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적폐청산, 동국사와 옥스퍼드대학에서 배운다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적폐청산, 동국사와 옥스퍼드대학에서 배운다
  • 권의종
  • 승인 2017.10.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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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치를 저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를 무작정 지우는 일 없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군산 동국사(東國寺)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경술국치 한 해 전인 1909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에 의해 창건되었다. 1913년 에도시대 불교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현재까지 초창기 모습 그대로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게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한국 전통사찰과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수많은 창문이 완연한 일본색이다. 한 주에 50명쯤 방문하는 일본인들로서는 감회가 각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의 한민족에게는 일제강점기 슬픈 역사의 큰 상흔이자 시간을 초월하는 아픔이다.

일본 불교는 1877년 부산 개항과 더불어 이 땅에 들어왔다. 포교 목적보다는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의도가 더 컸다. 해방이 되면서 500여개의 일본 사찰은 철거되었다. 동국사 또한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석불상과 사찰입구 기둥에 새겨진 일본 글씨들이 쇠망치로 뭉개졌다. 입구 돌기둥에 새겨진 '소화(昭和) 9년'이라는 일본 연호의 '소화'글자를 누군가가 파버린 흔적이 보인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로 쓰였던 옛 중앙청 건물이 헐리자 군산시에서 동국사 철거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런 와중에서 대웅전과 요사채, 범종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사정을 사찰측은 간단명료히 설명한다. “아픈 역사도 엄연한 역사인데 지우려고만 든다고 지워지나요. 반면교사로 삼아 후대에 교훈으로 남겨야지요.” 정곡을 찌르는 일침이다.

“아픈 역사도 엄연한 역사, 지우려 말고 후대의 교훈으로 남겨야”

역사 지우기의 문화는 만국 공통인 듯 하다. 2015년 말 영국에서는 세실 로즈 동상 철거와 관련한 과거사 논쟁이 격렬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남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에 앞장섰던 로즈는 원주민 학살, 토지 수탈 등 수없는 만행을 일삼았다. 케이프주 식민지 총독이 되어 다이아몬드광과 금광을 비롯하여 철도, 전신 사업 등을 경영하면서 남아프리카 경제를 짓밟고 거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축적된 재산의 일부는 사후 모교인 옥스퍼드대학에 기증되었다. 대학은 이를 기념해 캠퍼스 구내에 그의 동상을 건립했다. 공교롭게도 로즈 장학금으로 남아공에서 온 유학생이 동상 철거를 주장하면서 과거사 논쟁으로 번졌다. 살벌했던 상황은 옥스퍼드대학 총장의 따끔한 충고로 일거에 잠재워졌다. “역사는 현재의 시각으로 쓸 수 있는 빈 페이지가 아니다”라는 한 마디 말로서.

과거사 살리기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산견된다. 정권 출범 후 이루어진 정부조직 개편에서다. 새 정부 조직은 박근혜 정부에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폐지후보 1순위에 올랐던 미래부가 살아남은 점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까지 설치되었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차관급임에도 국무회의에 배석해 중요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위상이 오히려 높아진 셈이다. 미래부가 창조경제 정책을 총괄해온 지난 정부의 상징부처였던 터라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다. 정권에 따라 있던 부처를 없애고 새로운 부처를 만들기보다는 가급적 조직의 연속성을 이어가려는 정부의 의지가 자못 신선했다.

현 정부가 과거사 지우기를 거부한 실례(實例)는 이 말고도 더 있다. 혁신기업의 창업 활성화를 위해 지난 정부가 요란하게 내세웠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한 점이다. 정권이 바뀌고 창조경제가 새 정부의 적폐청산의 표적으로 내몰리면서 전국 18개 센터들이 즉각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폐쇄는커녕 유지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로 재편해 명칭을 바꾸고 대기업의 역할을 줄이면서 일자리 창출기능은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사구시적 안목이 돋보인다.

“역사는 현재의 시각으로 쓸 수 있는 빈 페이지가 아니다”

과거사 지우기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습으로 통해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흔적을 지우는데 안간힘을 쏟았다. 진보 문화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했고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상해 임시정부와 위안부역사 지우기에 공들인 ‘박근혜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했다.

새 정부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댓글,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방산 비리, 4대강 사업, 자원 개발, 공영방송 장악, BBK 사건, 군 적폐청산, 5.18 특별조사, 역사교과서 폐지,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이 줄줄이 적폐청산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과거지사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신성한 국가적 책무라 할 수 있다. 정치보복이나 국론분열의 불씨로 몰아갈 일이 못된다. 안보위기, 민생위기, 경제위기를 구실삼아 켜켜이 쌓인 적폐를 못 본 척 눈감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울 것은 지우고 살릴 것은 살리는 게 역사에 대한 바른 접근방법이다.

적폐청산은 개개인에 대한 문책이나 처벌이 아니라 과거의 불공정한 특권구조를 바꾸는 것이며 정치보복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절절한 호소다. 변화와 보복의 차이가 당장 와 닿지 않지만, 보다보다 못해 나온 하소연으로 진정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현재의 가치를 저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를 무작정 지우지 않았던 동국사와 옥스퍼드대학. 그들의 혜안이 부럽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경영학박사/ 중소기업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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