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고흥 류씨(高興柳氏)-53,981명
(132)고흥 류씨(高興柳氏)-53,981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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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류 영(柳英)은 고려 문종 때 호장을 지냈다. 시조의 7세손 류청신이 고려 충선왕 때 고흥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고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는 경기도 개풍군 미륵산에 있으며 향사일은 음력 10월이다. 류청신은 고려 충숙왕 때 임금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5년 만에 자신이 볼모로 잡히고 대신 임금이 환국하도록 한다. 그 후 9년이 지나도록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일생을 마친다.

류 습(柳濕.1367-1439)은 고려 말 시중 류 탁의 아들이다. 류 습은 중군도총제로 대마도를 정벌했다. 시호는 양정(襄靖)이며 권근의 제문(88자)을 지었다. 부인 우주황씨는 영의정에 추증된 황거중의 딸이다. 한편 류 습(柳濕)은 전주류씨 장령공파의 시조인 류 습(柳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같은 시대에 살았고 한자 이름도 같기 때문에 헷갈릴 때가 많다. 두 사람의 묘소도 모두 전라북도 완주에 있다. 고흥류씨 류 습의 묘소는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달실에 있으며, 전주류씨 시조 류 습의 묘소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 있다.

류청신의 장손 류 장은 고려 말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천안으로 낙향한다. 그는 이곳에서 일찍이 조부인 류청신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호도를 재배하여 오늘날 천안의 명물로 만들었다. 조선말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린 의암(毅菴) 류인석은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문하의 유생들을 이끌고 상소한다. 그는 서양의 물결이 조선에 밀려들던 1842년(현종 8년)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의암이란 호는 그의 스승 이항로가 류인석의 강건한 기상을 높이 평가하여 지어준 것이다.

3.1운동 때의 류관순(柳寬順.1902-1920)은 1919년 서울에서‘대한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생이었다. 휴교령이 내려졌고 류관순은 고향인 오늘날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지령 마을로 내려온다. 그리고 한 달 뒤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주동자로 류관순은 일본 헌병대에 잡혀간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서도 독립 만세를 불렀다. 모진 고문을 당한 류관순은 결국 두 동생의 면회를 마지막으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이화학당 프라이 교장과 월터 선생은 그의 시신을 돌려 달라고 일본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은 고문이 세상에 들통 날까 봐 버텼다.“시신을 인도하지 않으면 세상에 그 잔악상을 모두 알리겠소!”결국 형무소 소장은 피투성이가 된 그의 시신을 인도했다. 시신은 이화학당 교우들의 흐느낌 속에서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다.

현대 인물은 류 홍(국회의원), 류 준(영남대총장), 류두영(미국하버드대교수), 류홍균(고려대교수), 류재영(원광대교수), 류준상(국회의원), 류성갑(국회의원), 류연상(영남대재단이사장), 류원종(변호사), 류성균(변호사), 류순석(전주지검장), 류갑종(국회의원), 류 진(국회의원), 류석균(대농건설사장), 류중록(한학자), 류병권(중앙종친회장), 류녹상(변호사), 류제인(검사), 류원석(판사), 류제한(한글학회 상임이사), 류성석(한학자), 류석승(서예가), 류성열(서울교대학장), 류제운(백광화학사장), 류용상(성균관대교수), 류성배(임곡중학교 이사장), 류종인(숭전대문리대학장), 류경상(농학박사), 류귀상(문학박사), 류연우(아주대교수), 류연철(의학박사), 류제경(공주사대교수), 류남상(충남대교수), 류태우(의학박사), 류한상(상공부국장), 류희창(군수), 류만영(남원군수), 류명규(대사), 류년상(해동대표), 류길현(병원장), 류재영(의학박사), 류희남(의학박사), 류희탁(공학박사), 류희자(약학박사), 류완영(공학박사), 류은영(공학박사), 류하상(법학박사), 류희길(의학박사), 류승석(서울관광사장), 류찬영(신흥택시대표), 류박준(도의원), 류재형(대동기업사장), 류종근(전북도지사), 류봉영(전북개발공사사장), 류남영(정읍농협조합장), 류연만(변호사), 류제봉(명지대교수), 류명규(외국어대교수), 류개남(농협장), 류재봉(명지대교수), 류종희(중고교교장), 류학상(경제학박사), 류중우(교수), 류동진(교수), 류삼태(교수, 개발원교육연구소장), 류녹상(국제변호사), 류제두(복싱JR미들급 세계챔피언), 류제필(판사), 류동호(육군대교수), 류낙주(교수), 류상철(고흥군수, 나주군수), 류오룡(병원장), 류현태(농협장), 류문석(서울관광호텔회장), 류동훈(대한예술협회장), 류제인(검사), 류정주(판사), 류종호(홍익대교수), 류종국(중고교교장), 류학영(문교부이사관), 류종기(동학사상연구소장), 류순영(소설가), 류희태(기업은행 부행장)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본관 고흥은 전라남도 고흥군 일대의 옛 지명이다. 고려 초에 장흥부의 고이부곡(高伊部曲)이라 하였으며, 1285년(충렬왕 11)에 고흥현(高興縣)으로 승격되고 현감이 배속되었다. 1395년(태조 4)에 보성군(寶城郡)의 조양현(兆陽縣)으로 개편되었다가, 1441년(세종 23)에는 장흥부(長興府)의 두원현(豆原縣)을 설치하고 보성군 남양현(南陽縣)을 포괄하여 흥양현(興陽縣)으로 개편하였다. 1869년(고종 6)에 흥양현 소속 삼도진(三島鎭)에서 발생한 이른바 거문도사건으로 삼도진이 철폐되고 거문진과 청산진이 설치되는 등 해안 방비가 강화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장흥군으로 고쳤으며, 1914년 고흥군이 되었다.

