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여흥 민씨(驪興閔氏)-142,572명
(56)여흥 민씨(驪興閔氏)-142,572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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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고려조에 상의봉어를 지냈다. 그의 8세손이 고려 원종 때 문과에 올라 공신이 되고 여흥부원군에 봉해진다. 그래서 후손들이 여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여흥은 여주의 옛 이름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던 1392년 72명의 고려 충신들은 반기를 들고 두문동에 은신했다. 그리고 끝까지 항거하다 이성계에게 전원 몰살되었으나 단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 그가 바로 공민왕 때 예조판서를 지냈던 여흥민씨 후손 민안부(호 : 농은)이다.

그는 두문동의 대학살에서 극적인 탈출을 감행,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 피신했다. 그 후 후손들이 마을을 이루어 대대로 살아왔다. 지난 1981년 발견된 ‘농은실기’에 그의 ‘천리길 탈출기’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여흥민씨는 2000년 현재 산청군 지역에만 449가구 1,100여명이 살고 있다. 여전히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대포리 마을에 있는 50여 가구 250명은 물론 모두 민안부의 후손들이다. 아직도 산청, 거창, 함양 등지에는 여흥민씨 4천여 가구가 산재해 있다.

산청군 대포리에는 지금도 민안부의 충절의 기개가 서린 망경대가 있다. 망경대는 이 곳 왕산(923미터) 정상 송림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민안부는 매월 초하루와 15일이면 이 망경대에 올라가 두고 온 옛 서울 송도(개성)를 바라보고 배례했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의 정비 원경왕후는 여흥부원군 민 제의 딸이다. 그는 양녕, 효령, 충녕(세종), 성녕 등 네 아들과 정순 등 네 공주를 낳았다. 민영환(1861~1905)은 명성황후의 조카이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병세와 함께 백관을 인솔하여 대궐에 나아가 이를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보고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본 뒤 조용히 자결하였다. 그가 자결하고 난 뒤 8개월이 지나자 피 묻은 옷을 간직했던 마루에서 대나무가 솟아올랐다.

1906년 7월 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공의 집에 푸른 대나무가 자라났다. 생시에 입고 있었던 옷을 걸어두었던 협방 아래서 푸른 대나무가 홀연히 자라난 것이라 한다. 이 대나무는 선죽과 같은 것이니 기이하다. 대나무의 45개의 잎사귀는 순국할 때의 나이와 같은 숫자여서 더욱 신기하게 여겨졌다. 혈죽으로 인해 조선 사회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일제는 혈죽이 조작된 것처럼 만들고자 했다.’

명성황후 민비는 한 시대의 여걸이다. 대원군의 10년 통치가 지난 뒤 고종 11년(1874)부터 시아버지 대원군과 며느리 민비 간 권력의 싸움이 불붙기 시작한다. 유림들을 부추겨 민비는 끝내 대원군을 하야시켰다.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면서 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쥐었다. 그러나 죽은 것으로 간주된 민비는 충주의 민응식 집에 피신해 있었다. 결국 대원군은 청에 납치되고 민비가 복귀하면서 20여 년간 민씨의 족벌정치가 이어진다. 갑오경장 후 민비는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고 했다. 그러자 1895년 4월 8일 밤 자객들이 경복궁 담을 넘었다. 이들은 민비를 살해한 뒤 시체마저 석유를 끼얹어 불살라 버렸다.

