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신현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국내외 증시가 폭락하자 이 기회를 틈타 자녀들에게 보유 주식을 증여하는 재벌 오너일가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실시했던 증여를 취소하고 이달 들어 재증여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주가가 싸지면 증여세를 대폭 줄일 수 있어 값싸게 주식을 넘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허영인 SPC 삼립 회장(71)은 이달 8일 장남 허진수 부사장에게 보통주 보유 지분(9.27%) 중 절반에 이르는 4.64%를 증여했다. 증여일 기준 증여주식 가치는 265억원에 달했다.
앞서 이재현 CJ회장은 지난해 12월 두 자녀인 이경후 CJ ENM 상무와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에게 184만여주 신형우선주(CJ4우)를 증여했다가 지난달 30일 이를 취소하고 이달 1일 다시 증여했다. 지난해 12월 증여 시점을 기준으로 한 증여가액은 1204억원에 달하지만 이달 1일 시점으로 한 증여가액은 767억원 수준이다.
대기업 이외에도 중견기업들에서도 증여 사례가 늘었다. 임무현 대주전자재료 회장(78)은 지난 17일 본인 소유 지분 8.47%(123만2800여주) 중 46만주(3.125)를 두 자녀와 세 손주들에게 증여해 지분율이 5.24%로 줄었다.
천신일 세중(옛 세중나모여행) 회장(77)도 지난 14일 천세전 세중 사장 등 두 아들에게 보유 지분 13.72% 중 9.05% 어치를 증여했다. 증여가액은 32억원에 이른다.
휴대폰 등의 디스플레이 부품을 만드는 이라이콤의 김중헌 회장(66), 아세아시멘트 및 아세아제지 등 12개사를 거느린 지주사 아세아의 이병무 회장(79), 의류 OEM(주문자상표 부착 생산)업체 태평양물산 창업주의 부인 박문자 여사(80), 아파트 건설업체 대원 전영우 회장(90)의 부인 김계순 부회장(90) 등이 이달 들어 대거 증여에 나섰다.
이같은 오너일가의 신규 증여 및 재증여 사례가 증가하는 이유는 세금 절감 때문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상속·증여가 있던 날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의 주가평균을 과세표준으로 삼도록 규정하고 있고, 세금은 이러한 과세표준(기준가액)에 세율을 곱해서 매겨진다. 주가 폭락세 속 보유 주식의 증여를 서두르는 이유다.
한 회계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폭락과 업황 부진은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고통만 줄 뿐이지만 대주주들에게는 합법적으로 보다 값싸게 주식을 이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3월 폭락장세 기간 이후 아직 1개월여밖에 안 지났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 증여가 좀 더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