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광주 노씨(光州盧氏)-48,574명
(143)광주 노씨(光州盧氏)-48,574명
  • 정복규
  • 승인 2015.02.19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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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노해盧垓)의 선대는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그는 신라 효성왕 14년 안록산의 난을 피하여 아들 9형제를 데리고 우리나라에 건너와 정착했다. 그리하여 9형제 가운데 노해(盧垓)는 광주, 노오(盧塢)는 교하 등으로 본관이 갈라진다.

노해(盧垓)는 신라에서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광산(광주)으로 하게 되었다. 그 후 윗대의 계보가 없어 계통을 밝힐 수 없어 노해(盧垓)의 후손으로 고려 때 정승(政丞)을 지내고 광주군(光州君)에 봉해진 노만(盧蔓)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대호군(大護軍) 노서(盧恕)를 1세조로 하는 계통으로 갈리어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또한 노전을 1세조로 하는 계통도 있다.

한편 광주노씨(光州盧氏)는 광산노씨(光山盧氏)와 이름만 다를 뿐 본관이 같다. 광산은 광주의 옛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후손들은 지금도 광산노씨(光山盧氏)로 쓰고 있다. 2000년 현재 광주노씨는 48,574명이고, 광산노씨는 28,355명에 이른다. 따라서 광주노씨와 광산노씨를 합하면 76,929명으로 교하노씨 53,203명보다 오히려 많다.

노수신은 중종 38년에 문과에 장원, 뒤에 영의정까지 오른 광주노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대윤파에 속해 인종 즉위 초 이기를 탄핵한다. 얼마 뒤 명종이 즉위하면서 소윤파가 일으킨 을사사화로 화를 입어 파직된다. 진도로 유배되어 19년을 지내면서 김인후 등과 학문을 토론했다.‘인심도심변(人心道心辯)’을 지었고‘대학장구’‘동몽수지’등에 주(註)를 달기도 했다. 선조가 즉위하자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뒤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거쳐 영의정에 오른다. 성리학자 노극홍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의 휘하에 들어가 창녕의 하왕산성을 끝까지 지켰다.

광주노씨는 조선시대에 노수신(盧守愼, 1515 乙亥生) : 문과(文科) 중종38년(1543)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노성중(盧聖中, 1724 甲辰生) : 문과(文科) 영조29년(1753)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노상익(盧相益, 1849 己酉生) : 문과(文科) 고종19년(1882) 별시 을과(乙科), 노중경(盧重慶, 1762 壬午生) : 문과(文科) 순조5년(1805) 별시 병과(丙科), 노영경(盧泳敬, 1848 戊申生) : 문과(文科) 고종14년(1877) 별시 병과(丙科), 노준(盧峻, 1538 戊戌生) : 문과(文科) 명종21년(1566) 별시 병과(丙科), 노한문(盧漢文, 1538 戊戌生) : 문과(文科) 중종26년(1531) 식년시 병과(丙科),

노석빈(盧碩賓, 1639 己卯生) : 문과(文科) 숙종5년(1679) 식년시 을과(乙科), 노자형(盧自亨, 1639 己卯生) : 문과(文科) 문종0년(1450) 식년시 병과(丙科), 노전(1529 己丑生) : 문과(文科) 선조3년(1570)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6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문과 14명, 무과 4명, 사마시 50명, 역과 1명)이다. < 현대 인물은 파악되지 못함 >

노무현(盧武鉉.1946-2009) 제16대 대통령은 광주노씨 후손이다. 그는 8·15해방 이듬해에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빈농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뼈저린 가난은 향학열을 자극하는 한편 사회적 불평등에 일찌감치 눈을 뜨게 만들었으며, 가정교육을 통해 불의에 대한 저항감을 물려받았다. 입학금이 없어 외상 입학한 중학교 1학년 말, 제4대 정·부통령 선거(3·15부정선거, 1960)를 앞두고 집권자인 이승만의 생일을 기념하는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리자 그는 백지동맹을 선동하다 정학(停學)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가세가 더욱 기울어져 한 해 휴학한 뒤 장학금을 얻어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쳤으며, 지방 명문이던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장학생으로 마지막 학업을 마쳤다.

