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영산 신씨(靈山辛氏)-83,798명
(94)영산 신씨(靈山辛氏)-83,798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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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신 경(辛鏡)은 중국 사람으로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 온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른다. 그 뒤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터를 잡았다. 신씨는 9세손 때 영산과 영월로 본관이 갈라진다. 2000년 현재 영산신씨는 83,798명, 영월신씨는 67,489명으로 영산신씨가 더 많다. 한편 최근에 발견한 신경의 4세손인 신몽삼의 묘비에 ‘태사공영주신지묘’라고 되어 있어서 원래는‘영주신씨’였음을 알게 되었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 때 신 부(辛富)와 신 순(辛珣) 등 충신이 있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신 천도 빼어났다. 신 천은 안 향의 문인으로 사상 최초의 서원(書院)을 세웠으며 동국공맹(東國孔孟)의 학자 17인 중의 하나다. 수군절도사 신식, 병마절제사 신을화(辛乙和)도 후손이다.

영산신씨는 여말 풍운의 정치승려 신돈을 배출한다. 그는 공민왕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정치, 종교의 대권을 장악했다. 공민왕 15년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하고 자신이 판사에 취임해 문란한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농민의 권익옹호와 국가재정의 충실을 꾀했다. 그러나 끝내 권력 남용으로 인망을 잃고 역사에 부정적 인물로 기록된다.

조선조에 들어 신(辛) 씨 인물로는 태종 때 지중추부사를 지낸 신 균(辛均)과 정용호군(精勇護軍)으로 25차례나 왜구와 싸운 신유정(辛有定)이 있다.

세종 때 집현전학사에 등용된 신석조(辛碩祖)는‘세종실록’‘경국대전’ ‘의방유취’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신인손(辛引孫)은 사관(史官)으로 여러 대군(大君)들과 서사(書史)를 강론해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형조판서 예문관대제학을 지냈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신영희(辛永禧)는 김종직의 문인(文人)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남효온, 홍유손 등과 죽림의 벗이 되어 학문에 정진했다. 명종 때의 신 륜(辛崙), 신응시(辛應時)와 선조 때의 신경진(辛慶晋), 광해군 때의 신광업(辛光業), 신경연(辛景衍) 등도 뛰어났다. 신계영은 외교관으로 뛰어난 솜씨를 보여 인조 2년 임란(壬亂)때 포로로 일본에 붙잡혀간 1백46명의 동포를 데려왔다. 그는 인조 17년 볼모로 잡혀갔던 세자를 맞으러 심양에 갔으며 효종 3년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신태악(辛泰嶽)은 이승만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신공제(辛公濟)는 3·1운동 후 일경(日警)에 쫓겨 중국으로 망명했다. 신영락(辛泳洛)은 3·1운동 당시 경남 창녕에서 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유명한 목가시인 신석정도 영산신씨의 인물이다. 1907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한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경을 연구한다. 1931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신석정은 당시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 ‘봄의 유혹’등 목가적인 서정시를 발표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그의 시풍은 잔잔하고 전원적인 정서를 음악적인 리듬에 담아냈다.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순화시키는 감동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현대 인물은 신상학(국회의원), 심용훈(국회의원), 신석빈(국회의원), 신영주(국회의원), 신상우(국회의원), 신경식(국회의원), 신건(국회의원), 신광옥(부장검사), 신교준(변호사), 신성국(판사), 신석봉(마산크리스탈호텔 사장), 신봉주(변호사), 신영무(변호사), 신재송(변호사), 진주근(변호사), 신형조(변호사), 신호양(변호사), 신기남(국회의원), 신기하(국회의원), 신도환(국회의원), 신봉승(극작가), 신격호(롯데그룹 회장), 신용태(계명대부총장), 신홍기(한양대교수), 신순기(동아대부총장), 신민교(해양대교수), 신건식(부산MBC상무이사), 신민선(국회의원), 신병열(국회의원), 신재식(육군중장), 신일(경제학박사), 신남대(해군준장), 신상대(해군소장), 신용균(교육감), 신선열(부산동구청장), 신태곤(경제학박사, 부산대 교수), 신흥일(부산수산대 교수), 신병호(롯데제과 고문), 신용해(종친회장), 신갑득(부산일신여객 사장), 신춘호(농심대표이사), 신문석(농심부사장), 신영섭(대한잉크페인트제조 부사장), 신재기(대한수협중앙회 전무), 신해성(한국후지칼라 사장), 신건호(농수산부농지국장), 신화식(부산서구청장), 신상기(부산시건설국장), 신용옥(서예가), 신달수(국회의원), 신달수(경남버스 회장), 신용민(치과의원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과 영산신씨, 영월신씨 구분 안 됨)

