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남원 양씨(南原梁氏)-218,546명
(36)남원 양씨(南原梁氏)-218,546명
  • 정복규
  • 승인 2014.08.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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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梁) 씨는 제주양씨, 남원양씨, 충주양씨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제주양씨에서 분관되었다. 우리나라 모든 양씨(梁氏)의 시조는 탐라(오늘날 제주도) 개국 설화의 삼신인 중 한 사람인 양을나(良乙那)이다. 제주삼성인 양(梁), 고(高), 부(夫) 씨의 시조인 삼신인은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등 세 명이다.

양씨는 원래 양(良) 자를 성씨로 썼다. 시조의 후손 양 탕이 신라 진흥왕 때인 559년 광순사로 신라를 예방했다. 이때 진흥왕은 벼슬과 상을 내리면서 양(梁)으로 고치게 했다. 남원양씨가 제주양씨에서 갈라진 것은 신라 경덕왕 때다.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원(南原)으로 분적했다.

이때부터 양씨는 제주와 남원으로 분관되었고, 후에 충주로도 분관되어 3적(三籍)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전하는 문헌이 없어 선계는 알 수 없다. 제주도에 분포된 토박이 양씨를 제양(濟梁), 육지에 퍼져 있는 양씨를 육양(陸梁)이라 한다. 이 중에서 남원양씨가 압도적인 수를 차지한다.

한편 남원에는 남원양씨(南原梁氏)와는 전혀 뿌리가 다른 남원양씨(南原楊氏)가 있다. 양(梁) 씨는 한자 속에 물수(水)가 있어‘물양’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양(楊) 씨는 한자 속에 나무목(木)이 있다 하여‘목양’이라고 한다.

고려 때 양 견(梁堅)은 광정대부에 올라 판밀직사사를 거쳐 진현관대제학을 역임했다. 양 우(梁祐)는 고려말 판도판서와 집현전대제학에 올랐다. 그러나 조선 개국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남원의 교룡산에 은거했다. 이성계가 집현전 대제학에 임명했으나 거절했다. 이태조가 그를 벌하려 했을 때 중신들이“양 우를 벌하면 충신의 길이 막힌다.”고 말하여 죽음을 면했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양성지(1415~1482)는 세종 2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대사헌, 대제학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특히 15세기에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지리지‘동국여지승람’을 편찬했다. 양성지의 아들 양 찬(梁瓚)은 무과에 올라 사부일목(四府一牧)을 거쳐 승정원동부승지에 올랐다. 손자 양 연(梁淵)은 대제학과 좌찬성을 지냈다. 증손 양윤신(梁允信)은 학행(學行)으로 사헌부감찰에 올랐으나 을사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방면되어 사천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아들 양사원과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우고 부자(父子)가 모두 순절했다.

양헌수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어영대장과 공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의병장 양한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양주동(梁柱東,1903~1977)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향가 25수 전편에 대한 해독집인‘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를 펴냈다.

