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김보름 기자] 한 살 미만 아기에게 접종하는 결핵 예방 BCG(Bacille Calmette-Guerin)백신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 온 한국백신이 고가의 백신 제품을 많이 팔려고 국가가 구입해 무료로 제공하는 필수 백신의 공급을 중단한 사실이 드러났다.
BCG 백신은 접종방법에 따라 주사로 접종하는 피내용 백신과 도장형인 경피용 백신으로 분류된다. 피내용 백신은 정부가 국가필수 예방접종 백신으로 지정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경피용 백신은 피부에 주사액을 바른 후 9개 바늘을 가진 주사도구를 도장처럼 눌러서 접종한다. 유료로 가격은 2017년 기준 4만1000원이며, 신생아 보호자들의 선택에 따라 접종해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6일 한국백신이 경피용 BCG 백신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피내용 BCG 백신 공급을 중단해 부당하게 독점적 이득을 획득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한국백신 및 대표, 본부장 등 임원 2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한국백신은 피내용 및 경피용 BCG 백신을 수입하는 한국백신상사, 피내용 백신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한국백신, 그리고 경피용 백신을 판매하는 한국백신판매 등 3개사가 있으며 도매상 등을 통해 백신을 유통시키고 있다. 한국백신은 하창화 회장(79)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BCG백신 시장은 몇 년 전까지 엑세스파마가 피내용 BCG 백신을, 한국백신은 주로 경피용 BCG 백신을 수입해 판매하는 전형적인 복점시장 형태였다.
그런데 2015년 피내용 백신을 생산하던 덴마크 회사가 민영화를 통해 매각되면서 피내용 백신 생산이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2016년 3월 일본의 백신 회사인 JBL(Japan BCG Laboratory)에서 생산한 피내용 BCG 백신의 국내 공급권을 한국백신에 부여했다.
한국백신은 2016년 8월 질병관리본부의 요청에 따라 2017년도 피내용 BCG 백신 2만세트 수입 계약을 JBL과 맺었다.
그러나 2016년 9월 주력제품인 경피용 BCG 백신의 판매량이 급감하자 피내용 BCG 백신 주문을 일방적으로 줄였다.
당시 경피용 BCG 백신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월별 판매량이 8월 2만3394세트에서 11월 1만2242세트로 급감했던 것이다.
한국백신은 2016년 10월 JBL사에 피내용 BCG 백신 주문량을 1만 세트로 축소했고; 그해 12월에는 수정된 주문량 1만 세트마저도 더 축소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결국 2017년에는 피내용 BCG 백신을 전혀 수입하지 않았다.
한국백신은 주문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와 전혀 협의하지 않았고, 취소한 이후에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피내용 BCG 백신의 국내 공급이 중단됐고, 질병관리본부는 신생아 결핵 예방에 차질이 없도록 2017년 10월부터 작년 1월까지는 고가의 경피용 BCG 백신으로 무료 예방 접종을 시행토록 조치했다.
이후에도 피내용 BCG 백신 공급이 계속 중단돼 임시 무료예방접종은 작년 6월까지 5개월 동안 연장됐다.
이 기간 동안 경피용 BCG 백신 사용량은 급증했고 BCG 백신 전체 매출액도 크게 늘어나 한국백신은 커다란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피내용 BCG 백신을 선호하는 신생아 보호자들도 경피용 BCG 백신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는 고가의 경피용 BCG 백신을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140억여원의 예산을 추가로 써야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부당한 출고 조절행위에 대한 제재 조치는 1998년 신동방의 대두유 출고 조절 사건 이후 약 20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신생아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백신을 대상으로 한 독점 사업자의 출고 조절행위를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