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우리들의 교황님!"
"교황님,우리들의 교황님!"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8.18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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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과 세월호,그리고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안녕하세요?
 
교황님은 이번 방한 일정 내내 우리 대한민국에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주고 계십니다. 리더십에 목말라 416년 전 돌아가신 이순신 장군에 기대던 열풍이 지금은 교황님께 빠져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감동했고, 소탈하게 웃는 모습에 모처럼의 시름을 잊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월호 사고, 군 병사 구타사망 사건, 끝이 보이지 않는 여야 정치권의 정쟁과 같은 악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에 좌절했던 우리 국민들이 교황님의 미소와 손길에서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서는 교황님의 자애로움에 빠져들었다는 얘기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교황 관련 카페가 20개 넘게 생겨났습니다.
 
교황님의 방한은 지난 1984,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래 4반세기 만에 이뤄졌습니다. 교황님이 오셔서 우리나라 정치권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한 걸 놓고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과 연관시키려는 정치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움직임도 강합니다.
 
하지만 교황님의 발길과 언행을 국내 정치 현안에 연결시키는 건 자의적 해석이라는게 대부분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입니다. 교황님의 방한을 놓고 정치권이 이에 따른 유,불리를 계산한다면 오판일 것입니다. 교황님의 방한과 보편적인 언행으로 박근혜 대통령이나 여야 정치권의 지지율이 특별히 오르거나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정치인 개개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충고가 주류입니다. 역대 교황님들의 행보가 항상 '보편성’의 성격을 담고 있지 않았습니까.그런데도 이를 당파적으로 해석한다면 또 한번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세월호나 평화·소통·민주주의 등 방한 기간 중 교황님의 언급을 보면서 예상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황이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정치적 인물이 되고 맙니다. 그런 지위 탓에 늘 보수와 진보, 양쪽의 논리를 포괄하는 발언을 하고,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님의 말씀하시는 자구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보다 크게 봐서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는 차원으로 봐야겠죠. 교황님이 세월호 참사 유족을 만난 것에 대해서도 교황님이 종교인으로 할 일을 했다고 봅니다. 나아가 한국민들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잘 생각하라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우리나라 정치권과 지식인, 국민에게 골고루 던진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교황님은 항상 교회가 가난하고 상처입은 사람들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삶이셨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이번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 강론에서 평화, 화합, 정의, 인간가치 등을 강조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도 매우 강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막대한 부요(富饒)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이미 전날의 강론에선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며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교황님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교황님은 젊은 시절 해방신학에 관심을 뒀습니다. 그래서 한때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고 전해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황님이 가톨릭에서 가장 보수적인 예수회 출신이라는 점을 저는 잘 압니다.
 
기자들이 “당신은 좌파 아니냐”고 물으면 “200년에 불과한 좌파 사상이 아니라 2000년 역사의 기독교 신자”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또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비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 철학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개혁을 원하면서도 과속을 경계한 바티칸이 지난 해 새 수장을 뽑아야 할 때가 되자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룬 프란치스코 교황이란 절묘한 선택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교황님은 이번 한국방문에서 여러 가지를 느끼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별히 느낀 두 가지로 '분단국가'라는 점과 '세월호 참사'를 꼽으셨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한반도의 남북 분단은 지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누구나 한국에 와보면 느낄 수 있는 한국민의 고통이자 숙제입니다. 또 한가지는 세월호 참사입니다. 교황님이 여러 번에 걸쳐 관심을 표명할 정도로 세월호 참사에 주목했습니다. 이는 교황님께서도 그 비극적 참사에 공감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교황님의 방한 일정 중 가장 큰 행사인 16일의 시복 미사였습니다. 행사가 진행된 광화문 일대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교황님의 강론에 귀 기울이며 기도하는 가톨릭 신자들만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슬픔과 비통을 치유받으려는 이, 풀리지 않는 억울함과 고통을 호소하려는 이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이 교황에게 직접 아픔을 호소한 것은 정상적인 절차로선 도저히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황님의 축복에 감동하면서도 안타깝게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고통을 좀처럼 풀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자체 해결능력의 부재를 다시한번 실감케 한 현장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교황님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달래주는 일, 우리 사회에 평화와 화해가 자리 잡도록 하는 일 말입니다. 물론 교황님이 며칠 머물렀다고 뿌리 깊은 갈등과 상처가 단숨에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황님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전지전능한 구원의 메시아로 보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해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사회지도층, 그리고 여야 정치권이 이 점을 통렬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당장의 정략적 구도에서 벗어나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실로 고민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민 개개인 또한 저마다의 위치에서 본분을 충실히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황님은 그런 노력에 대해 조언하고, 격려하고, 축복해 주는 분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차례로 해결된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번 교황님의 방한은 한국민들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저도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시는 것을 계기로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같은 장소를 몇차례 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지금 세월호 침몰과 유병헌 전 회장 사망같은 여러 사건들을 두고 각종 음모와 확인되자 않은 소문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여아 간의 이견으로 아직 타결방향을 잡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부족하고 경제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년에 자살하는 사람은 1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지역간,세대간,계층간 갈등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한국민의 상처을 위로하고 마음을 가다듬도록 해주셨습니다. 특히나 교황님 방한을 계기로 정치권이 지지부진하던 세월호 특별법을 어떤 형태로든 조속히 타결할 필요성과 책임감이 커진 점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교황님의 국내에서 마지막 발걸음 역시 상처 입은 이들에게로 향합니다. 교황님은 마지막 공식행사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십니다. 특히 이날은 그동안 폭력에 멍들은 이들이 대거 참석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7명을 비롯해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미사에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교황님은 이제 바티칸으로 돌아가십니다. 이번 한국방문에서 교황님이 분단국가인 한국을 알고 세월호 같은 아픔을 치유하는데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4박5일 짧은 시간이지만 긴 발자국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들은 행복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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