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와 하이에크
케인즈와 하이에크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8.30 19:49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세계경제 100년 좌우한 지혜를 배워야
 

필자는 서울 광화문의 대형 서점인 교보문고에 자주 들르는 편이다. 서점에 가면 일단 신간을 살펴보면서 도심생활에 찌든 머리를 식힐 수가 있어서 좋다. 또 하나는 한 여름철엔 무더위를 피하고 한 겨울철에는 매서운 추위를 녹이는데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냉,난방 시설이 잘 돼 있는 덕분이다.

지금은 경제문제가 국정과 서민생활의 최대 현안이 돼 있다. 그래서 지난 주엔 오랫 만에 경제학 서적 앞에 가봤다. 1970년대 학창시절 때 애용하던 교과서였던 조순 교수의 경제학원론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배웠던 미시 경제학(남덕우 저 가격론)과 거시 경제학(김덕중 교수 저)같은 책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대신 낯모르는 젊은 교수들 이름으로 된 각종 경제학 저서들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책들의 두께도 장난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300~400쪽 정도도 두껍다고 했었으나 요즘 나온 책들은 700~800쪽 짜리들이 예사가 아니었다. 그만큼 교수들이 세대교체를 이뤘고, 경제학도 경이적인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을 돌아본 뒤 한 책에 눈이 꽂혔다. ‘지난 100년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 케인스 vs 하이에크’.   바로 이 책이었다. ‘뉴딜(New Deal)정책'을 뒷받침한 케인즈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발간한 하이에크.
 
순간 주마등처럼 젊은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미국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온 멋쟁이 교수님들이 강의때 들려주던 두 학자의 이론이 매우 솔깃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니... 그래서인지 서평에도 “1930년대 대공황부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까지...글로벌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해법을 놓고 두 이론이 충돌했다”라고 소개돼 있었다.
 
그렇다. 1930년대 대공항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싼 경제학의 두 거장 케인즈 대 하이에크의 논쟁은 일단 케인즈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케인즈가 사망한 뒤 약 50년동안 더 생존해 살아 있는 동안 경쟁자에게 사후 승리를 거두는 시기를 맞는다. 1980년대 대처 영국수상,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앙집중식 경제계획의 비효율성을 주장한 하이에크의 저서 ‘노예의 길’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를 치유하기 위한 확대 재정정책에 따른 정부부채 위기와 세계경제의 회복지연, 심화되는 빈부의 격차 등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맞아 케인즈가 다시 떠오른다. 이렇게 보면 두 경제학자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엎치락 뒤치락하며 경제 해법상 반전(反轉)을 거듭해 온 셈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한 포럼에서 "한국이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물가안정목표 범위가 2.5∼3.5%로 돼 있는데 3년 째 하한선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최 부총리는 줄기차게 한국 경제의 일본화 가능성에 경고음을 울려 왔다. 일본이 말하는 '잃어버린 20년'의 원흉은 바로 저물가이다. 최 부총리가 '한국판 디플레이션' 발생을 걱정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디플레이션 논쟁은 오래 됐다. 학계·재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 부총리는 전임자 시절의 정부 견해를 180%도 바꿨다. 자연히 이주열 한은총재와 디플레이션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드러낸다. 최 부총리의 발언이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없지 않다. 그렇게 보면 기준금리를 둘러싼 정부와 한은 간의 미묘한 마찰이 앞으로 디플레이션 정책에서 재연될 수도 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은 '통화량의 축소에 의해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의 침체 또는 저하를 의미한다. 그래서 물가가 떨어진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디플레이션은 결국 경제를 서서히 골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세계경제는 인플레이션 기조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디플레이션 조짐이 보인다. 따라서 정부가 미리부터 디플레이션을 경계,모든 정책수단들을 점검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일종의 ‘유비무환 정신’이다. 미국과 일본이 돈을 쏟아부어 인위적으로 물가를 자극하는 걸 보라. 연초 세계 경제가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디플레이션을 ‘오거(Ogre·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디플레이션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경제 외적인 요인이 더 크다. 그런 측면에서 이웃 일본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정부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피부에 금방 와닿는 인플레이션과 달리 디플레이션은 서서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만약 이 시점에 케인즈나 하이에크 같은 스타급 경제학자들이 살아있다면 한국 경제의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해결 처방을 내릴까.
 
먼저 케인즈를 보자. 사실상 오늘날 거시 경제학의 창시자인 그가 유명해진 것은 당시의 시대상황이 불어온 것이다. 케인즈의 시대는 미국의 경제 대공황과 관련이 깊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 중에 시행한 뉴딜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케인즈경제학이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이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허점을 드러냈고, 케인즈가 이를 국가가 개입해서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한 것이 바로 뉴딜정책이다. 국가가 가격을 고시하고, 자본을 통제하며, 금리를 정하고, 환율을 통제하는 이른 바 수정자본주의를 구체화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케인즈 경제학이 주목한 것은 ‘총수요’다. 총수요의 감소가 불황의 원인이 되고, 이것이 악순환을 가져와 경제가 공황에 처하게 된다. 총수요가 부족하면 국가가 부족한 수요를 재정지출을 확대해서 메우자는 것이다.
 
