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구현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구현
  • 권의종
  • 승인 2018.03.2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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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멀고 먼 일과 삶의 균형..일자리 나누기 실천은 우리 사회가 지향할 미래 가치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근로시간 단축이 논쟁이다.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었다. 제도 변경에 대한 반발이 벌써부터 거세다. 비용 상승, 생산 차질, 수출 악화를 우려한다. 줄어든 근로시간에 대한 기업들의 대비 또한 허술하다. 대책조차 못 세우는 형국이다. 대기업도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려 이중고(二重苦)라는 아우성들이다.

중소기업에게는 더 큰 충격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존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자본력 한계로 추가 채용은 엄두도 못 낼 처지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 감소폭이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크게 나타났다. 기본급이 낮은 데다 휴일·야간 근무 등 시급제 수당이 많은 열악한 급여구조 탓이다.

주 52시간 근로 시범적용에 들어간 대기업에서도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업무량이 줄지 않다보니 ‘위장 근무'만 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다. 퇴근한 것처럼 출입증을 찍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제 시간에 퇴근을 해도 재택근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월급만 깎이는 꼴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추가 채용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정부의 간절한 바람은 무망해 보인다. 자동화나 효율성 개선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기업들의 잽싼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생산시설이나 R&D 연구소 등의 해외 이전을 고민하는 케이스도 늘고 있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근로시간 단축 7월 시행 코앞인데.. 논쟁만 거세고, 준비는 허술, 대책은 빈손

무조건 주 52시간이라는 게 부담이다. 업종별 특성을 반영치 않고 일괄 적용하려는 시도가 문제다. 계절별로 시기별로 업무량이 상이한 산업의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밤샘이나 주말근무가 잦은 IT, 연구개발 산업 등의 현실과도 배치된다. 전문 영역이 달라 분업이 힘든 기업에게도 획일적 노동시간 운용은 적합지 않다. 근무시간을 명확히 획정하기 힘든 대외업무 분야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3개월로 묶인 탄력근로기간도 짧다는 반응이다. 납기를 맞추려면 근로시간의 유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일이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없을 때 쉬는 탄력적 근로시간이 법정 시간을 초과하면 이를 3개월 안에 해소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를 최대 1년까지 허용하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 비해서도 짧다는 해석이다.

각각의 주장들은 나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후진적인 노동여건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는 없다. OECD 회원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언제까지 일벌레로만 살아가기 어렵다. 변화된 노동관(勞動觀)과 다양화된 라이프 스타일에 부응할 시기도 되었다. 근로시간 최장국의 평가는 더 이상 자랑거리가 못된다. 아직도 근무여건 빈국임을 세계만방에 스스로 알리는 오명일 수 있다.

제도는 그 자체만 들여다봐서는 개선이 힘들다. 문제점만 보이기 십상이다. 제도 시행의 배경과 취지를 큰 눈으로 살펴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은 곤란하다.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임을 간파해야 한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구현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실천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시급하다.

후진적 노동여건 지금처럼 방치 안 돼..실질소득 감소 등 반작용은 최소화해야

실제로 앞선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사원의 생활을 배려하는 제도나 프로그램을 이미 시행 중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물론, 탄력적 근로시간 운용, 보육·간호 지원, 건강관리 증진, 교육훈련, 장기휴가 등을 통해 업무만족도 증대, 사기 진작, 기업에 대한 충성도 제고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이 실질소득 감소로 나타나는 반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런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부작용과 역기능을 바로잡는 보완책이 시행됨이 마땅하다. 집중적 탄력 근무를 노사 합의에 맡기고 법 적용 예외업종을 확대하는 방안도 서둘러야 한다. 업종, 직군별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 시행이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정된 틀로 현상을 가두려 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 국내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생겨서도 곤란하다. 채용 장려금, 사회보험료 지원, 노무 컨설팅 등의 과감한 지원책을 동원해서라도 국내 기업의 탈(脫)한국 사태는 막아야 한다. 필요하면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한 신용보증기금의 특례 지원도 고려해볼만하다.

형벌 기준에 대한 완화도 긴요해 보인다. 법정 근로시간 위반에 대한 사용자 처벌이 엄중한 편이다. 노사가 일을 더하기로 합의해도 형사 처벌을 피해가기 힘들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근로시간 단축이 정착될 때까지 만이라도 형사 처분보다는 노사 간의 자율 개선을 유도하고, 장기적으로도 형벌을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근로자의 밀도 있는 업무수행 역시 필수적 요건이다. 근무시간 중 사적 업무는 삼가야 한다. 업무시간 중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인터넷으로 개인 용무를 보는 것은 외국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각자가 주어진 시간에 업무에 전념하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 증가나 원가 부담은 상당부분 흡수될 수 있다. 제 할 도리를 다한 연후에 바랄 걸 바라는 게 근로자의 책임이자 권한일 수 있다. 의무이행이 곧 권리주장이라는 사설(私說)을 이 대목에서 감히 보탠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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