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험금 미지급, 말 뿐인 대책은 불필요
자살보험금 미지급, 말 뿐인 대책은 불필요
  • 김준희 기자
  • 승인 2014.11.11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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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 지급 강제수단 마땅치 않아도 당국이 추상같은 모습 보여야

 

금융소비자연맹은 지난 11월1일 서울역 KTX회의실에서 생명보험사 자살보험금 지급거부 피해자들이 모여‘생명보험금청구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을 놓고 생보사들이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 이어 행정소송까지 제기키로 함으로써 사태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애초 방침대로 자살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하겠다고 밝혔지만 '말의 성찬'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생보사들에게 지급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고, 어정쩡한 당국의 태도가 사태를 이지경으로 키워놓은 탓이다.

최 원장은 지난 주 보험사 최고경영자 초청 세미나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ING생명보험이 자살보험금 미지급 제재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과 관련한 질문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보험사의 권리이지만, 감독당국은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지도하겠다"며 "업계에서도 (자살보험금 관련 상품의)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할 기회가 있었고 제때 대처했더라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2000억원 이상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생명보험사의 자살보험금 지급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ING생명처럼 다른 생보사에 대해 검사를 벌여 자살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지 않은 게 확인되면 제재조치를 내릴 수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8월 ING생명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미지급 자살보험금 560억6900만원(428건)을 지급할 것을 처분했다.
 
하지만 ING생명이 행정처분에 불복해 곧 행정소송을 낼 방침이다. ING생명은 자살해도 일반사망보험금보다 2~3배의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한 약관이 실수로 작성됐다는 입장이다. 이 소송은 금감원 검사와 행정처분을 상대로 한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월초부터 10개 생보사를 상대로 특별검사에 착수한 금감원이 난처해 졌다. 검사를 사실상 중단해야 하는 표면상 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탓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소송 때문에 검사를 중단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2007년 9월 대법원이 2년 경과 후 자살시 재해사망특약 약관에 따른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적이 있고, 금융위원회가 기초서류 기재사항 준수 위반에 따른 과징금 부과가 맞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면조사를 완료한 후 현장검사 여부를 고려하고 있다"며 "다만, 행정소송이 제기되면, 검사에 대해 이의가 있다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검사를 다 해 놓고 소송결과를 기다릴 지, 하던 것을 보류할 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검사를 진행할 수 있겠지만, 제재조치까지 내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생보사 입장에서는 소송 기간 동안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금감원은 생보사들에게 합의를 권고하면서, '2005년, 2008년 분쟁조정사례에 의하면 특약약관에서 정한 자살면책 제한조항에 대해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에 자살한 경우에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진 경우라도 보험사가 당해 보험약관에서 담보하는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고 적시했다.
 
지난 2005년과 2008년에도 현 ING생명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와 같은 사안이 불거졌다. 당시 금감원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1998년 2월에도 '정신과적 진단명이 우울증이든 기질성 장애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피보험자는 정신질환상태하에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가 이유있다'고 결정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두리뭉술한 태도는 더욱 문제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와 관련 "당초 방침대로 자살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최 원장이 생보사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법적인 조치에 대해 "실정법적인 권리이며, 그렇게 할 수도 있다"면서 사실상 '방관'하는 점에 대해서 "무책임한 일로서, 행정당국이 금융기관의 편법과 변칙행태에 마냥 끌려가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감독당국이 그동안 자살보험금 논란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7년 9월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약관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2010년 1월 개정약관을 만든 후 4월부터 시행을 했다. 그런데도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2010년 4월 이후에야 생보사들을 상대로 일제조사를 벌이는 늑장행정의 태도를 보였다.
 
금감원 분쟁조정사례를 보면 재해사망특약에 가입한 보험계약자가 계약책임 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나서 자신의 몸을 해친 경우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는 그동안 보험사도 알고 금감원도 알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사태는 고의에 가까운 중대한 과실이다. 따라서 계약자한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금감원은 생보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고 했다. 생보사들이 소송을 해도 결론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고 자살보험금을 안 줄 수는 없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결국 보험금을 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그들의 전망이다.
 
그러나 한 피해자는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더니 생보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금감원은 아무런 안내도 없었고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성토했다. 금감원의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합의권고를 따르겠다고 한 에이스생명과 현대라이프생명 외에 나머지 10개 생보사는 민원인들을 상대로 39건의 채무부존재 소송을 내고 말았다.
 
현재 생보사들이 지급해야 할 자살보험금은 17개사 2179억원(2647건)에 이른다. 이에 금융당국과 생보사에 기대할 것이 없는 피해자들이 직접 '생명보험금청구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며 생명보험 불매운동에 나섰다. 지난 1일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 주관으로 서울역 회의실에서 자살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 60여명이 모여 공대위를 구성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마침내 금융소비자들이 스스로 주권행사를 위한 자발적 투쟁에 나선 것이다.
  
생보사들은 약관이 실수로 작성됐다는 구실로 현재 법률적 구제조치를 통해 마냥 '시간끌기 작전'에 들어간 인상이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앞으로 1~3년 동안 장기화될 전망이다. 행정소송이 진행되면 최소 3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리고, 하급심 결과에 불복해서 대법원까지 갈 경우 최종 판결에 3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현 단계에서 금감원은 그동안 너무나도 유약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행정당국으로서 피동적인 대응 만을 취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말로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노회한 생보사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 만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수현 금감원장과 금융당국이 생보사들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를 놓고 추상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오히려 ‘봉'이나 '호구’노릇을 한 것은 아닌 지 차제에 철저히 반성해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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