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연안 차씨(延安車氏)-161,325명
(49)연안 차씨(延安車氏)-161,325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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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차씨의 득성시조(得姓始祖)는 차무일(車無一)이고 시조는 고려 왕 건 때 공을 세운 차효전(車孝全)이다. 차무일은 신라 태조가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워 시중벼슬에 오르고 왕으로부터 차씨 성을 받았다. 1258년(고종 45) 차송우(車松祐)가 공을 세워 위사공신(衛社功臣)의 호를 받고 지복주사(知復州事)가 되었다. 복주는 연안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차원부는 고려 말 조선 초 때 인물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간의대부에 이르렀다. 당대 정몽주, 이 색 등과 함께 명성을 떨치던 학자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고려 말 정치가 문란해지자 사퇴하고 평산의 수운암동에 은거했다. 두문동 72인의 한사람이다.

연안차씨는 16세 차송우의 큰 아들 차득규가 18세 차포온으로 이어진다. 차포온의 네 명의 아들 차수동, 차명동, 차종로, 차안로가 각각 문학공파, 전서공파, 월파공파, 상장군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차송우의 2남 차덕규는 송림백공파의 파조가 되어 모두 5개 파로 이루어져 있다.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 평정 때 공을 세운 차운혁(車云革), 임진왜란 때 평양성 수복의 로포문(露布文)을 지어 명나라를 놀라게 한 차천로(車天輅) 등이 가문을 빛냈다. 근대에는 포우단(砲牛團)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차도선(車道璿), 대동공보(大同公報)를 창간하여 독립운동을 한 차석보(車錫甫),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큰 활약을 한 차이석(車利錫) 등이 있다.

차경석은 보천교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1909년 교조 강일순으로부터 교통(敎統)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교주가 죽자 회의를 품고 금산사 등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여러 해 동안 도를 닦은 끝에 선도교를 개창, 포교를 시작했다. 1921년 보화교로 개칭하고, 1972년 다시 보천교로 개명하여 교세 확장에 힘썼다.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차지철(1934~1979)은 5·16 군사정변 때 박치옥 공수단장의 소개로 박정희 장군의 경호장교로 활동했다.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을 계기로 박종규 경호실장 후임으로 경호실장이 되었다. 그 뒤 월권행위로 대통령 비서실과 중앙정보부와의 마찰이 잦았다. 재야와 야당 문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으며,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의원직 제명을 주도했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사태가 나자 군 명령 계통을 무시하고 공수단 투입을 명령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의 전횡으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1979년 10월 26일 피격당해 죽었다.

현대 인물은 차규헌(교통부 장관), 차균희(농림부 장관), 차익규(대통령수석비서관), 차수명(특허청장), 차화준(기획원차관보), 차상필(상공부차관보, 대한상의상근부회장), 차경모(국회의원), 차형근(국회의원), 차낙훈(고려대 총장, 숙명여대총장), 차기벽(성균관대교수), 차문섭(단국대교수), 차병권(서울대 교수), 차상원(서울대교수), 차석기(고려대 교수), 차영선(고려대 교수), 차인석(서울대 교수), 차재호(서울대 교수), 차주환(서울대교수), 차철환(고려대 교수), 차하순(서강대 교수), 차희선(의학박사, 국립정신병원장), 차유배(럭키금성그룹상임고문), 차일석(서울시부시장, 삼호농산 회장), 차인태(MBC아나운서), 차윤근(국립의료원장), 차경섭(차병원 원장), 차병호(대한한의사협 회장), 차행열(낭암학원설립자, 이사장), 차영조(변호사), 차의영(충남도경찰국장), 차주경(한학자), 차재순(이화여대 교수), 차상준(교통부항공국장), 차운식(동아자동차공업 이사), 차경준(빙그레 감사), 차민도(조선석재 감사), 차행칠(동아극장대표), 차갑인(서울대 교수), 차문호(서울대 교수), 차문섭(단국대 교수), 차병억(변호사), 차균택(동국대문리대학장), 차근호(조각가), 차광석(숙명여대 교수), 차남진(철학박사, 목사), 차명호(사학자), 차병권(서울대 교수), 차사백(무학여고 교장), 차범석(극작가), 차재덕(전북대 교수), 차주원(평곡산업 대표), 차종환(한미교육연합회이사장), 차완용(천지기업사 대표), 차국찬(미주한인기독교 회장), 차종옥(금해수산 회장), 차건성(경향신문 이사), 차미리사(근화학원 설립자), 차 욱(동양당 대표), 차종태(산림조합전무 이사), 차동섭(의학박사), 차성호(환경관리공단 이사장), 차준회(안기부경기도 실장), 차주섭(원주건설대표), 차정웅(태평양기업 대표), 차희진(뉴코리아해운 대표이사), 차충석(의학박사), 차창덕(화가), 차형동(쌍용건설 부사장), 차정연(군산대교수), 차종선(예원예술대 총장), 차종권(변호사)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7世 훈(壎), 38世 용(鏞) 종(鍾), 39世 순(淳) 준(濬), 40世 상(相) 병(秉), 41世 환(煥) 열(烈), 42世 재(載) 재(在), 43世 현(鉉) 호(鎬), 44世 영(永) 태(泰), 45世 수(秀) 식(植), 46世 광(光) 용(容), 47世 기(基) 배(培), 48世 회(會) 선(善), 49世 수(洙) 승(承), 50世 동(東) 승(乘)이다.

