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선산 김씨(善山金氏)(김추계)-109,682명
(80)선산 김씨(善山金氏)(김추계)-109,682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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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계의 선산김씨 시조는 김 추(金錘)이다. 그는 신라 김알지의 28세손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이다.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 건의 맏딸 낙랑공주 사이에서 태어나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 일선(一善)은 선산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선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추계의 선산김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산을 본관으로 했다. 김 추 이후의 세계가 확실하지 않아서 김 기(金起)를 1세조로 한다.

고려 말 검교중랑장을 지낸 김 문(金文)의 슬하에서 4형제가 나와 4계파를 형성했다. 첫째 아들 김성원은 서운관정과 중서령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 기(金起)는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화의(和義)는 선산의 다른 이름이다.

김 기는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경북 선산군 옥성면 포상동 하송산 아래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서 여생을 마친 그는 하송산에 묻혔다. 그 뒤 후손이 번성하면서 비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청룡산과 당산 줄기가 사방 20리나 병풍처럼 둘러싸인 남쪽 들판으로 옮겨 ‘들성’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들성은 바로 오늘날의 경북 선산군 고아면 원호동(元湖洞) 속칭 들성(평성)마을이다. 그래서 선산김씨는‘들성김씨’라고도 한다. 들성마을은 현재도 235가구 중 32가구를 뺀 203가구가 모두 김 추계의 선산김씨다.

김문의 둘째 아들 김성부는 조선개국 원종공신에 책봉되었으며 함경도 길주 등지에 정착했다. 셋째 아들 김성룡도 조선개국 원종공신에 책봉되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화의부원군에 봉해졌다. 김성룡의 아들 김이탁은 병조참의를 지냈으며, 그 후손들은 이천 등지에 살았다. 김문의 넷째 아들 김성여(金成呂)는 고려 말 별장동정을 지냈으며 그 자손들은 평안도에 살았다.

22세 김광좌는 시문에 능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나 벼슬을 멀리하고 송재 이우(이퇴계의 숙부)의 문하에서 수학, 선산 고을을 문향으로 바꿔 놓았다.

김광좌의 아들 6형제 중 첫째 김취성도 대를 이은 문사이다. 김광좌의 다섯 아우들도 서산재라는 서당을 지어 학문에 힘썼다. 그래서 이들이 살았던 마을을‘문장골’이라 불렀다.

이들 형제 중 다섯째 김취문은 형조, 예조좌랑, 북안현감을 거쳐 강원도도사가 된다.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승하하고 어린 명종이 즉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그 친동생 윤원형과 인종의 외삼촌 윤임 사이에 소윤과 대윤의 권력 투쟁이 벌어져 이른바 을사사화가 터진다. 당시 김취문은 고봉 기대승 등과 함께 간신배들을 내칠 것을 상소하다 윤원형 일파에 몰려 영천부사로 좌천된다. 김정묵은 을사조약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현대 인물은 김석조(하버드대법학교수), 김덕(외국어대교수, 정치학박사), 김용락(서울대의대교수, 의학박사), 김재주(서울대교수, 이학박사), 김적교(한양대교수, 경제학박사), 김교준(충남대교수), 김재근(성균관대교수), 김철용(교통부항공국장), 김익동(육군소장), 김사준(해군준장), 김교식(해군준장), 김탁교(육군준장), 김상조(치안본부제3부장), 김웅세(우창건설사장), 김형목(재단법인 북청군장학회창립이사장), 김승목(국회의원), 김성조(국회의원), 김명자(국회의원), 김관용(경북도지사), 김병진(대림그룹회장), 김우동(국회의원), 김종호(해군참모총장, 해군대장), 김동석(국회의원), 김범부(국회의원), 김준호(선산군지편찬위원장), 김승태(중생의원장), 김병남(홍익회계법인대표), 김성묵(선산군교육장), 김익교(국립묘지관리부소장), 김명호(안동군수), 김홍규(세관장), 김삼원(선산군교육장), 김웅수(강원대공대학장), 김영욱(교육감), 김근용(안과원장), 김주용(대한노총위원장), 김영조(대구시의회의장), 김영록(의사, 대동종친회장), 김준교(대동보편찬위원장), 김익설(북청군장학회 사무국장), 김정철(단천명예군수), 김영석(한국화섬사장), 김해조(경북농산물원종장장), 김종근(범아건축대표), 김교윤(진덕산업사장), 김면호(경북개방대교수), 김긍호(대구초교교장), 김연호(대동종친회장), 김교상(보증보험부사장), 김우(협창통상사장), 김진호(대한정밀화학대표), 김웅준(농림부통계관), 김인호(직업훈련원관리부장), 김병진(대림엔지니어링 사장), 김찬호(신기산업사장, 일본), 김철조(조흥은행지점장), 김희교(경북의대 교수), 김연조(외환은행지점장), 김교열(경찰서장), 김석조(하버드대 교수), 김훈동(서광사사장), 김기림(서울대교수, 작가), 김교홍(구미문화원장) 씨 등이 있다.(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17世 원(遠) 병(秉), 18世 동(東) 용(容), 19世 묵(默) 재(載), 20世 교(敎) 호(鎬), 21世 조(祚) 승(承), 22世 사(思) 집(集), 23世 구(九), 24世 우(雨), 25世 녕(寧), 26世 성(誠), 27世 기(記), 28世 재(宰) 등이다. 주요파는 중서령공파, 판서공파, 좌의정공파, 별장공파 등이다. 중서령공파의 집성촌은 경북 선산군 고아면 원호동 속칭 들성(坪城)마을이다. 판서공파는 함경도, 좌의정공파는 경기도, 별장공파는 평안도에 많이 살고 있다.