현대 인물은 양건주(정치학박사), 양경자(국회의원), 양광남(중앙대예술대학장), 양규모(진양회장), 양극필(국회의원), 양남길(조선대의대학장), 양달승(국회의원), 양대경(대법관), 양대연(철학박사, 홍익대교수), 양덕인(국회의원), 양동규(부산대치대학장), 양명훈(변호사), 양병두(교육학박사), 양병탁(문학박사, 경희대사대학장), 양병호(대법원판사, 변호사), 양복윤(조광페인트공업 회장), 양상경(동명학원이사장), 양상열(변호사, 전주시장), 양상현(공학박사, 전북대교수), 양석성(의학박사, 전남대교수), 양성민(조광페인트공업 대표이사), 양성봉(농림부장관), 양성현(풍산개발사장), 양성환(금성학원 이사장), 양승권(성원학원 이사장), 양승훈(유학자), 양영환(철학박사, 성균관대교수), 양옥룡(공학박사, 인하대교수), 양용대(동화목재 대표), 양용식(법제처 차장), 양용태(의학박사, 중앙대의대학장), 양용택(군수), 양우갑(조해상선회장), 양원일(판사), 양유찬(의학박사), 양윤길(시카고영사), 양윤세(동력자원부장관), 양인석(육군소장, 육군대학총장), 양일동(통일당당수), 양재권(국회의원), 양재모(의학박사, 연세대부총장), 양재목(수산대학장), 양재봉(대신증권 대표이사), 양재원(부산제철사장), 양재철(경찰국장), 양재현(이학박사, 성균관대교수), 양정강(의학박사, 연세대치대학장), 양정규(국회의원), 양정모(원풍산업 회장), 양정석(중앙일보상무이사), 양정수(서울변호사협회장), 양종의(전북대법대학장), 양주순(동명공업사장), 양준모(법학박사, 신문윤리위원장), 양중해(문학박사, 제주대사대학장), 양창식(국회의원), 양창현(군수), 양충호(경희대교수), 양치종(제주교육감), 양태석(유학자), 양태성(중앙대교수), 양태용(공학박사), 양태운(대창해운대표), 양택식(서울시장), 양학식(군수), 양해경(병무청장), 양해생(의학박사, 병원장), 양헌(변호사), 양형호(약학박사, 중앙대약대학장), 양호열(광주투자금융 전무이사), 양회두(육군준장), 양회영(참의원), 양회직(로스엔젤레스교민회장), 양훈영(공학박사, 연세대교수), 양흥석(공학박사, 서울대공대교수), 양희경(대법원판사, 변호사), 양희종(법학박사, 변호사)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남원 본관 성씨는 남원군씨(南原君氏), 남원김씨(南原金氏), 남원남씨(南原南氏), 남원노씨(南原盧氏), 남원독고씨(南原獨孤), 남원박씨(南原朴氏), 남원방씨(南原方氏), 남원방씨(南原房氏), 남원변씨(南原卞氏), 남원서씨(南原徐氏), 남원석씨(南原石氏), 남원소씨(南原蘇氏), 남원손씨(南原孫氏), 남원송씨(南原宋氏), 남원승씨(南原昇氏), 남원심씨(南原沈氏), 남원안씨(南原安氏), 남원양씨(南原梁氏), 남원양씨(南原楊氏), 남원오씨(南原吳氏), 남원원씨(南原元氏), 남원윤씨(南原尹氏), 남원이씨(南原李氏), 남원임씨(南原林氏), 남원장씨(南原張氏), 남원전씨(南原全氏), 남원전씨(南原田氏), 남원정씨(南原鄭氏), 남원조씨(南原趙氏), 남원진씨(南原晋氏), 남원진씨(南原秦氏), 남원최씨(南原崔氏), 남원태씨(南原太氏), 남원홍씨(南原洪氏), 남원황씨(南原黃氏) 등이다.

집성촌인 충남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의 입향조는 조선 중기 무신 양 함(1564~1592)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함창현감으로 충주 탄금대에서 싸우다 29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으며 지금의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에 안장되었다. 300여년 후인 1886년에 후손들이 살았던 상월면 신충리에 그의 정려가 건립되었다. 1995년 현재 논산 지역에 거주하는 남원양씨는 논산읍에 94가구를 비롯하여 상월면 54가구, 연무읍 48가구, 성동면 38가구, 강경읍 37가구, 광석면 32가구, 은진면 29가구 등 총 416가구로 조사되었다.

그 밖에 집성촌은 전북 남원시 용정동, 전북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이언마을, 전북 정읍시 산내면 두월리 방성동 마을,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거북장수마을, 충남 서천군 화양면 달고개모시마을, 경남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 전남 화순군 도곡면, 전남 화순군 이양면 등이다.

주요파는 병부공파, 예성군파, 청주파, 대방군파, 용성군파, 장영공파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216명이 있다. 문과 45명, 무과 60명, 사마시 102명, 의과 1명, 음양과 8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남원양씨는 1985년에는 총 52,265가구 220,002명, 2000년에는 총 67,691가구 218,54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 수는 1만2천여 가구가 늘었다. 반면 인구는 오히려 2천여 명이 줄었다. 조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55,429명, 부산 20,219명, 대구 6,176명, 인천 7,036명, 경기 25,209명, 강원 6,234명, 충북 7,063명, 충남 22,300명, 전북 25,112명, 전남 14,365명, 경북 10,442명, 경남 19,364명, 제주 962명이다. 전북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50,001명, 부산 19,419명, 대구 7,219명, 인천 11,095명, 광주 4,442명, 대전 9,685명, 울산 4,108명, 경기 43,312명, 강원 5,105명, 충북 6,979명, 충남 10,260명, 전북 18,170명, 전남 6,244명, 경북 8,367명, 경남 13,762명, 제주 378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전북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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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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