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단양 우씨(丹陽禹氏)-162,479명
(48)단양 우씨(丹陽禹氏)-162,479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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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우 현(禹玄)은 고려 때 호장을 지냈다. 그의 10세손 우현보가 고려 공양왕 때 단양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으로 했다. 우현보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그는 청백리에 오르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우중대는 단양우씨를 명문의 위치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의 아들 천규, 천계, 천석, 천우, 천성 등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해 가문을 빛낸다. 맏이인 우천규의 아들이 바로 여말의 석학인 우 탁이다.

우 탁(1263~1342)은 단양우씨를 역사에 드러낸 인물이다. 충북 단양 출신인 그는 진사에 합격, 벼슬에 올랐다. 우리나라 최초로 역학(易學)을 개척한 대학자로서 또 서릿발 같은 기개로 왕의 패륜을 극간했던 당대의 명신이다. 1308년 갓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부왕(충열왕)이 총애했던 숙창비와 정을 통하는 등 정사를 멀리하고 애욕의 늪에 빠졌다.

당시 우 탁의 벼슬은 감찰규정이었다. 어느 날 그는 도끼 한 자루와 거적때기를 들고 어전에 나간다. 거적때기 위에 엎드려 “충열왕 능의 흙이 채 마르기도 전에 부왕이 총애했던 숙창비를 희롱하는 처사는 인륜을 저버린 패륜”이라는 내용의 칼날 같은 상소를 올렸다.

왕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그의 직간에 다른 신하들은 몸을 떨었다. 왕은 잘못을 시인하고 우 탁에게 일어서라고 명령했다. 이후 우탁은 벼슬을 버리고 경북 안동시 예안면에서 주역 연구에 여생을 바친다. 그의 호 역동(易東)은‘동방에 역학을 처음 들여온 인물’이라는 뜻으로 세인들이 붙인 별명이다. 한편 충북 단양에서는 해마다 우 탁의 예술혼을 되새기는‘역동시조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우 공은 1467년 이시애 난 때 공을 세웠다. 우성전, 우배선, 우 수, 우치적, 우경방, 우준민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원종공신 일등에 책록됐다. 우상중, 우 정은 1636년 병자호란 때 근왕병을 이끌고 적과 싸워 공을 세웠다. 우맹선은 중종 때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우동선, 우재룡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다. 우병기는 상해 임시정부 때 독립자금을 송금한 것이 탄로되어 옥사했다.

원예육종학자인 우장춘(禹長春,1898-1959)은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아버지 우범선(禹範善)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나카(酒井ナカ)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을미사변 당시 아버지는 조선에서 훈련대장을 역임하던 중 일본인 자객들과 함께 공모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했다. 그 후 우범선은 조선인에 의해 살해됐다. 그가 죽은 후에 일본 정부는 우장춘과 그의 가족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했다. 우장춘은 1916년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에 입학한다. 대학 졸업 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 고원(雇員)으로 취직했다. 1936년에는 그의 모교에서‘종(種)의 합성’이라는 논문으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장춘은 일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일본인의 양자가 됐으며‘스나가나가하루(須永長春)’라는 일본 이름을 얻었다.

1945년 조선이 해방될 때까지 일본 유수의 종묘사인 다키이의 농장장으로 일했다. 1949년에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창설한 이승만 정부는 우장춘에게 연구소의 운영을 부탁했고, 그는 1950년 3월 대한민국에 귀국했다. 부산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내 여기산에 있다.

현대 인물은 우정상(국회의원), 우 문(국회의원), 우홍거(국회의원), 우돈규(국회의원), 우희창(국회의원), 우만형(내무차관), 우병규(국회의원), 우승규(언론인), 우형주(공학박사, 서울대명예교수), 우종학(약학박사, 서울대명예교수), 우원식(약학박사, 서울대교수), 우호(숭전대학장), 우대규(한일약품사장), 우용해(쌍룡회장), 우상기(신도리코사장), 우상덕(의학박사, 한양대외래교수), 우종림(의보조합연합회장), 우경윤(육군소장), 우국일(보험공사연수원장, 육군준장), 우상진(미원모방회장), 우승환(동해광업회장), 우순제(해병대소장), 우대규(한일약품사장), 우복주(해군준장), 우명희(삼원산업사장), 우영제(변호사), 우완식(동일석유사장), 우예형(공인회계사), 우광택(판사)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대제학공파, 예안공파, 안정공파, 집의공파, 판서공파, 참의공파, 봉상정공파, 문강공파, 정평공파, 문숙공파 등이다. 항렬자는 26世 영(榮), 27世 정(鼎), 28世 명(命), 29世 종(鍾), 30世 제(濟), 31世 식(植), 32世 희(熙), 33世 철(喆), 34世 용(鎔), 35世 수(洙), 36世 병(柄), 37世 섭(燮), 38世 재(在), 39世 호(鎬), 40世 영(永), 41世근(根), 42世 경(炅), 43世 균(均), 44世 진(鎭), 45世 순(淳) 이다.

집성촌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계곡동, 경북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경북 문경시 가은읍 하괴리, 경남 창녕군 장마면 동정리,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 경남 양산시 어곡동 등이다.

대구광역시 남구 상인동에는 단양우씨 1백60여 가구, 8백여 명이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산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시에 소속되어 있지만 도시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대덕산 기슭 천연 노송이 바람에 휘어지는 아늑한 분지다.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은 고려 말 정략장군 우 존이다. 그는 공양왕 때 예조정랑 등을 역임하다 조선개국 후 전라도에 유배되어 장살당한 우홍명의 손자다. 정도전 등의 쿠데타 주체세력의 보복을 피해 이 마을에 은신했다. 정치 권력이란 한낱 뜬구름 같은 것인가. 때문에 그는 후손들에게‘권력을 탐하지 않는 선비정신’을 당부하며 초야에 묻혀 살았다.

본관 단양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지명이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318년(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914년에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단양(丹陽)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단양우씨(丹陽禹氏), 단양이씨(丹陽李氏), 단양장씨(丹陽張氏), 단양전씨(丹陽田氏), 단양지씨(丹陽池氏), 단양최씨(丹陽崔氏), 단양피씨(丹陽皮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우제일(禹濟一,1858 戊午生) : 문과(文科) 고종24년(1887)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우즙(禹楫,1858 戊午生) : 문과(文科) 성종18년(1487) 별시 삼등(三等), 우성전(禹性傳,1542 壬寅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병과(丙科), 우창적(禹昌績,1623 癸亥生) : 문과(文科) 현종1년(1660) 증광시 을과(乙科) 등 모두 196명이 있다. 문과 32명, 무과 30명, 사마시 132명, 율과 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단양우씨는 1985년에는 총 36,708가구 152,311명, 2000년에는 총 50,789가구 162,47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4천여 가구,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4,192명, 부산 13,679명, 대구 13,488명, 인천 4,481명, 경기 18,416명, 강원 6,863명, 충북 8,114명, 충남 9,632명, 전북 4,016명, 전남 5,815명, 경북 19,327명, 경남 13,492명, 제주 783명이다. 경북, 대구, 부산, 경남 등 영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1,526명, 부산 13,418명, 대구 15,384명, 인천 7,638명, 광주 1,405명, 대전 4,823명, 울산 5,050명, 경기 31,272명, 강원 5,283명, 충북 8,006명, 충남 5,616명, 전북 3,052명, 전남 3,467명, 경북 15,752명, 경남 9,971명, 제주 816명이다. 대구, 경북, 충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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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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