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專務)를 전무(全無)로 쓴 SK 임수길 전무의 ‘명함 홍보학’
전무(專務)를 전무(全無)로 쓴 SK 임수길 전무의 ‘명함 홍보학’
  • 이동준 기자
  • 승인 2018.10.2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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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지는 가을날 철학적 사유(思惟}에 이어 삭막한 우리 세태에 해학과 풍자 물씬 던져줘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SK이노베이션 임수길이라고 써있고. 그 밑에 홍보실장/전무(全無)라고 돼 있다. 혹시 잘못 받았나 싶어서 눈을 부비고 다시 한번 들여다 봤다. 전무(專務)가 아니라 전무(全無)였다.

아니? 순간 뭔가로부터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전무가 이런 별난 명함을 쓰다니...매우 의아한 눈초리로 상대방을 쳐다봤다. 거기서 상대방이 빙그시 미소짓는 모습을 보았다.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공식 석상에서 이런 명함을 상대방에 건네다니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명함은 남에게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이름, 근무처, 연락처 등을 인쇄한 종이다. 만약에 기업에서 인사나 재무 등 일반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이 이런 명함을 만나는 사람에게 건넨다면 생경함을 넘어서 다소의 무례함을 느낄 지도 모른다. 재벌임원 정도 되는 사람이 전무라는 한자어의 뜻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런 명함을 건네나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고된 대기업 홍보실장 자리서 이색적 명함 사용하면서 실(失)보단 득(得) 많이 봤을 듯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전무(全無) 명함을 사용한 사람은 해당 대기업의 홍보실장이다. 홍보란 기업 ·단체 또는 관공서 등의 조직체가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이나 계획 ·활동 ·업적 등을 널리 알리는 활동이다. 더우기 대기업 홍보실장은 고된 자리이기도 하면서 막강한 홍보예산을 휘두르는 재계의 '권력'이다.

아마도 임 전무는 홍보실장으로 이색적인 명함을 사용하면서 실(失)보다는 득(得)을 많이 봤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단 상대방으로부터 “이게 뭐냐?”는 질문을 이끌어 자기를 확실히 기억하게 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사람이 소속한 회사 이름과 브랜드를 상기하게 된다. 오래도록 자신과 회사를 기억하도록 하는데 성공했음직 하다. 결과적으로 명함 한 장으로 홍보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할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임수길 전무/홍보실장

언잰가 퇴직한 한 원로로부터 ‘화백’이라는 쓴 명함을 받았다. 베레모까지 쓴 차림이어서 은퇴 후 그림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생각했다. “퇴직 후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 되셨나요?”라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아닙니다. 놀고 있으니까 ‘화려한 백수’가 돼버렸으니, 그냥 줄여서 화백이라고 쓴 것이지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현역에서 은퇴한 그분이 일자리가 없어서 ‘화려한 백수’가 됐고, 명함에서는 신조어로 ‘화백’이 된 셈이다. 아이디어가 기발했고, 이를 명함으로 새기기까지 순발력이 느껴졌다. 여기에 명함을 받는 사람에게 웃음까지 선사했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는 기업의 경영철학을 알리는 기업 이미지 광고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고민하는 경영자(CEO)들이 많다. 장기 캠페인을 생각하지 않고 단발성 광고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SK, 임 전무 한 사람의 '명함홍보학'으로 기업 이미지 제고하는 좋은 광고 몇 편 한 느낌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발성 혹은 1회성 광고를 하려면 아예 광고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장기 캠페인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창의적인 광고를 해도 기업 이미지의 자산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대기업들도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단편적인 상품광고 말고도 장기 캠페인을 통해 이미지도 높이면서 마케팅도 하는 일석이조의 양면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임 전무는 '전무(全無)' 명함을 창안한 후  이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무슨 뜻이냐며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 때마다 “해석은 받는 사람 몫”이라며 자신이 경청을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해석은 자유다. 그래서 전무(全無)라는 단어는 낙엽지는 이 가을철에 종교적인 사념(思念)에 이어 철학적인 사유(思惟)까지 낳는다. 법정스님이 갈파한 무소유에 대한 깨달음을 진즉 알았던 것일까.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간다. 황후장상(王侯將相)에서 재벌총수까지 제 아무리 권력이 많든. 돈이 많든 우리 인간은 종국에 자연으로 돌아간다.

임 전무의 명함은 경제난과 스트레스로 웃음과 즐거움을 잃어가는 삭막한 우리 세태에 해학과 풍자를 물씬 던져준다. SK는 임 전무 한 사람의 명함홍보학으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좋은 광고 몇편을 했다는 느낌이다. 에디슨이 그랬듯이 한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기업에 대한 인상을 크게 바꾼다. 이런 임 전무의 숨은 노력을 최태원 회장이나 SK상층부가 충분히 알아주면 좋겠다.  

이 이색적인 명함을 필자와 같이 받은 동행자가 말했다. “요즘 언론사에서 대기업에 광고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예산이 한정돼 있는 반면 손 벌리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아마도 임 전무는 ‘아무에게도 광고를 더 줄 돈이 없다’는 뜻으로 그런 명함을 파가지고 다니는 지도 몰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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