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막오른 '이재용 삼성 시대' 구축에 먹구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이 무산되면서 삼성그룹이 지난 해 하반기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한 사업조정행보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추진이 최종 무산됐다고 19일 밝혔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7일까지 신청한 주식매수청구 현황을 확인한 결과,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합병 계약상 예정된 한도를 초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중공업·플랜트 통합 사업 계획이 결국 좌초한 것은 글로벌 조선 시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플랜트 사업을 통합할 경우 기업 가치가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는 싸늘하고 부정적인 시장반응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삼성엔지니어링 주주중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를 청구한 금액은 총 7063억원으로 당초 정한 매수대금 한도인 41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계획대로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양사가 1조 6299억원에 이르는 주식매수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날 삼성중공업측에서 향후 합병 재추진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여서 아직 여지는 남아있지만, 그동안 큰 밑그림에서 순로좁게 진행돼 왔던 삼성그룹의 사업재편 계획이 이번 합병무산으로 차질을 빚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재계에서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건설 사업을 재정비하는 등 건설 부문으로 사업재편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삼성의 사업조정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제일모직의 직물·패션 사업을 떼어내 삼성에버랜드에 넘기고, 소재 사업은 삼성SDI와 합병했다. 또, 삼성에버랜드의 건물관리업을 삼성에스원에 양도하고 급식업을 삼성웰스토리로 분리했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 결정이 내려졌으며, 삼성SNS는 삼성SDS와 합병돼 최근 증시에 상장됐다.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에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를두고 삼성그룹의 승계문제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꼬리를 이었다.
이 과정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 등 주력 부문을, 맏딸인 이부진 사장이 유통·레저·서비스 부문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맡을 것이라는 이른 바 3분할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판단과 생각은 달랐다. 국민연금 등을 포함한 주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두 회사의 합병 소식이 공식화되면서 시장 안팎에서는 조선업계가 업황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무리한 합병으로 오히려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합병 시 효율적인 인력관리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그간 삼성엔지니어링의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풀려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합병 시 삼성중공업의 기업 가치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이 더 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중공업은 삼성전자(17.6%)와 삼성SDI(0.4%), 삼성전기(2.4%), 삼성테크윈(0.1%) 등 전자부문 계열사들이 지분을 갖고 있고,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SDI(13.1%)와 삼성물산(7.8%)이 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