항렬자는 하나는 29世 식(植), 30世 용(容), 31世 기(基), 32世 종(鍾), 33世 수(洙), 34世 병(柄), 35世 환(煥), 36世 철(喆), 37世 현(鉉), 38世 해(海), 39世 치(致), 40世 석(錫), 41世 한(漢), 42世 목(穆)이다. 또 하나는 31世 교(敎), 32世 진(鎭), 33世 원(源), 34世 모(模), 35世 성(性), 36世 균(均), 37世 정(正), 38世 한(漢), 39世 동(東), 40世 훈(勳), 41世 기(起), 42世 석(錫), 43世 태(泰), 44世 영(榮), 45世 충(忠), 46世 재(載), 47世 종(鍾), 48世 택(澤), 49世 상(相), 50世 헌(憲), 51世 치(致), 52世 흠(欽), 53世 준(俊), 54世 표(杓), 55世 병(丙), 56世 규(珪), 57世 경(庚), 58世 호(浩), 59世 수(秀), 60世 환(煥)이다.

본관 영산은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일대의 옛 지명이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산현으로 개칭하고, 밀성군으로 병합하였다. 1394년(태조 3)에는 계성현(桂城縣)을 병합하였고, 조선시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취산(鷲山)·취성(鷲城) 등의 별호가 있었다. 1914년에 영산군이 폐지되고 일부 면은 함안군에 편입되었다. 읍내면이 영산면으로 개칭되어 나머지 6개 면과 함께 창녕군에 통합되었다.

최대 집성촌인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는 지금도 9백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그 밖에 집성촌은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후포리, 전남 여수시 시전동 선소마을, 전남 여수시 돌산읍 등이다. 주요파는 덕재공파, 초당공파, 상장군공파 등이 있다.

영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영산김씨(靈山金氏), 영산문씨(靈山文氏), 영산신씨(靈山辛氏), 영산조씨(靈山趙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신희정(辛熙貞) : 문과(文科) 연산군 12년(1506) 별시 을과(乙科), 신맹경(辛孟卿) : 문과(文科) 연산군 12년(1506) 별시 정과(丁科), 신계영(辛啓榮, 1577 丁丑生) : 문과(文科) 광해군 11년(1619) 알성시 병과(丙科), 신명철(辛命喆, 1716 丙申生) : 문과(文科) 영조 26년(1750) 별시 을과(乙科), 신철구(辛哲求,1832 壬辰生) : 문과(文科) 고종 7년(1870) 별시 병과(丙科), 신수채(辛受采, 1747 丁卯生) : 문과(文科) 영조 47년(1771) 식년시 병과(丙科), 신사형(辛士衡, 1747 丁卯生) : 문과(文科) 중종 32년(1537)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25명이 있다. 문과 29명, 무과 27명, 사마시 67명, 의과 1명, 음양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영산신씨는 1985년에는 총 13,640가구 56,302명, 2000년에는 총 26,274가구 83,79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3천여 가구,2만7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0,034명, 부산 11,868명, 대구 2,272명, 인천 895명, 경기 4,720명, 강원 1,123명, 충북 3,664명, 충남 3,702명, 전북 1,057명, 전남 1,421명, 경북 1,954명, 경남 13,546명, 제주 45명이다. 경남과 부산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3,007명, 부산 16,066명, 대구 3,795명, 인천 2,294명, 광주 998명, 대전 2,847명, 울산 4,365명, 경기 11,707명, 강원 1,457명, 충북 4,531명, 충남 2,255명, 전북 1,245명, 전남 1,086명, 경북 2,971명, 경남 15,036명, 제주 138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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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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