집성촌은 충남 서산시 일원, 경남 합천군 청덕면 삼학리, 경남 합천군 덕곡면 장리, 경남 합천군 청덕면 운봉리, 평남 대동군 용산면 귀촌리, 평남 평원군 동송면 군자리, 평북 선천군 수청면 가물남동, 평남 순천군 풍산면 고읍리, 평남 평원군 동송면 월봉리 등이다.

본관 연안은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일원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동음홀(冬音忽) 또는 고염성이라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해고군(海皐郡)으로 바꾸었다. 고려에서는 염주·영응현·복주·석주·온주 등으로 고쳐 불렀고,1310년(충선왕 2)에 연안(延安)으로 고쳤다. 1413년(태종 13)에 연안도호부가 되었고,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연안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안군은 다시 배천군(白川郡)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연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연안고씨(延安高氏), 연안김씨(延安金氏), 연안단씨(延安段氏), 연안단씨(延安單氏), 연안류씨(延安柳氏), 연안명씨(延安明氏), 연안송씨(延安宋氏.1), 연안송씨(延安宋氏.2), 연안이씨(延安李氏), 연안인씨(延安印氏), 연안전씨(延安田氏), 연안정씨(延安鄭氏), 연안진씨(延安陳氏), 연안진씨(延安秦氏), 연안차씨(延安車氏), 연안천씨(延安天氏), 연안현씨(延安玄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차운로(車雲輅,1559 己未生) : 문과(文科) 선조 16년(1583)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차언보(車彦輔, 1712 壬辰生) : 문과(文科) 영조 51년(1775) 정시 병과(丙科), 차신용(車信用, 1748 戊辰生) : 문과(文科) 정조 1년(1777) 식년시 병과(丙科), 차진형(車珍衡, 1767 丁亥生) : 문과(文科) 순조7년(1807) 식년시 병과(丙科), 차이재(車以載, 1688 戊辰生) : 문과(文科) 경종 3년(1723) 식년시 병과(丙科), 차기형(車驥衡, 1850 庚戌生) : 문과(文科) 고종 10년(1873)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77명이 있다. 문과 27명, 무과 5명, 사마시 42명, 음양과 2명, 율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연안차씨는 1985년에는 총 37,093가구 154,642명, 2000년에는 총 50,168가구 161,32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3천여 가구,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분포는 서울 37,123명, 부산 15,074명, 대구 7,367명, 인천 6,715명, 경기 20,055명, 강원 5,040명, 충북 3,665명, 충남 10,727명, 전북 6,325명, 전남 14,496명, 경북 8,031명, 경남 19.219명, 제주 804명이다.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2,935명, 부산 14,732명, 대구 8,955명, 인천 10,318명, 광주 4,380명, 대전 4,554명, 울산 5,563명, 경기 32,225명, 강원 4,125명, 충북 3,816명, 충남 6,138명, 전북 4,816명, 전남 7,168명, 경북 6,634명, 경남 14,103명, 제주 863명이다.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부산, 경남 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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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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