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채용 비리를 저지른 은행 등 금융회사 최고 경영자(CEO)와 감사를 해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금융회사 CEO 인선 과정에서 현직 CEO 영향력을 제한하는 등 금융기업 지배 구조 개선 방안도 다음달 중 내놓을 계획이다. 그러나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여서 ‘뒷북’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금융 공공기관은 앞서 지난해 10~11월 채용 실태를 자체적으로 전면 점검했다. 민간 금융기관도 같은 기간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채용 시스템을 자체 점검했다. 작년 10월 국회 국정 감사에서 우리은행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는 28일 이 같은 내용의 ‘2018년 업무 계획’을 확정해 추진한다고 밝혔다.이에 따르면 우선 금융회사 채용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해당 금융회사 이사회에 CEO와 감사 해임을 건의하는 등 엄중히 처벌하기로 했다.
금감원, 국내 11개 은행 현장검사 결과 채용 비리 정황 총 22건 발견..은행들, "CEO 흔들기 이어질까" 우려
금융감독원이 작년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KB국민은행 등 국내 11개 은행을 현장 검사한 결과, 채용 비리 정황 모두 22건을 발견했다. 채용 청탁에 따른 특혜 채용 9건, 면접 점수 조작 7건, 채용 전형 불공정 운영 6건 등이다. 금감원은 22건을 수사기관으로 넘기고 전국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채용 절차의 투명성 및 공정성 제고 방안 등을 담은 모범 규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손병두 금융위 사무처장은 “(채용 비리 의혹 규명 시 CEO와 감사) 해임 건의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 것이지, 무조건 (건의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한 채용비리 검사에서 은행들의 소명을 들었기 때문에 해당 수사기관에 사례들을 바로 이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찰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금융시장과 소비자로부터 받는 신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CEO 연임 문제로 금융당국과 각을 세운 일부 금융회사가 이번 채용비리 적발 사례에 들어갔는지도 주목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특정 회사를 겨냥해 조사를 벌였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어느 은행에서 채용비리가 정확히 발견됐는지도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가 채용비리를 저지른 금융회사의 CEO 해임안을 발표한 시점과 금감원이 5개 은행의 채용비리 정황을 밝힌 시점이 겹쳐서다.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금융당국의 무리한 검사 및 제재가 해당 금융기관의 CEO 흔들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채용비리를 책임져야 할 경영진의 범위에 금융지주 회장까지 포함할 수도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 추진..CEO 선임절차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전문성-독립성 강화, 경영진 보수체계 개선
금융위는 업무계획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도 예고했다. CEO 선임절차의 투명성 제고를 비롯해 사외이사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금융회사 경영진의 보수체계 개선 등이 담길 예정이다. 금융업계에서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도 결국 CEO를 중심으로 한 경영진에 대한 당국의 감시가 강화되는 기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방침도 CEO의 사외이사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돼서다.
금융위는 기업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도 내년 상반기 시행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유관기관과 상장사 의견수렴을 거쳐 세부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또 금융위는 다음달 금융회사 지배 구조 개선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금융회사 CEO 선출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 운영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CEO 후보군 관리 기준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주주를 통한 평가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CEO 후보 선출 과정에서는 현직 CEO 영향력을 제한하고, 사외 이사 선출 시 외부 전문가 등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포함하도록 해 독립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소수 주주권 강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확산을 바탕으로 CEO 및 이사회 활동에 대한 주주 통제 강화도 추진한다.
금융위는 내달 대책 발표 후 올해 4분기(10~12월) 중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도 함께 진행할 방침이다. 개정안에는 금융권 고액 연봉자 보수 공시를 강화하고 임원 보상 계획을 주주 총회에 주기적으로 상정해 평가하는 방안도 담는다.
아울러 오는 3월에는 소속 직원의 외부인 출입 및 접촉 규정을 다룬 직원 행동 강령을 만들기로 했다. 금융 행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다만 금융의 경우 시장과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권고에 따라 금융 당국 특성에 적합한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내달 중 '핀테크 활성화 로드맵' 성안..내년까지 2조 들여 모바일 간편결제 등 혁신 핀테크 서비스 출시 적극 지원
금융위는 다음달 중 '핀테크 활성화 로드맵'을 만들어 내년까지 2조원을 투입, 모바일 간편결제 등 혁신 핀테크 서비스 출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보험개발원은 자율주행기술 보험상품 통계 개발과 연구를 지원하고, 은행과 보험사에도 블록체인을 통한 본인인증 시스템을 구축한다.또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발의한다. 혁신적 금융서비스에 대한 시범 인가와 개별 규제 면제 등이 특별법의 주요 내용이다.
로보어드바이저의 비대면(非對面) 일임계약을 허용하는 등 규제 합리화도 추진한다.금융 분야에서 빅데이터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이용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근거를 만든다.공공부문·금융부문의 정보뿐 아니라 통신정보, 온라인 쇼핑정보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금융회사의 개인신용평가체계도 고도화한다.
독과점 형태인 신용정보사(CB) 업계의 진입 규제를 정비하고, 빅데이터 분석·컨설팅 업무도 새로 허용한다.다소 '규제를 위한 규제'로 여겨졌던 개인정보보호 제도를 바꾼다. 현재의 정보활용 동의 제도를 합리화하되, 정보활용에 대한 설명요구·이의제기권도 도입한다.
이밖에 금융위는 작년 12월 금융행정혁신위가 권고한 73개 권고안도 이달 중 이행 계획을 마련해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권고안은 금융위 안건·의사록 공개, 불공정 영업을 향한 집단 소송 및 징벌적 손해 배상 도입 등의 방안을 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혁신위 권고 내용 중 당장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의 경우 혁신위 위원과 긴밀히 협의하고 관련 부처 의견 등을 고려해 방안을 검토 및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