이후 농업협동조합 입사시험에 낙방하고 한 어망 제조업체에 취직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발등을 다쳐도 치료비조차 주지 않는 고용주의 비정함에 실망해 곧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법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고시 준비생 시절 사상범 권오석의 딸 권양숙과 결혼(1973)했으며, 1975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거쳐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으나 이듬해에 법복을 벗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인 6월민주화운동(1987)의 주요 지도자로 활약했다. 42세 때 정계에 입문한 뒤 민주민족세력의 정치적 대변자, 노동자·농민·도시영세민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옹호자, 군사독재의 유산인 영·호남 간 지역대립 극복을 위한 동서화합의 전도사를 자임하며 남다른 정치 역정을 걸었다.

퇴임 후 정치활동을 접고 고향 김해의 봉화마을로 내려가 생활하다가 재임 중 친인척 수뢰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중 사저 뒷산에서 투신하여 서거했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에도 문중의 대제(음력 3월 15일)에 종종 참석하는 등 문중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지난 2009년 4월 20일에는 광주 북구 오치동 광주노씨 문중 선산에서 열린 종친회 삼릉단(三陵壇) 대종회 대제에 참석해 조선시대 종묘 제향 때에 첫 잔을 올리는 제관인 초헌관(初獻官)을 맡아 제를 지내기도 했다.

특히 대통령 퇴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찾아 왕이 착용하던 면류관에 황금색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나타나 종친과 시민의 환영을 받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매년 오지는 못하더라도 선산을 자주 찾고 대제에도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우섭 종친회장은 "노 전 대통령 생전 봉하마을에 들러 대제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흔쾌히 승낙하던 표정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광주노씨(光州盧氏)의 주요파는 ▲규정공파 ▲헌납공파 ▲정평공파 ▲경평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전남 함평군 일원, 전남 화순군 일원, 경남 창녕군 일원,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경남 합천군 적중면 황정리 등이다.

본관 광주(光州)는 전라남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시대에는 무진주(武珍州)이며 신라시대에 이르러 도독(都督)을 두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무주(武州)로 고쳤다. 892년(진성여왕 6)에는 견훤(甄萱)이 이곳에 후백제를 세워 도읍을 정하기도 하였으나, 940년(고려 태조 23)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고 군현을 정비하면서 무진주를 광주(光州)로 개편하고 도독부를 두었다.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의 도청이 위치하면서 당시까지 전라도 남부지방의 중심지였던 나주를 대신하여 전라남도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88년에 송정시와 광산군을 흡수하여 광산구를 신설하였고, 1995년 광주광역시로 개편되었다.

집성촌은 전남 함평군 일원, 전남 화순군 일원, 경남 창녕군 일원,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경남 합천군 적중면 황정리 등이다. 주요파는 규정공파, 헌납공파, 정평공파, 경평공파 등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는 120여 가구가 광주노씨 집성촌을 형성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택지지구가 개발되면서 현재는 흩어져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주노씨는 1985년에는 총 9,481가구 38,073명, 2000년에는 총 15,265가구 48,57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6천여 가구, 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8,512명, 부산 6,601명, 대구 3,006명, 인천 1,095명, 경기 3,420명, 강원 1,905명, 충북 1,192명, 충남 990명, 전북 335명, 전남 828명, 경북 3,234명, 경남 6,923명, 제주 32명이다. 경남과 부산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9,255명, 부산 7,327명, 대구 3,916명, 인천 2,038명, 광주 1,080명, 대전 814명, 울산 2,356명, 경기 7,820명, 강원 1,613명, 충북 1,312명, 충남 715명, 전북 511명, 전남 774명, 경북 3,230명, 경남 5,682명, 제주 131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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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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