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의혹 '눈덩이'...시민단체 회계 '싹' 바꾸고, 부정 악습 끊어내야
정의연 의혹 '눈덩이'...시민단체 회계 '싹' 바꾸고, 부정 악습 끊어내야
  • 권의종
  • 승인 2020.05.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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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세계 꼴찌 수준...회계 신뢰 기반 갖추려면 ‘공익법인 외부감사 공영제’ 도입 필요

[권의종 칼럼] 회계 부정이 또 논란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곤 한다. 근치가 잘 안 되는 고질병이다. 이번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회견이 있고나서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이 도마에 올랐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의연 자체의 회계 오류를 넘어 윤미향 전 이사장과 가족, 주변인의 비리로까지 의심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정의연 회계 논란은 쟁점이 여러 갈래다. 기부금 등의 지출내역의 부실 기재, 개인 계좌로 기부금 모집, 국고보조금의 기재 누락 등이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지출명세서’에 개별 지출의 수혜 인원을 99명, 999명, 9999명 식으로 불성실하게 적었다. 50개 지급처에 지출한 모금사업 비용 3300여만원을 한 곳의 주점에서 쓴 것처럼 기재했다. 2016~2019년 국고보조금 13억4000여만원 중 8억여원을 공시에서 누락한 것 등이다.

부실 회계가 어디 정의연 만의 일이랴. 비영리조직 회계는 그간 관리 사각지대로 방치돼 왔다. 일부이긴 하나 사립유치원, 사립학교, 종교단체, 공동주택의 회계 관리가 투명하게 관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시민단체 등 공익법인 또한 부실 회계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20개 시민단체 중 사업·회계 분야 종합평가에서 ‘우수’등급 평가 단체는 35곳에 불과했다.

오랜 기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기업 회계는 자리가 잡혀가는 모양새다. 2017년 개정된 신(新)외감법, 즉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올해부터 상장사에 ‘6+3룰’이 적용된다. 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율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당국이 강제 지정하는 제도다. 기업과 감사인과의 유착을 막아 회계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근치 안 되는 회계 부정...기업 회계는 자리잡혀가나, 정의연 등 비영리 조직 회계는 아직도 사각지대

회계 논란의 책임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당사자에 있다. 정의연도 제기된 일련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관련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이를 방조한 주체들의 잘못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원만한 사태 해결과 올바른 대안 마련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무 관청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공익법인의 결산 내역을 공개만 요구했지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없었다. 나 몰라라 했다. 사전 예방은 없었고 사후 제재만 있었다. 꼭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산을 떨었다. 매번 관계자 처벌과 재발방지 약속의 사후약방문으로 적당히 때워 넘겼다. 정의연에 사단법인 등록을 허가한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여태껏 관리 감독의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이번에도 사태 발생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해명조차 없다.

국세청은 직무 태만이다. 시민단체의 지출명세서 등 재무제표를 공시만 하게 하고 내용은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통상 국세청은 매년 7월 공익법인 결산 내역을 검토해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는 곳에 재공시 등을 요청한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법인 총자산의 0.5%를 가산세로 물릴 수 있다. 정의연의 지출명세서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그제야 “결산서류 수정 공시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국가보조금 사후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정의연과 정대협만 하더라도 여성가족부, 교육부, 서울시로부터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13억4308만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올해도 6억2200만원이 예정돼 있다. 나랏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확인하는 작업에 소홀하다. 제 역할을 못하기는 언론도 다를 바 없다. 문제의 쟁점화에는 능하면서 실상 파악과 대안 제시에는 관심이 덜하다.

공공성 강화해서라도 불투명한 회계 관행 근절해야...회계 후진성,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천적 病因

공공성을 한층 더 강화해서라도 불투명한 회계 관행을 이참에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고민이다. 일반 기업처럼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면 간단할 것이나 그러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통합 법제화가 효율적일 수 있으나 이 또한 추진에 어려움이 크다. 공익법인의 성격이 다양하고 주관하는 정부 부처가 제각각인 때문이다.

후원금으로 살림을 꾸리는 공익법인의 입장에서는 감사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현재는 회계법인으로부터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는 공익법인의 범위는 연간 총수입이 50억원 이상 또는 연간 기부금 20억원 이상을 받는 공익법인(종교ㆍ학교 법인 제외)에 한하고 있다.

해법으로 공익법인 외부감사 공영제가 거론된다. 공익 성격의 법인에 대해 정부나 지방자지단체가 외부감사인을 선임하고 재정에서 비용 부담을 보전하는 방안이다. 영국, 뉴질랜드 등에서 시행되는 제도다. 선진 제도를 두루 벤치마킹해 우리 실정에게 맞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정의연 사태를 두고 변명과 질타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순간 모면의 시도나 공격을 위한 공격으로 허송세월했다가는 회계 부정의 악습은 영영 끊어내지 못한다.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3개국 중 61위다. 2017년 최하위, 2018년 62위에서 매년 한 단계씩 오른 게 그나마 이 정도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의 경제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회원국의 위상이 무색하기만 하다. 회계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경제의 존립기반은 흔들리고 만다. 한국 회계의 후진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천적 병인(病因)임을 이제라도 알아차려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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