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의령 남씨(宜寧南氏)-150,394명
(53)의령 남씨(宜寧南氏)-150,394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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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남 민(南敏)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태풍을 만나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신라 유린땅(현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죽도)에 기착했다. 그 곳에 살기를 원하자 신라왕은 중국 여남(汝南)에서 왔다 하여 남(南)이라는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민(敏)으로 했다. 그 후 고려 후기 때 시조의 후손 3형제를 중시조로 하면서 3개의 본관으로 갈라진다. 첫째 남홍보는 영양남씨, 둘째 남군보는 의령남씨, 막내 남광보는 고성남씨가 된다.

둘째 집인 의령남씨는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서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였다. 개국공신 남재(南在), 남은(南誾) 형제 중 남재의 후대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남재의 손자 3형제 중 남지(南智)는 좌의정, 남간(南簡)은 예문관 직제학, 남휘(南暉)는 태종의 부마가 되었다.

생육신 추강 남효온(南孝溫)은 의령남씨 인물이다. 사림의 거두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그는 사육신 사건 이후 정계와 손을 끊고 경남 의령군 칠곡면 산림에 묻혀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

의령남씨 문중에서 추앙을 받는 인물은 남 이(南怡) 장군이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높은 봉을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깊은 물을 말을 먹여 다 없애니/ 남아 20에 나라 평정 못하면/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오.

그는 20대에 천하를 평정하겠다며 이 같은 시를 지었다. 남 이는 출생에서부터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다. 태종 이방원의 외증손인 남이는 어렸을 때 귀신을 쫓고 어린 처녀를 살려낸다. 그 처녀는 나중에 남 이의 부인이 된다. 남 이는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대궐에서 숙직을 하면서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것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펴려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유자광이 듣고 “남 이가 모반한다.”며 무고하여 남 이는 26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남 이 장군의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2리에 있다. 그는 외가인 남양홍씨가 살던 마을 인근인 이곳에 묻혔다. 부인도 함께 묻혀 있다. 지난 1971년 당시 후손들은 비석을 새로 세우고 묘소를 다듬었다. 후손들은“남 이 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고 외가가 있는 곳에 무덤을 방치했으나 뒤늦게나마 후손들이 묘소를 손질했으니 이제야 편안히 눈을 감을 것 같다”고 말한다. 후손들은 또 남 이 장군 묘소가 흔히 남이섬에 있다고 선전하면서 실제로 가묘를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끌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들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이 시조를 지은 남구만(南九萬)은 숙종 때 영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소론의 영수다.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당파싸움이 심했던 당시 정계를 주름잡은 정치인이었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남 곤(南袞), 소북(小北)의 영수 남이공(南以恭), 영조 때 양관대제학을 지낸 남유용(南有容),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남공철(南公轍) 등도 후손들이다. 철종 때 대제학을 지낸 남병철(南秉哲), 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남이웅(南以雄), 정묘호란 때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안주성을 사수하다가 자결, 순절한 남이흥(南以興) 등도 대표적 인물이다. 남이공의 형 남이신(南以信)의 세 손자 중 효종 때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남선(南)의 자손은 번창하여 창명공파(滄溟公派)를 이루었다.

1960년대 판문점 수석대표를 지낸 남 철(南鐵, 예비역해군소장)도 남씨(南氏) 문중 사람이다. 휴전 당시 북한 대표는 남 일(南日)이었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남상옥(국제약품회장), 남상진(재무부차관), 남욱(농수산부차관, 한국화약 부회장), 남덕우(국무총리), 남송학(국회의원), 남재희(국회의원), 남광우(문학박사, 인하대명예교수), 남필현(청주대교수), 남흥우(법학박사, 고려대법대학장, 변호사), 남상영(남영나일론 회장), 남기동(동양시멘트 사장), 남상철(남영섬유사장), 남문희(서울시부시장), 남정현(문인), 남승룡(마라톤선수), 남상규(가수), 남학우(서울지검북부지청장, 변호사), 남억우(인천교대학장), 남동우(광주경신여고 교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6世 기(基), 27世 현(鉉), 28世 윤(潤), 29世 식(植), 30世 병(炳), 31世 균(均), 32世 진(鎭), 33世 구(求), 34世 주(柱), 35世 섭(燮), 36世 규(圭), 37世 호(鎬), 38世 순(淳), 39世 근(根), 40世 영(榮), 41世찬(瓚), 42世 종(鍾), 43世 수(洙), 44世 정(禎), 45世 엽(燁), 46世 주(周), 47世 일(鎰), 48世 영(永), 49世 표(杓)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는 의령남씨 집성촌이다. 정골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의령남씨가 4백 년간 뿌리를 내려 살고 있다. 본관 의령(宜寧)은 경상남도 중앙부의 낙동강 하류 서안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신라의 장함현(獐含縣)인데 757년(경덕왕 16)에 의령현으로 개칭하여 함안군의 영현을 삼았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진주(晉州)에 편입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監務)를가 파견되어 신번현(新繁縣)을 병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현으로 승격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의령군으로 개칭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남도(慶尙南道) 의령군이 되었다. 1979년에 의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의령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의령고씨(宜寧高氏), 의령김씨(宜寧金氏), 의령남씨(宜寧南氏), 의령서씨(宜寧徐氏), 의령심씨(宜寧沈氏), 의령여씨(宜寧余氏), 의령예씨(宜寧芮氏), 의령옥씨(宜寧玉氏), 의령이씨(宜寧李氏), 의령전씨(宜寧田氏) 등이다.

조선시대에 남계영(南季瑛) : 문과(文科) 세종 9년(1427) 친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남근(南瑾, 1556 丙辰生) : 문과(文科) 선조 19년(1586)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남이공(南以恭, 1565 乙丑生) : 문과(文科) 선조 23년(1590)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남용익(南龍翼, 1565 乙丑生) : 문과(文科) 효종7년(165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남세운(南世雲, 1671 辛亥生) : 문과(文科) 숙종 39년(1713)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남수현(南壽賢, 1674 甲寅生) : 문과(文科) 숙종 45년(1719)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남운로(南雲老, 1708 戊子生) : 문과(文科) 영조 22년(174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남강로(南絳老, 1735 乙卯生) : 문과(文科) 영조 47년(1771)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53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분야별로는 문과 144명, 사마시 384명, 역과 1명, 의과 1명, 율과 1명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의령남씨는 1985년에는 총 31,495가구 130,333명, 2000년에는 총 46,529가구 150,39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5천여 가구,2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2,580명, 부산 12,642명, 대구 4,003명, 인천 5,091명, 경기 17,945명, 강원 4,496명, 충북 7,889명, 충남 10,942명, 전북 4,845명, 전남 11,213명, 경북 4,711명, 경남 13,491명, 제주 331명이다. 부산과 경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2,991명, 부산 13,157명, 대구 4,683명, 인천 8,623명, 광주 3,848명, 대전 4,971명, 울산 2,299명, 경기 32,850명, 강원 3,831명, 충북 8,091명, 충남 7,009명, 전북 4,257명, 전남 6,362명, 경북 4,539명, 경남 12,449명, 제주 434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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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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