본관 선산은 경상북도 현재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 또는 병정현(竝井縣)이 설치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1415년에는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995년에는 선산군이 구미시에 통합되었다.

선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선산곽씨(善山郭氏), 선산궉씨(善山氏), 선산김씨(善山金氏.김선궁계), 선산김씨(善山金氏.김추계), 선산류씨(善山柳氏), 선산문씨(善山文氏), 선산박씨(善山朴氏), 선산배씨(善山裵氏), 선산여씨(善山呂氏), 선산이씨(善山李氏), 선산임씨(善山林氏), 선산전씨(善山全氏), 선산최씨(善山崔氏) 등이다.

과거 급제자는 모두 289명이다. 문과 58명, 무과 35명, 사마시 168명, 역과 14명, 의과 5명, 음양과 6명, 율과 2명, 주학 1명이다. 인구는 1985년에 29,512가구,120,216명, 2000년에 총 34,422가구 109,68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5천여 가구가 늘어났다. 반면 인구는 오히려 1만1천여 명이 줄어들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6,101명, 부산 10,720명, 대구 14,198명, 인천 2,943명, 경기 10,580명, 강원 8,030명, 충북 2,405명, 충남 5,477명, 전북 4,758명, 전남 5,052명, 경북 18,401명, 경남 11,283명, 제주 266명이다. 경북과 대구 지역에 많다. 2000년 현재는 서울 21,609명, 부산 8,295명, 대구 13,354명, 인천 4,320명, 광주 1,694명, 대전 2,734명, 울산 1,982명, 경기 18,837명, 강원 5,567명, 충북 2,243명, 충남 2,951명, 전북 3,106명, 전남 1,772명, 경북 13,586명, 경남 7,317명, 제주 315명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인구와 과거 급제자 수는 선산김씨(일선김씨)와 구분이 안 된 것이다. 두 김씨가 구분되지 않고 합쳐져 있다.

한편 선산김씨(善山金氏)는 본관과 시조 등을 놓고 혼란이 많다. 서로 다른 계통이 세 개나 되기 때문이다. 선산김씨는 첫째 통일신라 문성왕 8세손인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하는 계통, 둘째 경순왕의 여덟째 김 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계통, 셋째 김한충(金漢忠)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 있다. 그러나 김한충을 시조로 하는 계통은 남한의 인구 조사에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김선궁계와 김추계가 선산김씨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김선궁을 시조로 하는 선산김씨는 당초 일선김씨(一善金氏)로 불렸다. 그 이유는 선산의 옛 지명이 일선군(一善郡)이었고 또한 후백제를 멸하는 데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에 오른 김선궁의 일족이 일선군(지금의 선산군)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선군 지명이 선산군으로 바뀌면서 선산김씨로 본관 명칭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은 바로 김선궁계의 선산(일선)김씨 후손이다. 김선궁계와 김 추계는 지금도 선산김씨의 정통성을 놓고 족보의 위작 등을 거론하며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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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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