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정선 전씨(旌善全氏)-141,380명
(57)정선 전씨(旌善全氏)-141,380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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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모든 전(全) 씨의 시조는 전 섭(全攝)이다. 그를 시조로 하여 여러 본관으로 갈라졌다. 2000년 현재 정선전씨 141,380명, 천안전씨 133,074명, 옥천전씨 43,920명, 용궁전씨 27,706명, 전주전씨 16,434명, 옥산전씨 15,659명, 경산전씨 14,742명, 죽산전씨 11,229명, 완산전씨 7,568명 등이다. 본관 정선은 강원도 정선군의 지명이다.

정선전씨(旌善全氏)의 시조 전 섭은 백제 개국공신이다. 그는 고구려 동명왕의 세째 아들 온조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 때 오간(烏干), 을음(乙音)등과 함께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 중의 한사람으로 후에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전란 속에 전 섭의 후손에 관한 기록은 7세에 걸쳐 소멸되었다. 신라통일 이후 8세손 전 선이 성덕왕 22년 당나라에 입국하여 중국의 문물을 국내에 소개한 인물로 후에 벼슬이 전법(典法)판서에 오르고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 섭을 시조로 하고 전 선을 득관 중시조로 하고 있다.

전씨 문중은 정선, 천안, 성산 등 18본으로 분관되지만 모든 전씨는 전섭을 도시조로 하고 정선을 대종으로 한다. 전씨는 역사 깊은 명문 벌족으로 신라, 고려시대를 통틀어 군(君)에 봉해진 사람이 35명, 정승 12명, 판서 43명을 배출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만 57명을 배출했다.

이러한 전씨 문중에서 특히 고려개국 삼충공(三忠公)인 전이갑(全以甲), 전 락(全樂) 등 3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후삼국 통일의 야망을 키우던 왕건이 팔공산 오동 숲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와 일대 접전을 벌이다 적에게 포위를 당하자 전이갑이 왕건으로 가장하여 적의 주력부대를 유인하여 왕건을 탈출시키고 3형제는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 한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이들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고려의 애환이 담긴 정선아리랑이다. 이 노래를 지은 전오륜은 정선전씨의 인물이다. 공민왕 때 대제학에 오른 그는 고려가 망하자 관향인 정선에 은거했다. 그리고 만수산 검은 구름(이성계의 혁명)이 몰려드는 정들었던 개경을 바라보며 망국의 울분을 아리랑의 가락에 띄워 보냈다.

역시 고려 왕가에 충절을 지킨 고려 말 공조판서 전 순(全順)과 병부상서에 올랐던 전 신(全信) 등이 있다. 조선 말기의 동학 혁명에서 불붙기 시작한 민중 혼은 일제의 암흑기에 이르러 숱한 독립투사를 배출한다. 안창호 선생과 신민회를 조직,배일(排日)운동을 벌였던 전덕기와 의병장 전덕원 등이 그들이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완산전씨(完山全氏) 후손이다.

정선전씨의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전효우(全孝宇) : 문과(文科) 세종 29년(1447) 친시 정과(丁科), 전재덕(全在悳,1861 辛酉生) : 문과(文科) 고종 30년(1893) 별시2 병과(丙科), 전공간(全公侃,1861 辛酉生) : 문과(文科) 중종 12년(1517) 별시 병과(丙科), 전의채(全義采,1710 庚寅生) : 문과(文科) 영조 20년(1744) 식년시 을과(乙科), 전도해(全道海,1779 己亥生) : 문과(文科) 순조19년 (1819) 식년시 병과(丙科), 전백령(全栢齡,1705 乙酉生) : 문과(文科) 영조 41년(1765) 식년시 병과(丙科), 전좌천(全佐天,1741 辛酉生) : 문과(文科) 영조 44년(1768)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7명이 있다. 문과 8명, 무과 15명, 사마시 22명, 역과 1명, 율과 1명이다.

