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창녕 성씨(昌寧成氏)-167,903명
(46)창녕 성씨(昌寧成氏)-167,903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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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 때 호장을 지냈다. 호장은 고려시대에 지방민을 다스리는 호족장이다. 성인보 이래 대대로 창녕에서 호장을 지낸 후손들이 창녕을 본관으로 삼았다. 성씨가 명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성인보의 아들 성송국이 문하시중과 군기감을 역임하면서 시작된다.

창녕성씨의 계보는 성송국의 아들 성공필과 성한필 등 형제 대에서 ‘노상파(路上派)’와 ‘노하파(路下派)’등 2개 파로 갈린다. 길을 가운데 두고 아랫마을과 윗마을에 갈라 살았던 데서 계파의 명칭이 유래했다. 그 이후의 분파는 6세조를 파조로 하여 13개 파로 나누어진다.

성씨는 조선 개국 때 성석린, 성석용, 성석연 3형제가 개국에 참여, 고관에 오름으로써 가문의 번창을 가져왔다. 독곡 성석린과 회곡 성석용, 상곡 성석연 등 3형제는 조선 초에 성씨 가문의 번성을 가져온 중추적 인물이다. 3곡(三谷)으로 불린 이들 3형제는 바로 고려 말의 절신 성여완의 아들들이다. 아버지와 아들 3형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간 셈이다.

이들 ‘삼곡’집안 중 특히 회곡의 후손에서는 성삼문, 성빙수 등 절신이 나왔으며 상곡의 후손에서는 성현, 성혼 등 이름난 학자가 많이 나왔다.

매죽헌 성삼문(1418-1456)은 도총제 성 승의 아들이며 성석용의 증손자다. 1456년(세조1)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탄로 나자 신념과 절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조는 “나의 녹을 먹는 자가 어찌 반역을 꾸몄느냐”고 물었다. 매죽헌은 “나으리는 나라를 도둑질했거니와 삼문은 신하된 도리로서 임금이 쫓겨남을 차마 볼 수 없어 옛 임금을 다시 모시고자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성삼문은 세조를 전하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 불렀다.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성삼문의 집안은 멸족의 비운을 겪는다. 그의 아버지 성 승과 성삼고, 성삼빙, 성삼성 등 세 아우 그리고 성 원, 성맹첨, 성맹평, 성맹종과 갓난아기 등 아들들까지 모두 죽음을 당했다.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불과 38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그는 집현전 학자로서 정음청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음운 연구에 종사했다. 성삼문이 세상을 떠난 뒤 가산을 몰수해 보니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의 녹은 한 톨도 손에 대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성빙수는 성삼문과 6촌간이다. 그는 아버지 성희가 단종 복위 사건에 관련되어 심한 고문과 함께 유배를 당한 뒤 돌아와 죽자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 파주에 은거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실존인물로 그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1595-1664)이다. 성이성은 곧은 성품 때문에 네 차례나 암행어사를 한다. ‘인조실록’과 그가 쓴‘암행일지’그리고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교와문고’에 자세히 나온다. 문중에서는 최근에야 춘향전이 성이성을 모델로 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기생과의 사랑 놀음에 양반 자제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성도령이 이도령이 된 까닭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상북도 봉화에는 현재 성이성의 종택이 남아 있다.

