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강릉 김씨(江陵金氏)-165,953명
(47)강릉 김씨(江陵金氏)-165,953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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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명주군(강릉의 옛 이름)왕 김주원(金周元)이다. 그는 신라 통일을 이룩한 무열왕 김춘추의 6세손이며 37대 선덕왕 때 각간으로 시중(신라 최고 관직)겸 병부령(군사 총책임자)을 지냈다. 신라 6만 군을 통솔하는 총사령탑으로 그의 권한은 막강했다. 그는 명주를 중심으로 양양·삼척·울진 등 영동 일대를 통치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강릉김씨는 신라김씨 중 제일 처음 분적했다. 시조는 김종기, 김헌창, 김 신 등 3명의 아들을 두었다. 이중 둘째인 김헌창은 헌덕왕 때 공주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국호를‘장안’이라 하고 전라·충청도 지방을 점령했으나 실패하고 자결했다. 맏이 김종기의 손자 김 양은 서기 838년 민애왕인 김 명이 희강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는 패륜을 범하자 이에 분개, 청해진에서 군사를 일으켜 민애왕을 제거했다. 그 뒤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세우고 정권을 왕실로 돌렸다.

강릉김씨는 셋째 김 신의 후손들이 주류를 이룬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그가 명주군왕이 되기까지의 내력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회의에서 김주원을 국왕으로 추대키로 했다. 그러나 그는 경주왕실에서 북쪽 20리 밖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신회의가 열리는 날 때마침 내리는 폭우로 알천(현 경주 부근의 하천)을 건너지 못했다. 이에 군신들이 “이는 천명이라”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니 이가 곧 원성왕이다.

그 후 원성왕은 그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했으나 끝내 이를 사양하고 고향인 강릉으로 은거했다. 그러자 원성왕은 그의 겸손함에 더욱 감복, 명주군 왕으로 봉하고 명주를 중심으로 한 익령(양양)·삼척·울진·평해를 식읍으로 하사했다. 강릉김씨는 조선 명종-숙종 대에 8명의 판서(선팔판), 영조-정조 대에 또 8명의 판서(후팔판)를 배출한다. 현재 서울의 팔판동은 당시 강릉김씨의 판서들이 집단으로 살면서 생긴 이름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스물한 살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그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통분, 공부하던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난다. 김시습은 변덕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영원한 야인으로 살았다.

성종 2년 그의 나이 37세 되던 봄, 그는 왕의 부름을 받고 금오산을 떠나 서울로 왔다. 20여 년 만에 서울에 와 보니 젊어서 친했던 서거정은 예문관 대제학, 정창손은 영의정, 김수온은 좌리공신이 되어 있었다. 이중 정창손은 사육신 사건의 참화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어느 날 정창손이 입궐하는 것을 보고‘야, 정가 도둑놈아 아직도 살아 있느냐.’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그러자 정창손은 그의 기에 눌려 못 들은 체하고 그냥 지나쳤다.

성종 13년 48세 되던 해 조정에서‘윤씨폐비문제’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이자 다시 괴나리봇짐을 꾸렸다. 다시 시작된 유랑과 방황의 생활 10여 년. 마침내 성종 24년 충청도 무량사에서 숨을 거두니 이때 그의 나이 59세였다.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불행한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금오산에서 독서와 저술에 전념할 당시 국문학 사상 불후의 명작인‘금오신화’를 남긴 것이다.

사예(司藝) 김충정의 아들 김첨경은 1561년(명종 16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첨정을 지내고 강릉부사로 나갔다가 뒤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감찰 김종윤의 아들 김충렬은 경기도사를 거쳐 춘추관 편수관으로 중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예조판서 김첨경의 현손(玄孫)인 김시혁은 공조판서와 좌참찬을 역임하고 판돈령부사에 올랐다. 김시환과 김시형은 예조 및 병조판서를 각각 역임했다. 김기종은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영해군에 봉해졌으며, 호조판서를 지냈다. 본명이 김해경이며‘날개’로 이름을 날린 풍자문학의 이 상도 후손이다.

