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한단계 점프하려면 제품에 휴머니티와 인문학 갈아 넣어야"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전자산업의 양대축인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고 한 것은 충격적이다.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은 26년의 역사를 지녔고, 한때는 세계 시장점유율 3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트렌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경쟁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LG전자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모든 기기와 데이터, 사람이 센서로 연결·교감하는 초연결사회의 허브인 스마트폰을 포기할 수 없어 사업정상화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졌고 누적적자는 5조원에 달했다. 결국 사업을 계속할 동력과 의지를 잃어버렸다.
왜 이렇게 된 걸까?. LG 스마트폰의 실패원인과 시사점을 알아보기 위해 재작년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는 책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최 교수는 인문과 디자인, 공학을 넘나드는 통찰과 데이터 분석으로 현기증 나게 전개되는 디지털혁명이 시대의 문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주는 강사로 유명하다.
최 교수는 "LG 스마트폰의 실패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며, 이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역부족에 따른 것"이라 단언했다. 그는 요즘 세상에서 스마트폰은 그냥 하나의 기기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모양만 좋다고 들고 다니는 게 아니어서 항상 다른 제품과 비교하게 된다면서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경험이 제품의 선택과 교체를 결정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소비자들의 체감은 소프트웨어에서 이뤄지는 데 LG 스마트폰은 이를 소홀히 한채 오랫동안 하드웨어 혁신에만 신경을 썼으며,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을 잃은 뒤였다"고 했다.
그는 물론 LG가 배터리나 가전제품 등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제조기업이고 스마트폰 하드웨어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포노사피엔스를 사로잡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스마트폰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이라는 듀얼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들을 유혹할 '좋은 경험'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하모니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데, 하드웨어만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트렌드가 넘어갈 즈음에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잘 구축했지만, 노키아와 LG전자는 여기서 결정적 우를 범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는 LG전자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우리 제조업 전반의 고질적 병폐라고 지적했다. 우리 제조업체들이 물건은 꼼꼼하고 편리하게 잘 만들지만,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소프트웨어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를 혁신하지 않고는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우리산업을 '스펙경제'라고 했다. 예컨대 스마트폰 개발 때 소프트웨어팀, 하드웨어팀, 디자인팀에 각각의 스펙을 정해주고 목표시점을 제시하면 빠르고 정교하게 주어진 일정안에 잘 만들어내지만, 이들에게 협력과 융합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안겨줄 '최고의 경험'을 창출해 보라고 하면 하드웨어적 감성에 젖어있기 때문에 잘 안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제조업이 한단계 더 점프하려면 제품에 휴머니티와 인문학을 갈아 넣어야 한다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화학적으로 결합하고 여기에 심리적, 인지적, 감성적 가치를 더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제품 경쟁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조직도,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애플이 스마트폰의 핵심인 반도체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부품의 20% 이상이 한국제품일 정도로 기술력도 부족하지만, 세계 최고기업이 된 것은 제품에 인문과 예술이라는 감성을 심어 소비자들에게 감동적인 '좋은 경험'을 선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이후 경제에서 세계의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명을 표준문명으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의 대전환'이 시급하다면서, 정치인이나 관료 등 정책결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규제 마인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배워야 한다.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는 2010년부터 이미 디지털 국가로의 대개조를 추진했고, 그 결과 지난해 디지털 소비가 미국의 50배에 달했다"면서 "미국이 중국을 패권경쟁 상대로 견제하는 것은 중국이 이미 디지털 강국을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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