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영월 엄씨(寧越嚴氏)-124,697명
(69)영월 엄씨(寧越嚴氏)-124,697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2:35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고려 때 호부원외랑을 지냈고 나성군에 봉해졌다. 그는 본래 중국 한나라 엄자릉의 후손이다. 통일신라 때 당나라 현종이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여러 나라에 전파할 때 엄임의를 정사로, 영월신씨(寧越辛氏)의 시조인 신시랑을 부사로 파견, 우리나라에 왔다. 엄임의는 그 뒤 영월 땅 행정에 눌러 살게 됨으로써 영월엄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조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 엄태인은 고려조에 검교군기감윤을 지낸 뒤 군기감공파의 파조가 된다. 둘째 아들 엄덕인은 복사공파의 파조, 셋째 아들 엄처인은 문과공파의 파조가 되어 세 갈래의 계통을 이룬다.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 좋은 일을 하고도 화를 당한다면 수습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달게 받겠다’ 는 절규에 찬 경귀가 바로 영월엄씨 가문의 가헌(家憲)이다. 어린 왕 단종에 바친 충절로 보복의 칼날 앞에 서더라도 결코 두려워 않겠다던 엄가의 12세손 엄흥도(嚴興道)의 유훈이 그대로 문중의 정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강가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까마귀밥이 되도록 “누구든 손을 대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내려져 있었다.

당시 엄흥도는 영월 땅의 호장(향직의 우두머리)이었다. 자신은 물론 일족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그는 거적에 싸인 단종의 시신을 수습, 동을지산(현재 단종의 묘가 있는 장릉)에 모셨다. 그리고 성을 갈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버려 자취를 감추었다. 엄흥도의 충절과 인륜의 도가 알려진 것은 영조 때이며 순조에 이르러서야 충의공이란 호와 함께 사육신과 더불어 영월 창절사에 배향되었다.

고려조에서 수많은 명신현관을 배출한 엄씨는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11세손인 엄유온이 개국공신으로 가선대부 도총제부동지총제를 지내는 대대로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연산군에 이르러 엄씨가는 호된 시련을 겪는다.

엄유온의 4대 손녀이자 성종의 후비였던 귀인엄씨는 연산군 때 아버지 사직공과 오빠 등 3부자와 함께 참살을 당한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이 엄귀인과 윤필상 등 12대신의 간계라고 임사홍이 모함하면서 일어난 참극이다. 이른 바 갑자사화다. 이 일로 엄씨가는 한동안 빛을 잃는 듯했다. 그러나 중종에 이르러 누명을 벗고 16세손 엄 흔이 대제학으로 우뚝 솟아오르면서 선조들의 맥을 다시 이어 내려간다.

영조 때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엄한명과, 정조 때 서화가로 이름 높던 엄계응은 부자간이다. 특히 엄한명은 초서와 예서에 뛰어나 한석봉 이후의 제일 가는 명필로 고금의 서법을 집대성한‘집고첩(集古帖)’과‘만향제시초 (晩香齊詩抄)’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조 말의 개화파 인물인 엄세영은 국제정세에 밝은 외교가로 신사유람단이 되어 일본에 다녀왔다. 엄씨가 낳은 유일한 왕비 고종비(영친왕의 생모이자 이방자 여사의 시어머니)는 우리나라 개화의 여명기에 양정, 진명, 숙명 등 사학을 세웠다. 그 뒤에는 엄규백 씨가 양정고교장, 엄정섭 씨가 진명학원 이사장을 각각 맡았다.

엄인섭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의병 활동을 했다. 그는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경흥의 일본 군경에 큰 피해를 입혔다. 엄순봉은 상해 거류민회를 조직,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이영로를 추적 끝에 응징 살해하고 체포돼 순국한 열사이다.

엄정섭은 1916년 대구에서 박상종 등 동지들과 광복회를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금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이클 선수로 유명한 엄복동은 근대의 엄씨 인물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엄경운(嚴慶運, 1659 己亥生) : 문과(文科) 숙종 23년(1697)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엄사만(嚴思晩, 1729 己酉生) : 문과(文科) 영조 50년(1774) 증광시 병과(丙科), 엄석관(嚴錫瓘, 1829 己丑生) : 문과(文科) 고종 3년(1866) 별시 을과(乙科), 엄복연(嚴復淵, 1849 己酉生) : 문과(文科) 고종 27년(1890) 별시 병과(丙科), 엄인(嚴璘, 1716 丙申生) : 문과(文科) 영조 33년(1757) 정시 병과(丙科), 엄주한(嚴柱漢, 1852 壬子生) : 문과(文科) 고종 11년(1874)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146명이 있다. 문과 28명, 무과 39명, 사마시 78명, 역과 1명이다.