현대 인물은 김진구(제헌국회의원), 김진백(평통자문위부의장), 김진만(국회부의장), 김인기(국회의원), 김 삼(독립운동가, 국회의원), 김진봉(국회의원, 명지대학장), 김주남(건설부장관), 김흥기(재무부차관), 김태경(경기도지사, 농개공사장), 김용경(문학박사, 삼육대교수), 김환경(농학박사, 고려대교수), 김진웅(법학박사, 고려대교수), 김진목(문학박사, 청주대교수), 김충기(교육학박사, 건국대교수), 김남득(관동대교수), 김문기(국회의원, 상지대이사장), 김진의(단국대상경대학장), 김후경(국사편찬위원회연구실장), 김진흥(한국종합금융회장, 강릉김씨대종회장), 김준기(동부그룹회장), 김의경(극단‘현대’대표), 김진덕(중요무형문화재13호), 김명수(신아일보회장), 김원기(강원도의원), 김운기(국회의원, 서울고법부장판사), 김덕기(충남경찰국경무과장), 김흥기(경제기획원차관, 산업은행총재), 김진환(동해시장), 김진염(내각사무처이사관), 김연승(상공부광무국장), 김시경(정읍군수), 김흥경(민정당중앙위원), 김연종(강릉김씨대종회부회장), 김진석(당진군수, 연기군수), 김성기(치안국과학연구소장), 김창기(강릉-삼척경찰서장), 김경명(종로경찰서장), 김연기(양양군수), 김흥남(종로세무서장), 김남형(강릉시장), 김경산(속초시장), 김진욱(동대문구청장), 김진암(김해교도소장), 김기섭(양구군수), 김운기(명주군수, 횡성군수), 김명기(묵호항만청소장), 김완기(노동부이사관), 김남장(공업진흥청기획실장), 김남성(고성-정선군수), 김범래(국립동물검역소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4世 병(秉)○, 35世 연(演)○, 36世 ○경(卿), 37世 진(振)○, 38世 ○기(起), 39世 남(南)○, 40世 ○래(來), 41世 동(東)○, 42世 ○유(猷), 43世 성(成)○, 44世 ○현(玄), 45世 만(萬)○, 46世 ○구(九), 47世 명(命)○, 48世 ○영(寧), 49世 무(茂)○, 50世 ○기(紀), 51世 유(庾), 52世 재(宰), 53世 성(聖)중(重), 54世 규(揆), 55世 하(夏), 56世 원(元), 57世 두(斗), 58世 택(澤), 59世 오(吾), 60世 장(章)이다.

본관 강릉은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하였다. 1955년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통폐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을 분리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을 강릉시로 통합하였다.

강릉 본관 성씨는 강릉강씨(江陵姜氏), 강릉고씨(江陵高氏), 강릉구씨(江陵具氏), 강릉권씨(江陵權氏), 강릉김씨(江陵金氏), 강릉단씨(江陵段氏), 강릉류씨(江陵柳氏), 강릉문씨(江陵文氏), 강릉박씨(江陵朴氏), 강릉성씨(江陵成氏), 강릉수씨(江陵水氏), 강릉신씨(江陵申氏), 강릉왕씨(江陵王氏), 강릉유씨(江陵劉氏), 강릉윤씨(江陵尹氏), 강릉이씨(江陵李氏), 강릉임씨(江陵林氏), 강릉전씨(江陵全氏), 강릉정씨(江陵鄭氏), 강릉정씨(江陵程氏), 강릉조씨(江陵曺氏), 강릉주씨(江陵朱氏), 강릉진씨(江陵陳氏), 강릉채씨(江陵蔡氏), 강릉천씨(江陵千氏), 강릉최씨(江陵崔氏), 강릉하씨(江陵河氏), 강릉한씨(江陵韓氏), 강릉함씨(江陵咸氏), 강릉홍씨(江陵洪氏), 강릉황씨(江陵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경기도 양주시 동두천읍 보산리, 충남 연기군 서면 청라리,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일원, 전북 익산시 낭산면 일원, 강원도 삼척군 일원, 강원도 강릉시 일원,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면 일원 등이다.

과거 급제자는 모두 326명이 있다. 문과 97명, 무과 19명, 사마시 205명, 역과 1명, 의과 1명, 음양과 2명, 율과 1명이다. 인구는 1985년 150,577명, 2000년 165,963명이다. 15년 만에 1만5천여 명이 늘어났다. 2000년 현재 서울 35,641명, 부산 6,717명, 대구 3,676명, 인천 10,188명, 광주 491명, 대전 3,350명, 울산 2,723명, 경기 38,569명, 강원 35,989명, 충북 8,194명, 충남 7,510명, 전북 2,346명, 전남 990명, 경북 5,798명, 경남 3,523명, 제주 258명이다. 본관 강릉이 있는 강원도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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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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