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의 '역습'...물가는 낮을수록 좋다는 고정관념 무너져
저물가의 '역습'...물가는 낮을수록 좋다는 고정관념 무너져
  • 이보라 기자
  • 승인 2014.10.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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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는 낮을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저물가 지속은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동반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진다. 아직까지는 물가가 낮은 수준이지만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 탓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디플레 가능성은 크게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 관료들 사이에서 디플레이션을 염두에 둔 발언이 공·사석에서 심심찮게 표출된다는 데 있다.

극단적인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더라도, 물가상승률의 지속적인 하락은 명목지표와 실질지표의 관계에 대한 역설을 만들어낸다. 저물가 기조 하에서는 실질지표에 비해 명목지표가 훨씬 더 큰 폭으로 악화될 수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이 체감하는 경기흐름을 더 잘 반영하는 것은 명목지표일 수도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연 1%대 상승률을 2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기록적인 저물가인데도 서민들은 여전히 '고물가로 힘들다'고 한다. 국민들이 향후 물가상승률을 예상한 기대인플레이션은 연 2% 후반을 늘 맴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인플레이션 보고서'에서 그 원인을 분석했다. 예컨대 기대인플레이션을 가장 높게 보는 연령층은 20~30대다. 집값이 문제였다. 기대인플레 설문에 참여한 이들 연령층의 절반 이상이 전·월세에 살고 있다. 40대 이상 응답자의 70~90%가 자기 집을 가진 것과 뚜렷한 차이다. 미래에 집을 사야 할 젊은 층은 부동산값이 오를 때마다 물가 불안을 체감한다.

소득 별로는 저소득층이 물가를 더 높게 느낀다. 우리경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주거·광열·수도의 물가상승률(2010~2013년)이 12개 품목 분류 중에서 가장 높은 연 4.3%에 달했다. 반면 고소득층 지출이 많은 교양·오락, 가구집기의 물가상승률은 연 1.1%, 2.6%에 그쳤다.

물가 당국도 이젠 저물가가 별로 반갑지 않다. 과거 불황기의 일본처럼 저물가는 디플레이션의 전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통화정책의 목표(연 2.5~3.5%)로 삼고 있는 한은은 고민이 깊다. 이쯤이면 기준금리를 내려도 괜찮다는 압박성 발언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물가도 안정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한국은 1980년대 고성장기에 10%대의 고물가를 경험하면서 아직 물가 공포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과 자영업자의 가격 정책을 압박한 것도 '물가 트라우마'의 결과다. 독일 경제의 초인플레 트라우마, 미국 경제의 대공황 트라우마처럼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저물가 상황에서 명목금리의 상승은 실질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 경제의 최대 취약점인 가계부채 부담의 악화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불확실한 국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내수경기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는 한은도 최근 물가하락을 우려한다. 한은은 지난 달 31일 발표한 ‘인플레이션 보고서’에서 “향후 물가 경로에는 상·하방 위험이 혼재돼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하방 위험이 우세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의 이런 인식은 시장과 전문가의 호응을 얻는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심지어 정부의 속내에 의구심을 토로하는 시각도 있다. 인식과 달리 실제 가계소득 증대 세제 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취약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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