우리나라 모든 전(全) 씨의 현대 인물은 전예용(건설부장관, 민족중흥동지회장), 전성천(공보부장관), 전택부(천우사사장), 전중윤(삼양식품그룹 회장), 전응규(청주방직 회장), 전응덕(동양방송동경특파원, 삼양식품사장), 전병덕(서울고등법원장, 변호사), 전상석(대법원판사, 변호사), 전우영(대법원행정처장), 전광용(서울대교수, 국문학), 전봉초(서울대교수, 기악), 전규태(전주대교수, 국문학), 전해종(인하대교수, 사학), 전상운(성신여대총장), 전경수(서울대교수), 전규영(한양대의대교수), 전규홍(총무처장), 전재기(인천지검장), 전두하(국민대문과대학장), 전명섭(예비역소장), 전병규(예비역준장), 전병연(전주지방법원장), 전병식(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전병익(동의대법대학장), 전병우(국회의원), 전부일(예비역중장), 전규원(연세대교수), 전상운(성신여대 총장), 전상호(삼성시계 사장), 전석홍(보훈처장), 전선한(서울제강회장), 전성각(예비역중장), 전세봉(예비역준장), 전승표(국회이사관), 전응덕(중앙일보전무이사), 전영화(동국대학장), 전우성(예비역준장), 전윤수(예비역중장), 전응규(청주방직회장), 전재수(일신방직 사장), 전영일(국제벨브공업 사장), 전응열(숭전대교수), 전의철(세광병원원장), 전자열(예비역소장), 전제현(예비역소장), 전정구(국회의원), 전종천(국회의원), 전종휘(인제대대학원장), 전주식(예비역소장), 전창록(예비역소장), 전춘우(예비역소장), 전신한(외무부이사관), 전영호(강릉시장), 전팔근(원광대대학원장), 전팔현(군산지청장), 전하우(대법원이사관), 전학제(과기처차관), 전한상(전주시장), 전호진(피어선신학대 학장), 전정봉(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장), 전재원(변호사), 전창수(제주시장), 전상근(과학기술처종합기획실장), 전상기(감사원 국장), 전병준(한국은행상무이사), 전병원(금융협회상임부회장), 전석두(강원은행 전무이사), 전덕순(대한투자신탁부사장), 전종환(군산시장), 전철환(충남대교수), 전기호(경희대교수), 전동훈(경희대교수), 전병관(역도국가대표선수) 씨 등이다. (무순, 본관 및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정선(旌善)은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 지역으로 668년(보장왕 27) 잉매현(仍買縣)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정선이라 개칭하여 명주(溟州 : 江陵)의 영현(領縣)이라 하였다. 1018년(고려 헌종 9) 그대로 명주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정선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까지 유지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 정선군이 되었고,1896년 도제(道制) 실시에 따라 다시 강원도 정선군으로 환원되었다. 1973년에 정선면과 동면 사북출장소,1980년에 신동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5년에는 사북읍이 고한읍과 사북읍으로 분리되었다. 정선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정선김씨(旌善金氏), 정선문씨(旌善文氏), 정선박씨(旌善朴氏), 정선이씨(旌善李氏), 정선전씨(旌善全氏), 정선정씨(旌善鄭氏) 등이다.

정선전씨의 집성촌은 경남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회동리, 경북 칠곡군 칠곡읍 도남동, 경남 합천군 삼가면 두모리 등이다. 1930년경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충북 중원군 동량면, 평북 정주군 일원,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강원도 정선군 일원, 강원도 철원군 일원, 강원도 평강군 일원, 함남 정평군 일원, 함남 안변군 안변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정선전씨는 1985년에는 총 30,623가구 124,993명, 2000년에는 총 44,316가구 141,38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4천여 가구, 1만6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9,525명, 부산 7,725명, 대구 5,246명, 인천 4,054명, 경기 17,425명, 강원 31,185명, 충북 8,670명, 충남 2,917명, 전북 789명, 전남 733명, 경북 9,685명, 경남 6,874명, 제주 165명이다. 강원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9,115명, 부산 8,558명, 대구 6,830명, 인천 7,616명, 광주 357명, 대전 2,437명, 울산 3,152명, 경기 32,381명, 강원 24,007명, 충북 8,695명, 충남 2,586명, 전북 777명, 전남 577명, 경북 8,568명, 경남 5,459명, 제주 265명이다. 1985년에 비해 강원도의 인구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인구가 분포되어 있다. 경기도는 인구가 두 배 가량이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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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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