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8.3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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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어제와 오늘
 

바둑에 "대마(大馬.큰말)는 잘 죽지 않는다"는 통설이 있다. 이른바 '대마불사론'이다.

지난 1997년 발생한 한국의 외환위기 때 재벌그룹 구조조정이 떠오른다. 당시 부채가 많아 자금 압박을 받았던 대우그룹은 쌍용차를 인수하는 등 덩치를 키우면서 오히려 부채를 더 늘렸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바로 이 ‘대마불사론’을 믿었던 것 같다. 부채가 많은 대기업은 정부에서 내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대우그룹이 부도가 나면 관련 금융권의 타격이 더 심해지고, 은행이 어쩔 수 없이 대우그룹의 부채 상환을 막아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재벌들이 1970,80년대에 급성장한 배경에는 이 '대마불사론'이 자리한다. 빚이 많으면 일반 국민들은 부도나 파산을 맞는다. 하지만 재벌들은 빚을 많이 지면 질수록 오히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었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대기업 자본의 속성상 정경유착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며 기업을 경영하던 시대의 얘기다.
 
물론 삼성을 비롯해서 현대자동차, SK, LG그룹와 같이 아직까지 건재한 재벌들도 있다. 그러나 제세산업이나 율산,한보,대우 등은 '대마불사론'을 좇다가 안타깝게도 사라진 기업들이다. 또 국제상사는 최고 권력자의 눈에 잘못 보여서 하루아침에 공중분해가 되고 말았다.
 
그룹 해체 이후 침묵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열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서다.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2012년 출간한 회고록 ‘위기를 쏘다’와 배치되는 내용들이 많다.
 
김우중과 이헌재-. 두 사람은 대우그룹 해체과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다. 한 사람은 해체된 대우그룹의 총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해체를 주도한 주무 부처인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대우해체의 배경은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우 사태는 1999년 7월 한국 재계의 서열 2위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퇴진하고 그룹이 해체된 사건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자동차의 해체는 정부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한국 경제가 30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경제대통령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자신이 정부논리와 반대되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경제관료들과 충돌했고, 이것이 유동성 악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DJ정부의 오류는 대우차를 인수한 제너럴모터스(GM)가 입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국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GM은 대우차 덕분에 1위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했다”며 “대우차가 개발한 소형차를 이용해 중국이라는 거대 신흥시장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우차를 잘못 처리해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그는 “대우 해체에 따르는 비용은 한국 경제가 고스란히 부담했고, 투자 성과는 GM이 모두 가져갔다”며 “대우 해체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2012년 펴낸 회고록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서 이 전 위원장은 “김 전 회장은 GM과의 전략적 제휴에 모든 걸 걸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애초부터 불가능한 협상이었고 대우차가 1998년 7월 협상을 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부터 ‘다급한 GM이 대우에 자동차 합작을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는 사실을 정부측에 수차례 얘기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몰린 것은 경제관료들과의 충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IMF 프로그램에 따른 구조조정보다는 ‘연간 무역흑자 500억달러 달성'을 통한 IMF체제 조기탈출론을 내걸었고 이 과정에서 관료들과 멀어졌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정부가 갑자기 수출이 나쁜 것처럼 얘기하면서 수출금융이 막혀 벌어진 일들을 대우의 잘못으로 몰아붙였다”며 “뭔가 의도가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우그룹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해체됐다는 이른바 ‘기획해체론’이다.
 
지금껏 대우그룹 해체의 원인과 과정은 다음과 같이 알려진다. “외환위기 이후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주도하던 경제정책 라인은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몸집을 불려온 대우그룹을 한국경제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위험요소로 판단했다. 그래서 대우그룹 워크아웃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김우중 전 회장이 정부의 해법에 반발하며 알력을 빚다 해체수순을 밟았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당시 경제라인은 강도 높은 재벌개혁, 기업ㆍ은행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서 ‘재벌의 대마불사론’을 완전히 깨버렸다. 국가ㆍ은행ㆍ재벌의 긴밀한 연계로 효력을 발휘한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차입을 통해 부실기업을 인수ㆍ합병(M&A)해 회생시키는 방식으로 세(勢)를 확장해온 대우그룹을 해체시킨 건 재벌개혁의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대우그룹은 1998년 말부터 계열사 축소, 재무구조 개선 등 자구노력계획을 끊임없이 발표했지만 금융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침몰했다.
 
필자는 김우중 전 회장을 자세히는 모른다. 대우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1980년대 정치부 기자 시절 대우중공업 파업 시절 여야 국회의원들을 동행 채취하며 옥포조선소를 찾아갔다가 파업사태에 항변하는 그를 가까이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문사 경제부장 시절인 1999년 대우 침몰 직전에 힐튼호텔에서 단독으로 조찬회동을 하며 그의 애타는 심경을 들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번 회고록에서 밝힌 것과 비슷한 톤과 내용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협조를 부탁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기자의 입장에서 그 당시 대우그룹의 해체 여부는 최대의 그리고 초미의 관심사였다. 만일 재계 2위 서열이었던 대우가 침몰한다면 이야 말로 최고의 ‘빅 뉴스’였다. 당시 뉴스 밸류로 볼 때 기자적 판단의 최대 기준은 바로 대마불사론의 최종 향방이었다. 대우와 같은 대마를 감히 정권이 해체되도록 좌시할 것인가를 거의 매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상황이었다.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대우는 해제수순을 밟는다. 거대 재벌 대우가 마침내 침몰하는 한국 재계사의 한 페이지를 기자로서 똑똑히 본 역사적인 순간들이었다.
 