항렬자는 27世 석(錫), 28世 제(濟) 해(海), 29世 상(相) 식(植), 30世 연(然) 희(熙), 31世 규(圭) 균(均), 32世 종(鍾) 현(鉉), 33世 세(洗) 영(永), 34世 석(錫), 35世 제(濟) 해(海), 36世 상(相) 식(植), 37世 연(然)희(熙), 38世 규(圭) 균(均), 39世 종(鍾) 현(鉉), 40世 세(洗) 영(永), 41世 배(培) 기(基), 42世 용(鎔) 진(鎭)이다.

집성촌은 전북 고창군 일원이다. 고창읍 성두리, 고수면 예지리, 고수면 남산리 잠곡, 고창읍 덕정리 석탄, 아산면 목동리 와룡, 고창읍 월곡리, 고창읍 주곡리 신상, 신림면 부송리, 신림면 외화리 환산, 신림면 가평리, 신림면 무림리 등에 많이 살고 있다. 2000년 현재 고창군 관내에 살고 있는 고흥류씨는 총 469가구에 1,145명이다.

전북 정읍시 내장동도 집성촌이다. 대사와 석교마을이 합해진 대석마을, 원래 류씨가 터를 잡은 곳이라 하여 속칭 '버즐마을'로 이름 붙여진 붕래마을, 거문고(琴)의 뒤쪽이라 하여 금북마을, 그리고 송산과 송학마을에는 지금도 전체 가구 수의 70% 정도가 고흥류씨들이다. 류종근 전 전북도지사, 류봉영 전 전북개발공사 사장, 류남영 정읍농협조합장 등이 모두 송학 마을 출신이다. 그밖에 집성촌은 조선말 의병장 의암 류인석이 태어난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를 비롯 전남 고흥군 고흥읍,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등이다.

주요파는 예빈윤파, 대호군파, 판밀직사사파, 삼사판관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31명이 있다. 문과 3명, 무과 6명, 사마시 2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고흥류씨는 1985년에는 총 15,316가구 64,510명, 2000년에는 총 16,872가구 53,98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는 1천5백 가구가량이 늘었다. 반면 인구는 오히려 1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조사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8,093명, 부산 3,007명, 대구 798명, 인천 1,923명, 경기 6,145명, 강원 2,175명, 충북 900명, 충남 3,547명, 전북 10,911명, 전남 13,292명, 경북 1,484명, 경남 1,974명, 제주 216명이다. 전남, 전북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5,350명, 부산 1,612명, 대구 263명, 인천 2,637명, 광주 4,012명, 대전 1,084명, 울산 460명, 경기 10,296명, 강원 1,408명, 충북 728명, 충남 1,850명, 전북 7,084명, 전남 5,815명, 경북 513명, 경남 751명, 제주 118명이다. 전북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 다음 전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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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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