 정헌성(대전화수회장), 정래순(서예가), 정재완(전남대교수), 정장오(판사), 정종학(충남대대학원장), 정종효(중앙대교수), 정영화(한림대교수), 정을섭(조선대교수), 정영관(경상대교수), 정재길(전북대교수), 정영호(서울대교수), 정왕선(동국대교수)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진주는 경상남도 진주시의 지명이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진주 본관 성씨는 강(姜), 강(康), 강(彊), 고(高), 곽(郭), 교(橋), 권(權), 김(金), 노(魯), 동방(東方), 류(柳), 모(牟), 박(朴), 배(裵), 백(白), 사(謝), 서(徐), 서(西), 소(蘇), 소(邵), 오(吳), 유(劉), 유(兪), 윤(尹), 이(李), 임(林), 임(任), 장(張), 전(全), 정(鄭), 정(丁), 조(曺), 조(趙), 주(朱), 진(陳), 진(秦), 채(菜), 최(崔), 탄(彈), 하(河), 한(韓), 형(邢) 등이다.

집성촌인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속칭 철야마을은 진주정씨 1백여 호가 있다. 일제 때 이 마을 출신 정도희, 정도홍 형제 등 9명이‘유신계’를 조직하여 창씨개명 반대, 일본인 학교 입학거부, 의병활동 등을 전개했다. 경남 진주시 금곡면, 진성면, 사봉면, 금산면, 대평면, 수곡면 등도 집성촌이다.

조선시대에 상신 1명,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59명을 배출했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진양정씨는 1985년에는 총 55,464가구 231,289명, 2000년에는 총 74,777가구 238,50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1천여 가구,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43,268명, 부산 37,481명, 대구 4,932명, 인천 4,062명, 경기 14,438명, 강원 2,277명, 충북 2,896명, 충남 10,915명, 전북 12,117명, 전남 33,078명, 경북 4,098명, 경남 61,170명, 제주 557명이다. 경남과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전남과 전북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41,850명, 부산 38,172명, 대구 5,710명, 인천 7,150명, 광주 10,938명, 대전 5,413명, 울산 4,804명, 경기 30,843명, 강원 2,212명, 충북 2,899명, 충남 5,653명, 전북 8,654명, 전남 14,714명, 경북 4,528명, 경남 54,303명, 제주 662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본관 진주가 있는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부산과 광주, 전남, 전북 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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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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