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칼럼] 끊임없는 비방전과 폭로전에 내성이라도 생긴 걸까. 정치를 좀 안다고 자처하는 평론가들의 입에서도 ‘네거티브 불가피론’이 나오고 있다. 선거의 속성이 경쟁자들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게임’인데,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네거티브는 없는 사실을 만들어 퍼뜨리는 마타도어, 즉 흑색선전과는 결이 다르다. 상대의 부도덕과 비리 의혹 등을 문제 삼는 ‘자격검증’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흑역사’를 감안해서라도 철저히 캐묻고 따져야 한다는 게 다수 평론가들의 견해다.
그 만큼 후보 본인과 가족 등을 둘러싼 휘발성 높은 의혹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실 네거티브는 현대 선거에서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우리 선거 역사를 보더라도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지 않은 선거는 거의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극적 효과 때문이다. 내용 자체가 후보의 치부와 비리 의혹, 스캔들 등에 집중되다보니 파급력이 크다. 언론에게는 군침 도는 좋은 먹이감이다. 짧은 시간에 유권자들의 혐오와 낙담, 분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만한 공격수단도 드물다.
최근 부각된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 관련 의혹들도 자극적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7급 공무원을 ‘집사’처럼 부렸다는 것부터가 대중의 마음을 후벼 판다. 가족이 먹을 소고기 값을 ‘꼼수’를 써서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는 내용은 기사마다 제목거리가 됐다.
이 후보 측은 마땅한 대응 수단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미 여러 차례 문제 삼았던 윤석열 후보 관련 의혹들로 ‘맞불’을 놓으려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탓인지 좀처럼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유사한 추가 제보를 확인 중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투표일까지 김혜경씨쪽에 초점을 맞춰 총공세를 펼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재명‧윤석열 본선 등판, ‘네거티브 프레임’ 예고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로 시작해 네거티브로 끝나는 ‘역대급’이 될 개연성이 크다. 이는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등장하면서부터 예고된 프레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후보는 대장동이라는 깊은 늪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여야 후보간 TV토론에서 보여준 ‘동문서답’식 대응은 전전긍긍의 현주소를 충분히 짐작케 했다.
이 후보는,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의혹을 당내 경선 과정에서 분명히 걸렀어야 했다. 해명과 반격의 논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일방적 공격을 당하는 곤혹스러운 국면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장동 문제로 본격적으로 다퉜으면 후보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나변의 문제다.
윤석열 후보도 본격적인 정치 입문 전부터 부인과 장모 관련 소문들이 암암리에 나돌았다. 특히 검찰총장 재직 당시 조국‧추미애 법무장관의 주도하에 진행된 집요한 조사와 감찰 결과는 두고두고 공세의 빌미가 됐다.
돌이켜보면 이 후보 측은 윤 후보의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의혹을 집중 공격하면 대장동 의혹은 쉽게 상쇄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김건희 의혹’은 ‘7시간 통화’ 방송을 통해 상당 부분 희석됐다. 윤 후보 장모는 1심 징역 3년 판결이 2심 무죄 판결로 뒤집혔다.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윤 후보에 대한 수사는 ‘부지하세월’이다.
반면 이 후보 관련 의혹은 몸집이 오히려 불어났다. 백현동 비리에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이 꼬리를 물며 이 후보를 압박했다. ‘욕설 녹취록 파문’도 다시 시중에 회자됐다.
막바지 ‘악성 네거티브’ 기승 가능성…누가 승자라도 ‘상처투성이 영광’
앞으로 투표일까지는 30일. 여론조사 지지율은 두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호각세다. 불과 몇 퍼센트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인 듯하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10~20% 중도층의 표심이 대세를 판가름할 것으로 데는 이견이 없다.
이들 중도층을 움직이기 위한 막판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릴 공산이 크다. 가짜뉴스에다 악성 유언비어, 마타도어 등이 남발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참과 거짓을 가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진다. 선거 양상이 최악이 아닌 차악(次惡)을 뽑는 쪽으로 고착될 것이라는 점이다. 누굴 뽑느냐가 아니라 누굴 안 뽑느냐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수밖에 없다.
그런 선거의 끝은 보나마나다. 승자라 하더라도 ‘상처투성이 영광’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패자는 누적됐던 의혹 규명이라는 명분 속에 사법처리의 굴레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에게도 가슴 쓰라린 일이다.
네거티브의 끝은 자승자박이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고 유권자들을 짜증나게 만들기 십상이다.
이번에는 글렀다 치더라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재현되지 않도록 반성과 다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네거티브 대상이 될 법한 부적격자는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 본선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 ‘봐주기식’ 대충대충 검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격 미달자는 아예 선거에 나서지 못하도록 기준을 칼날같이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상당수 유력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 국회 청문회가 무서워 장관 되겠다는 엄두를 못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네거티브는 분명 긍정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소모적 비방전으로 얼룩진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네거티브가 먹히더라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필자 소개>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