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위기의 중소기업...생사 걸린 사내유보금 과세 재고해야
'백척간두' 위기의 중소기업...생사 걸린 사내유보금 과세 재고해야
  • 권의종
  • 승인 2020.11.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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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겐 탈세 방지-세수 증대의 고성능 무기...기업에는 생존 위협하는 무서운 흉기로 돌아올 수도
정부가 힘든 기업 돕는 건 좋지만, 무거운 짐 부과 심사숙고 해야...열(十) 지원이 한(一) 세금 못 당해

[권의종 칼럼] 사내유보금 과세를 두고 말들이 많다. 유보소득세가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2020년 세법 개정안에 '개인 유사 기업의 초과 유보소득 과세' 신설이 담겼다. 당기순이익의 50% 이상 또는 자기자본의 10% 이상의 유보금을 쌓아둘 경우, 이를 배당한 것으로 보고 세금을 매긴다. 최대주주와 가족 등 특수관계자가 8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 이른바 개인 유사법인이 과세대상이다.

정부도 나름대로 내세우는 이유가 있다. 개인사업자들이 높은 소득세율을 피하고자 법인을 설립,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받고 회사 자금을 꺼내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획재정부가 세법 개정안 자료와 함께 외국의 유사 사례들을 제시했다. 일본의 ‘동족회사 유보금 과세’와 미국의 ‘인적 지주회사세’를 예로 들었다.

알고 보면 실상이 다르다. 이들 외국 제도들은 기업 이익을 근거로 부과하는 법인세에 추가로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사내유보금을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 과세하는 유보소득세와는 개념이 상이하다. 유보소득세와 같은 사례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정치권도 문제점을 지적한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의 질타와 경고가 있었다.

경영계의 반발이 심하다.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중소기업과 소규모 가족법인의 부담이 가중될까 우려라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오너 일가의 지분이 80%를 넘는 기업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들이다. 중소기업 절반가량이 특수관계인 지분이 80%를 넘고, 대표 한 사람 지분이 100%인 1인 기업도 전체의 31%나 된다.

경영계, 현실 도외시한 탁상행정 맹비난...중소기업 및 소규모 가족법인, 부담 가중 우려

논란이 일자 기재부가 한발 물러섰다. 시행령에 당기 혹은 2년 이내 영업활동으로 투자, 부채상환, 고용, 연구개발 등에 지출하거나 지출하기 위해 적립한 금액은 간주 배당금액에서 제외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이자·배당소득이나 임대료, 그 외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동산·주식·채권 등의 처분 수입 등 수동적 수입의 비중이 2년 연속으로 50% 이상인 기업에만 과세할 것임을 밝혔다.

그래도 문제가 여전하다.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한 과세라는 게 부담되는 부분이다.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는 극히 신중해야 할 터. 실제로 하지도 않은 배당을 한 것으로 ‘간주’해 기업의 유보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법인세 외에 유보소득을 투자, 임금증가, 배당 등으로 지출하지 않으면 미환류소득 법인세로 추가 과세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가 시행 중임을 고려하면 ‘이중과세’의 성격이 짙다.

기업 경쟁력을 해친다. 과세로 인해 사내유보금이 줄어들면 기업 경영이 힘들어진다. 유보금은 주주 배당 목적 외에도 연구개발, 인력 채용, 설비 투자, 경제위기 대비 등의 용도로 쓰인다.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침체로 기업 경영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위기 안전판 구실을 하는 유보금이 요긴한 상황에서 도리어 과세로 인해 줄어들게 되면 설상가상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기준마저 모호하다. 정부가 정한 오너 일가의 지분율 80%, 당기순이익의 50% 등의 수치적 근거가 명확지 않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수치라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심리적 수치일 소지가 크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과학적 실증분석조차 없이 어림짐작으로 대충 정한 거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미실현이익 과세, 시기 부적절, 경쟁력 저해, 기준 모호, 자율경영 위배 등...문제점 수두룩

자율경영 원칙에 반한다. 배당 정책은 기업에서 중요 의사결정의 하나다. 개별 기업의 경영상황과 중장기 계획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는 게 상례라 할 수 있다. 납세의무 또한 실제로 배당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성립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이런 기본 원칙들을 어겨가면서까지 유보금에 과세를 추진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공평과세 취지에 어긋난다.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의 처분 수입 등 수동적 수입의 비중이 큰 사업자만 과세하겠다는 발상이 엉뚱하다. 용어부터 가려 써야 할 듯 싶다. ‘수동적 수입’(Passive Income)의 사전적 의미는 본업 외에 부동산이나 주식, 채권 투자 등을 통한 자산운용 수익 등을 뜻한다. 그렇다면 능동적 수입은 탈세해도 되고 수동적 수입은 탈세하면 안 된다는 해괴한 논리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

부족해진 세수 확보를 위해 기업을 상대로 세금 쥐어짜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완책이 가미된 시행령이 나오더라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성 싶다. 과세대상을 줄인다 해도 일단 유보소득세가 도입되면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과세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말마따나 과세대상이 그리 많지 않다면 굳이 실속 없는 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조세 제도만 복잡게 할 뿐이다.

정부로서야 탈세 방지와 세수 증대의 고성능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당하는 기업 쪽에서는 생존을 위협받는 무서운 흉기가 되고 만다. 과세당국은 예사로운 일일 수 있으나 납세자는 생존을 좌우하는 중대사다. 철부지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목숨이 걸려있는 법이다. 정부가 힘든 기업을 돕는 건 고맙지만, 그럴수록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 만큼은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한다. 열(十) 지원이 한(一) 세금을 못 당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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