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조국...'2003 호시우행(虎視牛行)'과 '2018 호시우보(虎視牛步)'
문재인과 조국...'2003 호시우행(虎視牛行)'과 '2018 호시우보(虎視牛步)'
  • 김명서
  • 승인 2018.12.03 12:03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 수석 메시지, 문 대통령 하고 싶은 말 대신 한 듯...이례적인 경제 성적표 반성 토로 주목

[김명서 칼럼] ‘호시우보’(虎視牛步). 요즘 뉴스의 중심인물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달 25일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의 주제어다. ‘호랑이처럼 살피고 소처럼 걷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우보만리’(牛步萬里·소걸음으로 만리를 간다)‘를 덧붙였다. 소처럼 뚜벅뚜벅 가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노정 갈등이었던 것 같다. 민주노총이 탄력적 근로제 확대 등에 항의해 총파업을 비롯한 집단행동을 본격화하는 상황이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진보 진영의 ‘실력자’까지 동조하면서 청와대로서는 고심이 깊어갈 수 밖에 없었다.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났지만, 경제 성장동력 강화 및 소득 양극화 해결에 부족함이 많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나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의 국정 성과를 요약해 소개한 뒤 “문재인 정부는 한 번에 ‘비약’은 못할지라도 한 걸을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호시우보’와 ‘우보만리’를 언급했다. 메시지 해석에서 복잡할 여지는 없다. 다만 본인 ‘전공 분야’도 아닌 경제 쪽 성적표를 반성한 점이 이채롭고, 진보 진영에 대해 이해와 협조를 주문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글에 앞서 조 수석은 페이스북에 또 다른 글을 올려 “노동문제와 관련해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대정부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상황의 기시감이 든다”고 밝혔다.

노무현정부 초기 기본스탠스는 ‘호시우행’...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승부수

기시감(旣視感)은 예전에 보았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미. 조 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기 상황이 기시감을 갖게 한다고 지목했지만, 기실 ‘호시우보’ 자체가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 같은 의미인 ‘호시우행(虎視牛行)’은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국정운영의 기본 스탠스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03년 4월 18일 새벽 ‘호시우행’의 뜻을 담은 편지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노 대통령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나를 흔드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누구 편도 아니다. 소처럼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나를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고 썼다. 불편한 심경이 행간 곳곳에 두루 담겨 있었다.

당시는 정권이 막 출범한 때여서 국정운영에 활력과 탄력이 넘쳐야 하는 시기.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 사건 수사가 큰 부담이 됐다. 야권의 공세가 치열한 가운데 여권 내부에서도 갈등과 분란의 양태가 이어졌다.

노조 문제도 악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철도 민영화’와 관련해 철도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은 노 대통령이 ‘호시우행’ 편지를 올린 다음 날 정부가 이를 철회함에 따라 가까스로 봉합됐다. 하지만 얼마 후에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갔고, 민주노총이 이를 주도하면서 노정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그 무렵 노동계와의 협상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스트레스에 치아를 10개나 뽑기도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호시우행’은 소신껏 밀고 가겠다는 ‘독야청청’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반발도 컸고,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그 해 1분기에 60%를 넘던 국정지지율은 4분기에는 22%로 떨어졌다.

2018년 ‘호시우보’의 승부수는? 경제 난국 타개 위한 강력한 ‘한 방’ 필요

호시우행, 호시우보는 우두머리의 언어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판단하되,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하겠다는 것은 아랫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인 조 수석에 대해 비판이 거센 것은 당연하다. 야당에서는 ‘군군신신(君君臣臣)’, 즉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라는 힐난조 논평이 나오기도 했다.

조 수석도 본인이 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사후의 비판적 여론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임종석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의 처신에 대한 여론도 곱지가 않은 터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 조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총대’를 멨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듯 싶다. 문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조 수석이 대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 수석의 얘기를 문 대통령이 직접 했더라면 그 파장은 무척 컸을 것이다. 특히 “경제 성장 동력 강화 및 소득 양극화 해결에 부족함이 많았다”고 토로한 대목은 다양한 해석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003년 ‘호시우행’의 승부수는 그 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새천년민주당을 떠나 딴 살림을 차린 것이다. 2004년 초 대통령 탄핵사태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그 해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대반전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2018년 ‘호시우보’의 승부수는? 그런 게 있다면 총체적 위기를 맞은 경제 쪽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승부수가 호랑이의 ‘한 방’처럼 결정타가 될지는 그 다음 문제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정확하고, 예리하고, 강력한 ‘한 방’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면 꾸준히, 견고하게 밀고 가야 한다. 그 ‘한 방’이 궁금하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