현대 인물은 성좌경(인하대 총장), 성낙서(충남대 총장), 성창환(경제학박사, 고려대경영대 명예교수), 성백(고려대문과대학장), 성경린(국악원장), 성낙승(문화공보부실장), 성주호(의학박사, 연세대의대학장), 성백능(이학박사, 서울대 교수), 성래운(연세대교수), 성기철(교수), 성기조(시인), 성석기(조선일보상임감사), 성기수(공학박사, 과기원시스템공학센터 소장), 성정순(체육회이사), 성낙응(의학박사, 이화여대의대교수), 성낙정(경인에너지 사장), 성해기(산림청임정국장), 성민경(변호사), 성태경(국회의원), 성백전(한국해외건설 사장), 성낙중(새서울건반사장), 성상영(삼성물산, 제일모직, 대성모방사장), 성진영(한일염직사장), 성순택(동아공업, 건일식품냉동 사장), 성창순(인간문화재), 성락서(국회의원), 성자선(국회의원), 성종호(국방연구소장), 성병국(해군준장), 성병문(해군준장), 성용욱(감사원사무총장), 성환옥(청와대경호실차장), 성두현(한일협력위원회상임위원), 성낙진(삼공산물사장), 성기영(제일극장, 백화점 사장), 성기조(시인), 성병욱(중앙일보편집국장), 성대석(KBS해설위원), 성백진(스포츠서울편집부장), 성상철(서울대교수), 성영권(고려대교수), 성원경(건국대교수), 성현경(서강대교수), 성인숙(한국일보월간편집부장), 성낙오(동아일보편집부장), 성해룡(대성중공업 회장), 성병탁(동국대교수), 성대동(동아대교수), 성삼경(고려대경영대교수), 성환상(진주교대교수), 성홍제(삼성물산 이사), 성창제(삼성생명 이사)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3世 문(文) 무(武), 34世 균(均) 배(培), 35世 선(善) 은(銀), 36世 강(康) 우(雨), 37世 원(元) 춘(春), 38世 하(夏) 연(然), 39世 신(信) 교(敎), 40世 구(九) 의(義), 41世 승(承) 만(滿), 42世 동(東) 채(彩), 43世 용(容) 지(志), 44世 중(中) 재(在), 45世 상(商) 금(錦), 46世준(準) 홍(洪), 47世 화(和) 수(秀), 48世 남(南) 칠(七), 49世 효(孝) 치(致), 50世 백(百) 록(錄), 51世 운(雲) 호(浩), 52世 래(來) 상(相) 이다.

본관 창녕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757년(경덕왕 16)에 화왕군으로 바뀌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창녕군으로 고치고,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 : 密陽)의 속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창녕군·영산군이 되었으며,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산군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창녕 본관 성씨는 창녕감씨(昌寧甘氏), 창녕공씨(昌寧孔氏), 창녕구씨(昌寧具氏), 창녕김씨(昌寧金氏), 창녕박씨(昌寧朴氏), 창녕성씨(昌寧成氏), 창녕손씨(昌寧孫氏), 창녕염씨(昌寧廉氏), 창녕이씨(昌寧李氏), 창녕장씨(昌寧張氏), 창녕정씨(昌寧鄭氏), 창녕정씨(昌寧丁氏), 창녕조씨(昌寧曺氏), 창녕최씨(昌寧崔氏), 창녕표씨(昌寧表氏), 창녕황씨(昌寧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충북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충남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경북 영천시 북안면 신리, 경북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경남 창녕군 창녕읍 직교리, 경남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경남 창녕군 대지면 효정리, 경남 창녕군 고암면 억만리,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 경남 창녕군 창녕읍 외부리, 충남 대덕군 구측면 둔곡리, 충남 대덕군 구측면 금탄리, 전북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전북 진안군 동향면 자산리, 경북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 경북 상주시 모서면 삼포리, 경북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 경북 상주시 모서면 지산리, 경남 의령군 궁류면 계현리, 경남 창녕군 이방면 성산리, 경남 창녕군 대지면 창산리, 경남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482명이다. 문과 134명, 무과 21명, 사마시 322명, 음양과 5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창녕성씨는 1985년에는 총 37,903가구 158,385명, 2000년에는 총 52,058가구 167,90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4천여 가구,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6,280명, 부산 18,368명, 대구 10,473명, 인천 5,071명, 경기 16,531명, 강원 3,584명, 충북 5,141명, 충남 16,141명, 전북 7,139명, 전남 7,740명, 경북 11,218명, 경남 19,753명, 제주 896명이다. 부산,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충남, 경북, 대구에도 많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3,917명, 부산 18,318명, 대구 12,331명, 인천 7,875명, 광주 2,596명, 대전 7,173명, 울산 3,717명, 경기 29,784명, 강원 3,173명, 충북 5,200명, 충남 7,759명, 전북 5,310명, 전남 3,652명, 경북 9,854명, 경남 1,6312명, 제주 932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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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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