현대 인물은 엄민영(내무부장관), 엄상섭(변호사), 엄요섭(외교관), 엄영달(국회의원), 엄기표(국회의원), 엄정주(국회의원), 엄병학(국회의원), 엄대섭(국회의원), 엄영식(경희대문리대학장), 엄영석(외국어대경상대학장), 엄융의(서울대교수), 엄정인(고려대교수), 엄영보(해군준장), 엄용식(공군준장), 엄정행(음악가, 경희대교수), 엄병길(강원도지사), 엄상호(건영주택회장), 엄흥섭(한양투자금융 대표이사), 엄수남(삼호사장), 엄종진(동양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엄춘보(한일철강 대표이사), 엄익채(경동시장사장), 엄한준(원주문화방송사장), 엄주원(한양대교수), 엄광섭(한양대교수), 엄정문(서울대교수), 엄태정(서울대교수), 엄정옥(원광대교수), 엄상섭(성균관대교수), 엄진섭(곡성군수), 엄현섭(서예가), 엄태두(서예가), 엄영섭(정읍엄소아과원장), 엄익도(전주엄소아과의원장), 엄주호(전주교육장), 엄빈(지방국세청장), 엄기원(아동문학가), 엄대용(만수산업사장), 엄규진(고려건설회장), 엄철순(상호기공 사장), 엄봉섭(부산의사회장), 엄준흠(예비역장성), 엄도명(부산금정농원 대표), 엄환섭(청와대비서관), 엄홍섭(예비역장성), 엄상윤(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5世 석(錫), 26世 영(永), 27世 주(柱), 28世 섭(燮), 29世 기(基), 30世 용(鎔), 31世 태(泰), 32世 식(植)이다.

집성촌은 강원도 영월군이 대부분이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강원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쌍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경기도 화성시 능동, 함경남도 함주군 지곡면 흥서리 등이다.

본관 영월은 강원도 영월군의 지명이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월로 개칭했고,1018년(현종 9)에 원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698년(숙종 24)에 이 고장 청령포에 단종이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한 곳이라 해서 노산군을 단종으로, 능을 장릉으로 추존함에 따라 영월군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영월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영월김씨(寧越金氏), 영월박씨(寧越朴氏), 영월신씨(寧越申氏), 영월신씨(寧越辛氏), 영월엄씨(寧越嚴氏), 영월이씨(寧越李氏), 영월임씨(寧越林氏), 영월정씨(寧越鄭氏) 등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는 원래 마을 이름이 행정(杏亭)이었다. 시조 엄임의가 이곳에 정착 한 후 손수 은행나무를 심고 마을 이름을 행정이라고 지어 불렀다. 수령 1천 년이 넘으며 ‘신수(神樹)’로 불리는 이 나무는 높이 36미터, 둘레 18미터로 천연기념물 76호로 지정돼 있다.

이 은행나무는 엄씨 가문의 상징이다. 경술국치 때는 동편 큰 가지가 부러져 떨어졌다. 해방 바로 전에는 동쪽 가지가, 그리고 6·25 동란 때는 북쪽 가지가 부러졌다. 나라가 재앙을 맞을 때마다 스스로 가지를 부러뜨려 이를 알려주는 것으로 믿고 있다. 후손들은 1천여 년 동안 한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지금도 25세손부터 30세손에 이르기까지 6대가 함께 산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영월엄씨는 1985년에는 총 27,225가구 114,228명, 2000년에는 총 38,887가구 124,69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1천여 가구,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6,647명, 부산 8,911명, 대구 4,628명, 인천 3,785명, 경기 15,362명, 강원 15,007명, 충북 5,931명, 충남 7,099명, 전북 4,011명, 전남 3,473명, 경북 10,711명, 경남 8,458명, 제주 168명이다. 강원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26,056명, 부산 8,928명, 대구 6,148명, 인천 6,787명, 광주 1,167명, 대전 2,868명, 울산 4,612명, 경기 27,203명, 강원 10,917명, 충북 5,886명, 충남 4,389명, 전북 3,335명, 전남 2,063명, 경북 8,712명, 경남 5,407명, 제주 219명이다. 강원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강원도 영월군에는 863가구 2,261명이 있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