현대 인물 민충식(국회의원, 한전사장), 민관식(국회의원, 문교부장관, 남북조절위공동위원장대리), 민병권(국회의원, 교통부장관), 민병기(국회의원, 주불(駐佛)대사), 민병초(국회의원), 민경천(철학박사, 홍익대총장), 민준식(경제학박사, 전남대 총장), 민석홍(철학박사, 서울대교수), 민영기(이학박사, 국립천문대장), 민병철(의학박사, 고려대교수), 민병천(정치학박사, 동국대부총장), 민경희(이학박사, 숙명여대교수), 민영규(문학박사, 연세대명예교수), 민희식(문학박사, 한양대교수), 민수홍(공학박사, 인하대 교수), 민헌기(의학박사, 서울대교수), 민복기(법무부장관, 대법원장), 민문기(대법원판사, 변호사, 인천합동법률사무소대표), 민흥식(대검검사, 변호사), 민세홍(서울지법판사), 민후식(해태그룹회장), 민석원(정우개발회장), 민중기(대한제당대표이사), 민병도(경춘관광회장), 민경중(기아산업회장), 민병준(두산컴퓨터사장, 백화양조회장), 민제영(롯데제과대표이사), 민기식 (육군대장, 육군참모총장, 국회의원), 민병태(서울대교수), 민충식(광산개발 회장), 민병훈(변호사), 민동식(변호사), 민경범(변호사), 민인식(서울민사지법부장판사), 민환식(경남관광대표이사), 민효식(한일교통대표이사), 민한기(충북교통 대표이사), 민영완(부산렌트카대표이사), 민병무(동양건설대표이사), 민용식(일우해운대표이사), 민경중(기아산업회장), 민영재(삼육재활원장), 민봉구(육군소장), 민병돈(육군소장), 민경배(육군대장), 민병선(육군소장), 민병용(농개공연구관), 민윤식(서예가), 민경갑(동양화가), 민복진(조각가), 민병철(미문화원연구원장), 민영환(세일관광사장), 민도식(한양대교수), 민영남(전남지사, 국회의원), 민정박(전북대교수), 민병호(전북대사대부고교장), 민유동(충남지사)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4世 백(白), 25世 혁(赫) 현(顯), 26世 치(致), 27世 호(鎬) 용(鏞), 28世 영(泳), 29世 식(植), 30世 병(丙), 31世 기(基) 규(圭) 배(培), 32世 경(庚), 33世 홍(泓) 원(源), 34世 동(東), 35世 희(熙), 36世형(馨) 재(在), 37世 석(錫), 38世 준(準), 39世 권(權), 40世 용(容), 41世 범(範), 42世 선(善), 43世 순(淳), 44世 상(相), 45世 영(榮), 46世 원(遠), 47世 종(鍾), 48世 태(泰), 49世 주(柱)이다.

본관 여흥(驪興)은 경기도 여주시의 옛 지명이다. 1257년(고종 44)에 영의현(永義縣)으로 개편되었고,1305년(충렬왕 31)에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다. 1401년(태종 1)에 음죽현(陰竹縣)의 북부를 편입하여 여흥부(驪興府)로 승격되면서 관할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변경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었고 1469년(예종 1)에 세종대왕 능인 영릉(英陵)을 왕대리(旺垈里)로 옮기면서 천령현(川寧縣)을 병합하여 여주목(驪州牧)으로 승격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여주목을 폐하고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두었다. 1895년(고종 32)에 충주부 여주군이 되었고,1896년에 경기도 여주군이 되었다. 여성(驪城)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여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여흥민씨(驪興閔氏)와 여흥이씨(驪興李氏)가 있다.

주요파는 상서공파(尙書公派)와 정의공파(定懿公派)가 있다. 집성촌은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마곡리, 충북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 전남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 전남 해남군 마산면 화내리, 전남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경북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경남 산청군 오부면 오전리, 전남 여천시 삼일면 적량리,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전남 해남군 마산면 노하리, 전남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전남 승주군 쌍암면 남강리, 전남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 경북 군위군 소보면 송원동, 경북 상주시 공성면 거창리 등이다.

과거 급제자는 732명이다. 문과 234명, 무과 27명, 사마시 465명, 역과 5명, 음양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여흥민씨는 1985년에는 총 32,858가구 137,317명, 2000년에는 총 43,887가구 142,57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1천여 가구,5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40,619명, 부산 8,215명, 대구 3,684명, 인천 5,974명, 경기 21,812명, 강원 6,435명, 충북 9,497명, 충남 12,547명, 전북 2,746명, 전남 10,303명, 경북 6,175명, 경남 8,964명, 제주 343명이다. 서울, 경기, 충남, 전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5,678명, 부산 8,068명, 대구 4,356명, 인천 9,322명, 광주 3,875명, 대전 7,383명, 울산 1,959명, 경기 34,012명, 강원 5,011명, 충북 8,839명, 충남 5,347명, 전북 2,110명, 전남 4,203명, 경북 4,903명, 경남 7,159명, 제주 347명이다.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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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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