반면 하이에크는 시장을 중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창시자다. 그는 저서 '노예의 길'을 통해 사회주의와 국가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그 위험을 경고했다.  나중에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거치면서 그의 자유주의 경제학이 재조명을 받는다. 그래서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학과 구분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으로 분류한다. 하이에크의 인식은 "정부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 간에 비슷한 점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의 원인을 ‘시장의 수요부족’에서 찾은 점이다. 케인즈는 부족한 수요를 정부가 적극 개입, 메우자고 한 반면 하이에크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해 민간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회복되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 점이 다르다.
 
취임 직후부터 대규모 부양책을 제시한 최경환 부총리는 경제철학 카테고리상 케인지안이 분명하다. 그의 경제살리기는 일단 통했다. 2011년 장기불황에 빨려 들어간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시장에 온기가 돌고, 주가는 박스권을 뚫었다. 7·30 지방선거까지 여당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초이노믹스’는 잡다한 옴니버스 버전이다. 재정투입이란 케인지안의 대표적 부양책을 앙숙인 신자유주의의 대표 도구인 규제완화와 함께 배치했다. 여기에 진보 진영의 소득주도 성장을 붙이고, 기업소득 환류세제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했다. 논리적 모순과 이념적 반목이 적지 않다. 그리고 미온적이던 한은을 끌어들여 기준금리 인하란 비상대책을 발동했으나 한은이 계속 금리인하에 동의할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이전 정부에서도 케인지안들은 많았다. 이명박 정부 때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거시경제학 책 서문에 스스로를 '케인지안'이라고 표현,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당연한 것으로 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최대한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 쪽이었다. 민영화, 감세, 규제철폐 등 경제정책 방향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이전 개발도상국이던 박정희 대통령의 시절의 돌격형 경제관료들은 모두들 ‘케인즈의 후예’들이었다. 그 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과 심지어는 문민정부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도 사실상 케인지안 정책관료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문제는 적극적 경기부양책의 효과다. 일본의 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오히려 일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추가 경기부양책을 시행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경고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는 기현상을 말한다.
 
이같은 사례는 일본식 경기부양책을 모방하는 우리나라에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듯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자 국내 주류 경제학자들은 아베노믹스와 같은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책 역시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확장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 구조개혁)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는 평가다.
 
현 정부에서 최 부총리를 비롯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을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등 핵심 인사들이 위스콘신 출신이다. 이밖에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등도 마찬가지다. 위스콘신의 학풍은 정부 개입보다 시장의 자율 쪽에 초점을 맞추는 신고전학파로 알려진다. 그러나 경제팀은 지금 경기부양에 총력전이다. 출신 학교의 학풍은 시장자율 쪽이지만 정책당국자 입장에서는 모두들 케인지안으로 변신한 것이다.
 
전통적인 케인지안들은 정부가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지출을 늘리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케인지안들의 특징은 뭔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불도적 식’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반면 최대 단점은 자신들의 정책실패가 무엇이라는 것은 잘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케인즈가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뉴딜정책도 사실상 실패로 끝나지 않았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뉴욕의 월스트리트 금융가가 붕괴하자 '하이에크 신봉자'였던 부시 전 대통령은 하이에크를 포기하고 돌연 케인즈를 선택한 적이 있다. 미국은 부시와 오바바 행정부를 거치면서 무려 1조 달러에 이르는 프린팅 머니를 쏟아부었지만 현재 미국경제는 슬럼프를 탈출하지 못한다. 실업률도 개선이 어렵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다.
 
한마디로 케인지안 모델에서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는 주장이다. 모든 문제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나 케인지안들이 장점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단점을 보완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케인즈와 하이에크는 확실히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경제학자다. 실업대책 등 단기적 경제대책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케인즈와 정부에 의한 시장 메커니즘에의 간섭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이에크의 정책을 오늘날까지도 각국 정부가 냉온탕 식으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가 위기 때에는 케인즈가, 평시에는 하이에크가 제안하는 경제정책을 답습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논쟁은 한 세기가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케인지안 모델에서는 양적 완화정책에 따른 미래의 세금증가. 정부의 지출확대 프로그램에 따른 소득재분배 문제, 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애써 무시하는 경향, 대부분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들이 단기효과를 노리는 부작용 등 여러 단점들이 학계에서 줄곧 제기돼 왔다. 최 부총리도 이를 십분 유념해야 할 듯 싶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불과 몇개의 대기업과 외국자본에 의존해 유지되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갖는다. 저성장의 덫과 디플레 위험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다시금 성장궤도로 올려놓으려면 맹목적인 케인지안이 되기 보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하이에크 추종자가 필요하다는 고언에도 우리는 귀를 기울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경제상황이 변할 때마다 '케인스-하이에크'는 괘종시계의 단진자처럼 좌우를 왕복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위기를 맞아 해법찾기에 골몰하는 이 때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곰곰이 균형있게 그리고 냉철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