필자는 대우그룹 해제의 진실을 100% 알지 못한다. 사태 후 직접 진상조사를 해본 적이 없고,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당사자들의 주장과 진술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대우가 해체되기 전까지 시대적 흐름과 정황, 취재감각을 토대로 나름대로 원인과 배경을 유추하고 있을 정도다. 분명한 것은 그때까지 김전 회장이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대마불사론의 입장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IMF사태라는 초유의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기업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다른 대기업들이 진출하기 꺼려 한 동유럽·베트남·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사업 확장에 나서 큰 성과를 올렸다. 주력 사업이던 대우자동차는 폴란드·루마니아·우크라이나·인도·중앙아시아·중국에 사업을 확대, 세계 10대 자동차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1997년 말 한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했으나 대우그룹은 해외사업을 지속했다. 다른 한편 오히려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확장전략을 전개한다. 이른바 대마불사론의 구체적 정황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자금난을 겪어오던 대우는 현금확보를 위하여 총 100억 달러에 이르는 채권을 발행한다. 그 결과 1999년 3월에 그룹의 부채비율이 400%로 늘어났고, 자기자본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이처럼 경영부실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IMF 사태로 인한 고금리였다. 차입의존도가 높았던 대우로서는 연 20%를 넘는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빚을 얻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1993년에 김 회장이 선언한 세계경영이 구체적인 과실로 나타나기 전에 IMF 사태가 터진 것이 큰 타격이었다.
 
1999년 7월 채권은행단은 만기가 도래한 70억 달러의 부채상환을 연기했다. 8월에는 대우그룹에 대한 워크아웃이 결정되고, 12개 계열회사가 채권은행단의 관리로 들어갔다. 이런 결과를 가져 온 김우중 회장은 정부와 채권단의 압력, 기존 경영진의 문책을 요구하는 대우노동조합의 요구로 결국 사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면 그의 퇴진은 본질적으로 경영부실로 일어난 결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만약 김대중 정부가 과거 정부처럼 대마불사론에 힘을 실어주고 특혜금융을 지원했더라면 대우는 침몰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김 전 회장도 당시 수출금융을 터주면 살릴 수 있었던 회사를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관료들이 망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대우 기획해체설’이다.
 
필자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김 전 회장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한다. 그렇다 해도 당시 재계 2위였던 대기업을 정부 관리가 사사로운 개인 감정으로 문을 닫게 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외환보유액이 바닥난 당시 한국 정부는 실제로 대우를 도울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게 낫지 않을까.
 
관료집단과 김 전 회장이 충돌한 대목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대한 대응방식이다.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등 관료집단과 학자들은 IMF 처방에 따라 철저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다. 반면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가 기업이 아닌 금융의 문제인 만큼 수출을 늘려 무역흑자 500억 달러를 달성하면 IMF 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우사태는 방만한 차입경영을 한 기업은 결국 퇴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김대중 정부의 재벌정책이 표방해 온 대기업 총수의 경영책임을 묻고 실패한 경영인을 퇴진시키는 대표적인 선례를 보여준 셈이다. 필자가 볼 때 대우사태의 최종적인 교훈은 재벌그룹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가 우리나라에서 확실하게 종언을 고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된 점이다. 대우사태 이후 대기업이나 정,관계에서 우리나라의 그 어느 누구도 재벌의 대마불사론을 외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바둑 얘기로 돌아가 보자. 바둑에서는 아무리 큰 대마라도 두 집(家)이 나야 살 수 있다. 대마는 잘 죽지 않는다는 통념에 빠져 있다가는 두 집이 못 나서 몰살 당하기 쉬운 게 또한 대마이기도 하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이 실패한 것은 결국 차입경영에 올인한 끝에 대우라는 대마를 죽이는 화를 자초한 꼴이다. 최후의 순간에도 이 '두 집'을 확보하는 자금계획을 갖고 있었어야 했으나 이 마지막 계가(計家)를 소홀히 한 탓이다.
 
김 전 회장이 한국 경제에 남긴 빛과 그림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제 와서 희생양으로 자처하는 것은 뒷맛이 다소 씁쓸한 느낌이다. 그는 대우 해체 후 분식회계, 사기대출, 횡령 등의 혐의로 2006년 법원에서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 17조9253억 원이 확정됐다. 대우그룹이 무너진 뒤 무려 30조 원의 국민 세금이 대우 계열사에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투입됐다. 이번 대화록 출간을 추징금 납부문제와 관련해서 국민들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김 전 회장은 부인과 자녀 명의로 국내외에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가 납부한 추징금은 법원이 부과한 추징금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만일 김 전 회장이 미납 추징금 납부에 보다 정성과 성의를 보였다면 그가 오랜만에 털어놓은 대화록 속 ‘비화(秘話)’와 응어리가 좀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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