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성주 이씨(星州李氏)-186,188명
(42)성주 이씨(星州李氏)-186,188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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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순유(李純由)는 신라가 망하자 지금의 경북 성주읍 경산동에 숨어 살았다. 고려 태조는 "나의 신하는 아니지만 같은 백성"이라며 호장 벼슬을 내린다. 후손들이 대대로 호장을 맡아오면서 성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성주는 경북 성주군의 지명이다.

고종 때의 인물 이장경은 성주이씨의 중시조다.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이장경을 경산부원군에 봉했다. 손자 이승경은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하면서 공을 세웠다. 원나라 황제가 그의 조부 이장경을 용서군공으로 추봉하였다. 중흥시조 이장경이 용서군공이 되었기에 성주이씨를‘용서이씨’라고도 한다.

이조년(李兆年)은 이장경의 다섯째 아들이다. 그는 17살의 나이로 형들과 함께 문과에 올라 강릉부사 등을 역임했다. 충숙왕의 복위에 공을 세웠으며 1285년 예빈내급사를 거쳐 정당문학에 승진하였고 다시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해졌다. 그는 인품이 근엄하고 곧아서 충심으로 간언하는 일이 많았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시조‘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는 그의 유명한 작품이다. 고려 때 이승경은 평장사가 되어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쳤다.

이 제는 이성계의 셋째 딸과 결혼하고 조선 건국에 앞장서 흥안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목숨을 잃었다. 이 발은 세종 1년에 경상감사를 지냈다.

이문건은 1513년 사마시에 합격했다,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죽자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옛 친구나 문하생들이 조문을 못했는데 그는 조문하고 통곡하여 9년 동안 과거를 못 보았다. 그는 청백하기로 유명했으며 글씨에 뛰어났고 부모의 묘소에 처음으로 직접 써서 세운 한글비는 매우 유명하며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제독으로 출전한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은 성주이씨 후손이다. 그는 중국 요양성에서 참지정사를 지낸 이승경의 후손이다. 이여송은 명나라 말기의 장수로 요동 철령위 출생이다.

그는 명나라로 귀화한 조선인 출신의 명나라 요동총병관 이성량의 아들이다. 이성량은 서자 출신이었는데 조선 사회의 서자에 대한 심한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명나라로 귀화했다.

1592년 이여송은 닝샤(寧夏)에서 발배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동정제독(東征提督)으로서 이를 평정하여 장수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그는 항상 말을 타고 다니면서 한쪽 손에는 커다란 창을 들고 다녔다.

이여송은 1592년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방해어왜총병관(防海禦倭總兵官)으로 부하 천만리(千萬里), 이여백(李如柏) 등과 4만3천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여송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도와주러 왔다는 원군이라는 명분하에 정작 일본군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 분개한 유성룡과 이항복, 이덕형은 이여송에게 제대로 싸울 것을 재촉했다.

1593년 1월 드디어 남하한 이여송은 유성룡 등이 이끈 조선군과 합세하여 일본군을 대파하고 평양을 탈환하였다. 그 길로 남진하여 서울로 향하던 도중 벽제관 전투에서 매복한 일본군에 기습 공격을 당해 패했다.

기세가 꺾인 이여송은 평양성을 거점으로 화의 교섭 위주의 소극적인 활동을 하다가 그 해 말에 철군했다. 1597년 요동총병관이 되었으나 이듬해 1598년 토번(土蕃)과의 전투 도중에 전사하였다.

이여송은 조선에 있을 때 무명(無名)의 조선 여인을 통해 아들을 낳았는데 현재 경상남도 거제시에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여송의 아우인 이여매는 역시 부총병으로 맏형 이여송, 중형 이여백과 더불어 공을 세웠다.

현대 인물은 이병희(제1무임소장관, 국회부의장), 이용택(국회의원), 이대순(국회의원, 체신부장관), 이종율(정무제1장관), 이재식(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 성업공사부사장), 이학봉(안기부차장), 이해봉(대통령행정비서관), 이건상(민정당총무국장), 이중근(대검차장검사, 대통령법무수석비서관), 이재훈(서울민사지법부장판사), 이상현(남부지원부장판사), 이의순(세방기업 회장), 이운일(신영섬유 회장), 이삼열(국도화학공업 대표이사), 이규동(육군준장, 대한노인회명예회장), 이희근(공군대장예편, 산업기지개발공사사장), 이규광(육군준장), 이소동(육군대장), 이종진(보사부의정국장, 국립중앙의료원장), 이정한(경상대총장), 이상춘(서울대음대학장), 이근직(내무부장관, 농림부장관), 이기주(경남지사), 이우현(국회의원), 이효상(국회의원), 이문호(철학박사, 경북대교수), 이상만(서울대교수), 이선주(약학박사, 서울대교수), 이헌자(의학박사, 연세대교수), 이근성(부장판사), 이기현(동진산업사장), 이대식(변호사), 이동열(한국사료동경지점장), 이명섭(변호사), 이백순(양구군수), 이범열(부장판사), 이상덕(부산은행장), 이상덕(성동구청장), 이호인(전주대총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밀직공파, 참지공파, 시중공파, 유수공파, 문열공파, 초은공파, 광평군파, 판서공파, 도은공파, 경무공파, 평간공파, 문경공파, 총제공파, 판운공파, 동지공파, 참판공파, 간성공파, 고은공파, 장절공파, 도정공파, 문과공파, 봉례공파, 첨추공파 등이다.

본관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지명이다. 6가야연합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의 영토였다. 6세기 무렵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여 개칭되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를 두어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성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1616년(광해군 9)에는 신안군으로, 1631년(인조 1)에는 신안현으로 개칭되어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6년에는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관할면이 성주·벽진면 등 9개면으로 폐합되었고 1979년에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성주김씨(星州金氏), 성주도씨(星州都氏), 성주박씨(星州朴氏), 성주배씨(星州裵氏), 성주백씨(星州白氏), 성주여씨(星州呂氏), 성주이씨(星州李氏), 성주전씨(星州全氏), 성주초씨(星州楚氏), 성주최씨(星州崔氏), 성주한씨(星州韓氏), 성주현씨(星州玄氏), 성주황씨(星州黃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전남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 경북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 경북 김천시 지례면 울곡리, 경남 남해군 남해읍 평현리,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전남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 경북 칠곡군 석적읍 포남리, 경남 사천시 사남면 초전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506명이다. 문과 102명, 무과 32명, 사마시 352명, 역과 2명, 의과 12명, 음양과 1명, 율과 2명, 주학 3명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성주이씨는 1985년에는 총 37,251가구 153,146명, 2000년에는 총 58,134가구 186,18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1천여 가구,3만3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9,027명, 부산 17,773명, 대구 23,533명, 인천 3,375명, 경기 12,879명, 강원 4,264명, 충북 5,216명, 충남 8,456명, 전북 5,468명, 전남 5,498명, 경북 18,081명, 경남 18,375명, 제주 1,201명이다. 대구 지역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였다. 그 다음 부산, 경남, 경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었다. 15년 뒤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2,160명, 부산 20,165명, 대구 29,299명, 인천 6,712명, 광주 2,643명, 대전 5,350명, 울산 3,644명, 경기 27,788명, 강원 3,973명, 충북 4,838명, 충남 5,136명, 전북 4,874명, 전남 3,234명, 경북 15,599명, 경남 19,438명, 제주 1,33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대구, 경북, 경남 지역 등 영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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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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