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모든 송(宋) 씨의 시조는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던 송주은이다. 그 후 고려 때 그의 후손 송자영이 송유익(여산군), 송천익(은진군), 송문익(서산군) 등 3형제를 두었다. 이들이 송씨의 3대 산맥을 이룬다. 은진송씨는 이들 3형제 중 둘째 송천익의 후손이다. 그러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를 지내고 은진군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한다. 은진은 충청남도 논산군 은진면의 지명이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조선조 5백년 역사에 우뚝 선 거인이다. 그는 조선조 왕조실록에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이다. 우암은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네 임금을 섬기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고 서남노소 분당의 난세를 살았다. 26세 때까지 외가인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에서 살다가 회덕으로 옮겼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최명길의 천거로 경릉참봉이 되면서 관직 생활에 발을 내디뎠다. 1635년 봉림대군(뒤의 효종)의 사부가 되었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나,1637년 화의가 성립되어 왕이 항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게 되자 낙향하여 10여 년간을 초야에 묻혀 학문에 몰두했다.
김자점이 청의 연호를 쓰지 않은 장릉지문(長陵誌文)을 빌미로 조선의 북벌 움직임을 청에 밀고하여 효종이 청에게 추궁을 당하자 영의정 이경석 등과 함께 다시 물러났다. 그 뒤 충주목사와 동부승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만 전념했다. 1658년(효종 9)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효종과 함께 북벌계획을 추진했다.
효종의 장지(葬地)를 잘못 옮겼다는 탄핵이 있자 벼슬을 버리고 회덕으로 돌아갔다. 그 뒤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향리에 묻혀 지냈으나, 사림의 여론을 주도하면서 막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668년(현종 9) 우의정에 올랐으나 좌의정 허 적(許積)과의 불화로 곧 사직했다가 1671년 다시 우의정이 되었고 이어 허 적의 후임으로 좌의정에 올랐다.
1689년 숙의장씨가 낳은 아들(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이 시기 상조라 하여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미움을 사 모든 관작을 삭탈당하고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해 6월 국문을 받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던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은 송시열과 함께 당대를 대표했던 성리학자였다. 송준길은 당시 권세를 잡고 있던 김자점을 탄핵하여 청서파의 집권을 가져오게 했다. 송준길과 송시열은 숙질(송준길이 아저씨) 간으로 두 사람 모두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다. 노론의 쌍벽으로 문묘에 함께 배향됐다.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규렴은 송시열, 송준길 등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일컬어졌던 대문장가다. 그의 아들 송상기도 송시열의 문인으로 숙종 때 대제학,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송병준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5적을 참형에 처할 것을 상소했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자 음독 자결했다. 그의 동생 송병순도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망국의 슬픔을 시로써 달래다 역시 음독 자결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송흠익(宋欽翼) : 문과(文科) 철종7년(185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민수(宋敏洙, 1814 甲戌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종오(宋鍾五, 1828 戊子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병찬(宋秉瓚, 1837 丁酉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송석윤(宋錫胤, 1590 庚寅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식년시 을과(乙科), 송유룡(宋儒龍, 1650 庚寅生) : 문과(文科) 숙종7년(1681) 식년시 을과(乙科), 송재경(宋載經, 1718 戊戌生) : 문과(文科) 영조40년(1764) 정시 병과(丙科), 송재희(宋載禧, 1711 辛卯生) : 문과(文科) 영조48년(1772) 기로정시 을과(乙科), 송종규(宋鍾奎, 1856 丙辰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4 병과(丙科), 송희원(宋希遠, 1565 乙丑生) : 문과(文科) 인조1년(1623) 개시 병과(丙科) 등 모두 29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78명, 무과 1명, 사마시 216명, 음양과 1명이다.
