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대만경제, 경박단소의 강인함이 힘...한국경제의 타산지석
다시 보는 대만경제, 경박단소의 강인함이 힘...한국경제의 타산지석
  • 권의종
  • 승인 2021.03.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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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자국의 경제·산업적 특성 잘 살려...부품과 ODM, OEM 시장에 승부 걸었고 그게 정확히 맞아 떨어져
한국은 경제가 덩치 순인 줄 알고 규모의 1등이 1등인 걸로 착각해...중후장대의 큰 것만 좋은 것으로 알아
경제에 해답 없으나 해법은 있어...주어진 여건 활용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 경쟁 무기로 삼은게 성공 동인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코로나를 겪으며 다시 보게 된 나라가 있다. 대만이다. 지난해 3.11% 경제 성장을 했다. 2.3% 성장의 중국을 앞질렀다. 30년 만이다. 올해는 4.64%까지 성장을 자신한다. 세계 각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에 그친 상황에서 대만의 ‘나 홀로 성장’이 경이롭다. 지난해 –1.0% 역성장으로 22년 만에 최저 성장을 기록한 한국경제로서도 부럽다. 배가 아프고 속도 쓰리다.

인구 2,400만 명의 섬나라 대만. 1990년대까지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와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것도 잠깐.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터지며 침체의 길을 걸었다. 그런 대만경제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비결은 크게 3가지다. 코로나 방역의 성공, 비대면 중심의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경제 구조,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첨단 부품·제조 기술 중심의 산업생태계가 꼽힌다.

타이완 T방역은 경제 비상의 활주로가 되었다. 지난해 1월 21일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2월 초부터 중국인 입국을 막았다. 코로나 발생 사흘 만에 마스크 실시간 재고 앱을 만들고 마스크 배급제를 시행했다. 코로나 무료 검사를 조기에 착수, ‘무증상 감염자’를 사전에 걸러냈다. ‘거리 두기’는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수 시장의 타격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K방역에 주는 무안이 크다.

초동 방역의 성공으로 팬데믹 위기가 기회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스마트폰과 PC, 서버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코로나 백신 개발 소식이 전해진 것도 호재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경제 봉쇄 조치가 완화하면서 자동차와 가전 등의 내구재 수요까지 증가한다. 이 모든 게 대만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와 전자 부품의 주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출이 폭증한다. 비단 위에 꽃을 보탠다는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대만의 ‘나 홀로 성장’ 경이적... 코로나 초동 방역 성공으로 팬데믹 위기가 경제 부활 기회로

TSMC와 UMC 등 반도체를 위탁 제조하는 파운드리에 주문이 넘친다. 미디어텍, 노바텍 등 시스템 반도체 기업, 르웨광, 신텍 등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기판 업체 등도 동반 호황이다. 자동차 반도체 공급부족과 5G 통신 보급 증가로 주문이 더 몰린다.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증설을 서두른다.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 증가는 반도체 및 전자 기기의 핵심 공급자로서 대만의 입지를 더 굳어지게 할 거라는 전망이다.

지난날 대만을 우습게 본 측면이 없지 않았다. 자동차 같은 거대기업 제품은 만들지 못할 거라며 실없이 얕잡아 봤다. 실수였다. 대만은 반도체를 잇는 주력산업으로 전기차 육성에 나선 지 오래다. 2010년에 세운 ‘스마트 전기차 발전전략 및 액션플랜’을 토대로 완성차와 핵심 부품 분야에서 기술 독립을 선언했다. 우리는 경제가 덩치 순인 줄 알았다. 규모의 1등이 1등인 걸로 착각했다. 중후장대의 큰 것만 알았지, 경박단소의 강인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대만은 자국의 경제·산업적 특성을 오히려 잘 살렸다. 부품과 제조자개발생산방식(ODM),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시장에 승부를 걸었다. 그게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비단 반도체 산업에서뿐 만이 아니다. PC 부품, 스마트폰, 네트워크 저장장치, IT 기기 분야에서도 다름없다. 아이폰 최대위탁생산업체 폭스콘, 세계 최대의 노트북PC ODM 업체도 대만 기업들이다.

전문화에 집중했다. 우수한 기술력과 낮은 단가를 앞세워 글로벌 기술기업에 부품을 공급했다. 그들의 제품을 대신 생산해 글로벌 산업생태계의 중추를 이뤘다.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 테스트에 이르는 모든 공정에서 시장 점유율의 최상위권을 석권했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고루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어느 누가 사지 않겠는가.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를 보이지 않는 한 대만경제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대만경제의 성공 동인...부품과 ODM 시장에서 전문성 기르고 분업·협력 강화로 경쟁력 키워

불리함이 유리함이 되었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생기는 역기능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원청 대기업이 부진하면 하도급 중소기업까지 덩달아 부실해지는 연쇄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기업 간 분업과 협업 체제가 강점으로 작용했다. 부작용도 있었다. 제품을 값싸게 공급하려다 보니, 무리한 비용 절감으로 근로자의 임금 인상이 어려웠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최저임금이 동결되면서 극심한 내수 침체를 겪기도 했다.

대만 정부의 치밀한 산업전략을 눈여겨볼 만하다. 반도체 육성의 시작과 과정이 우리와 다르다. 한국이 대기업 총수의 결단과 리더십에 의존했다면, 대만은 철저하게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다. 1973년 산업기술 연구기관인 ITRI를 설립해 전자통신 부문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ITRI 산하 기구로 반도체 기술개발을 위한 EROS도 만들었다. 삼성전자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산업에 첫발을 내딛기 바로 한 해 전이다.

TSMC와 UMC도 정부가 만든 기업이다. UMC는 1970년대 후반 ITRI가 자본금의 44%를 출자했다. EROS는 UMC에 기술 인력과 반도체 생산 기술과 설비를 지원했고, 1987년 민간기업들과 함께 TSMC를 설립했다. 두 회사 모두 사업 다각화보다 반도체 생산이라는 본업에 집중했다. 국내외 기업들과 협업 환경을 만들었다. 팹리스, 파운드리 업체가 발전하면서 패키징, 테스트 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경제에는 해답이 없다. 다만 해법은 있다. 그런 점에서 대만의 예는 적잖은 참고가 된다. 여건을 활용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 경쟁의 무기로 삼은 성공 동인이 돋보인다. 기회 활용과 강점 집중으로 깊고 넓은 전문성을 기르고, 다른 기업과의 연계로 성장의 판을 키웠다. 여기에 국가적 후원을 보태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일궈냈다. 경영은 바둑과 같다. 수읽기로 미래를 내다보고, 세력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살려야 한다. 실패는 자충수요, 성공은 외통수라 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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