현대 인물은 송인상(법무부장관), 송진백(제헌국회의원), 송원영(국회의원), 송효순(국회의원), 송장헌(대한의사협회장), 송석하(육군소장), 송기철(경제학박사, 고려대교수), 송민호(문학박사, 고려대교수), 송재만(고려대교수), 송명관(변호사), 송건호(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송효빈(한국일보논설위원), 송희빈(충청은행장), 송재오(국민은행장), 송진혁(중앙일보논설위원), 송천영(국회의원), 송병학(충남대교수), 송재영(충남대교수), 송형구(조일산업 대표이사), 송갑수(세풍전자대표), 송경빈(영수물산대표), 송태헌(현제주식회사 대표), 송효식(라이프주택대표), 송헌창(광산건설대표), 송재득(금강양행대표), 송철호(한양주택전무이사), 송철순(국제상사 호주지사장), 송덕영(대전상공회의소장), 송순(부산지방국세청장), 송겸호(상공부광정국장), 송재휘(대구연초제조창장), 송우빈(대전부시장), 송필수(남대문경찰서장), 송달호(서울역장), 송성한(바레인대사), 송일빈(법무부비상계획관), 송희섭(충남도보사국장), 송희영(충북도산림국장), 송범섭(노총충남도협의회장), 송형빈(동진운수대표), 송선용(육군준장), 송헌석(육군준장), 송재만(홍익대교수), 송길영(고려대교수), 송재(연세대교수), 송갑호(고려대교수), 송재억(대전일보편집국장), 송중호(공군준장), 송덕영(전국초등교육협의회장), 송호수(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 송재칠(신한은행 전무), 송경순(세계은행, 재미), 송인식(변호사), 송창영(변호사), 송헌준(변호사), 송영욱(변호사), 송도영(변호사), 송병식(변호사), 송명관(변호사), 송기성(변호사), 송두영(변호사), 송정훈(판사), 송구헌(판사), 송흥섭(판사), 송희식(검사), 송인준(검사), 송태식(재일실업인), 송명호(제일증권 감사), 송락헌(경북사대교수), 송준호(연세대교수), 송길헌(대전문화방송보도국장), 송석상(천원군수), 송일영(예산군수), 송효정(경희한의대 교수), 송인섭(진미식품 사장), 송충빈(배재대교수), 송인춘(충남대교수), 송광석(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사무총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6世 인(寅), 27世 현(顯), 28世 의(義), 29世 범(範)이다. 주요파는 목사공파, 정랑공파, 사직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 평촌리, 전남 진도군 조도면 관사도리,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남음리, 경남 남해군 남면 덕월리,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경남 합천군 대양면 유전리 등이다.
본관 은진(恩津)은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덕은(德恩)·시진(市津) 두 현을 합한 지명이다. 덕은현은 본래 백제의 덕근군(德近郡)을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덕은(德殷)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덕은(德恩)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덕은과 시진을 모두 공주(公州)에 편입시켰다. 1406년(태종 6)에 덕은·시진을 합쳐 덕은으로 하고 감무를 두었다. 1419년(세종 1)에 은진(恩津)으로 개명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은진군이 되었고,1896년 충청남도 은진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논산군에 병합하여 은진면으로 남아 있다.
은진(恩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은진구씨(恩津邱氏), 은진김씨(恩津金氏), 은진임씨(恩津林氏), 은진송씨(恩津宋氏)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은진송씨는 1985년에는 총 42,972가구 179,261명, 2000년에는 총 64,590가구 208,81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2천여 가구,2만8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7,449명, 부산 19,542명, 대구 8,360명, 인천 5,424명, 경기 17,388명, 강원 6,338명, 충북 10,699명, 충남 30,570명, 전북 4,916명, 전남 4,745명, 경북 10,967명, 경남 22,373명, 제주 476명이다. 은진 본관 지명이 있는 충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8,908명, 부산 21,454명, 대구 10,524명, 인천 9,326명, 광주 1,950명, 대전 23,903명, 울산 5,704명, 경기 35,270명, 강원 5,434명, 충북10,601 명, 충남 8,574명, 전북 4,256명, 전남 3,044명, 경북 10,488명, 경남 18,767명, 제주 613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대전 지역 등 충청권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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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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