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오리에 밀가루 바르는 격”...한계기업 무작정 도우라는 금융당국
“죽은 오리에 밀가루 바르는 격”...한계기업 무작정 도우라는 금융당국
  • 권의종
  • 승인 2021.04.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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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불이행 상태의 투자자 '수두룩'...레임덕-데드덕 취급 안 당하려면 기업 스스로 뼈 깎는 자구노력 기울여야
힘든 기업 마냥 감싼다고 될 일 아니고, 부실 그냥 덮어준다고 회생한다는 보장 없어...옥석(玉石)구분이 필수적
기업부실의 정도 파악해 회생이 힘든 곳은 힘들어도 정리해야...하기 힘들다고 주저하면 나중에 뒷감당 어려워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4·7 재·보궐선거가 끝나면서 레임덕 화두가 자주 회자된다. 레임덕은 임기 종료를 앞둔 대통령 등 지도자나 공직자를 일컫는 용어다. 레임(lame)은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라는 뜻이다. 레임덕은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의 통치력 저하를 기우뚱기우뚱 걷는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임기 말 증후군’이나 ‘권력누수현상’이라 표현한다.

기실 레임덕만큼 위험한 게 없다. 주요 현안에 대한 정책 결정이 늦어질뿐더러, 공조직 업무 능률을 저하해 국정 공백을 일으키는 등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용어의 유래가 깊다. 18세기 런던 증권시장에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이 말이 빚을 갚지 못해 시장에서 제명된 증권거래원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식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는 장세를 황소(Bull)에, 내려가는 장세를 곰(Bear)으로 표현하며, 채무 불이행 상태의 투자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했다.

레임덕보다 더 심각한 권력 공백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죽은 오리’라는 뜻을 가진 데드 덕(Dead Duck)이다. 이미 정치 생명이 끝난 사람, 가망 없는 인사 또는 실패했거나 실패할 것이 확실한 정책 등을 의미한다. 이 말은 19세기에 유행한 “죽은 오리에는 밀가루를 낭비하지 말라.”는 속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슬프게도 우리 금융당국은 은행을 향해 “죽어가는 오리에 밀가루를 바르라” 주문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쇼크로 신용등급이 떨어진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심사에서 신용도를 깎지 말라고 요구한다. 금융위원장은 “불가피하게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한도, 금리 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부실 사업자에 계속 자금을 빌려주고 금리도 올리지 말라는 뜻으로 금융계는 해석한다.

한계기업 신용등급 낮추지 말라는 건 부실기업 대출하라는 말...금융부실 부추기는 위험 행동

코로나 쇼크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금융당국의 고심은 충분히 이해된다. 코로나 위기는 특정 분야의 산업만 겪는 고통이 아닐 뿐더러, 우리나라만 겪는 고난도 아니다. 미세한 바이러스 앞에서 세계 경제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태로 경기침체는 필연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돕고자 하는 것은 실로 당연하다.

다만, 빚이 느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한다. 지금도 빚이 차고 넘친다. 민간부문의 빚이 전체 경제규모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즉 가계·기업 부채잔액 비율이 215.5%로 추정되었다. 더 큰 걱정은 가계와 기업 모두 빚 갚을 능력이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저소득층·영세기업일수록 한계상황에 몰릴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 또한 못지않다. 지난해 말 1,726조1,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7.9% 늘었다. 기업 신용 또한 2,153조5,000억 원으로 10.1% 불었다. 자영업자 중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자영업자가 지난해 말 19만2,000가구로 늘어났다. 빚이 있는 자영업자의 6.5%이며 이들의 부채 규모만도 76조6,000억 원에 이른다.

기업 재무건전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해 부도 위험이 큰 ‘상환위험기업’은 전체 대상기업의 6.9%로 집계되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여신비중은 전체 기업여신(403조8,000억 원)의 10.4%인 42조 원으로 증가세가 이어졌다. “각종 금융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기업 채무상환 능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금융지원 조치 정상화 시점에 취약 부문의 신용 리스크가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지적이 귀에 따갑다.

‘기업 지원’과 ‘건전 금융’의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면 좋지만...한계기업 모두를 안고 갈 수 없어

한계기업 중에는 경영실패로 벼랑에 몰린 곳도 있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곤경에 빠진 기업도 적지 않다. 후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의 손길을 펼치는 게 마땅하다. 그러자면 기존의 여신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방식을 달리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특례보증 지원을 늘리고, 사업성이 유망한 기업에 대해서는 신용평가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다급해도 금융의 자율성과 건전성을 해칠 순 없다. 정부의 신용평가 개입은 금물이다. 금융의 본질에 반한다. 신용평가는 금융공급자의 자율사항이다. 어느 기업에, 얼마의 돈을, 어떤 이자로 빌려줄 것인지는 은행의 자체적 신용평가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다. 한계기업의 신용등급을 낮추지 말라는 것은 정상기업으로 갈 돈을 부실기업으로 흘려보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금융 효율을 떨어뜨리고 여신 부실을 부추기는 위험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힘들어도 기업 지원과 건전 금융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길은 외길이다. 한계기업 모두를 안고 갈 수 없다. 옥석(玉石)구분이 필수적이다. 부실의 정도를 파악해 회생이 힘든 곳은 힘들어도 정리해야 한다. 하기 힘들다고 주저하면 나중에 뒷감당이 어렵다. 대출한 은행은 물론 금융권 전체가 위기에 빠지고 만다. 1997년 외환위기도 그래서 왔다. 부실 처리, 은행부실, 구조조정, 대량실업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대가를 치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계기업을 무작정 감싼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부실을 마냥 덮어준다고 회생한다는 보장이 없다. 되레 위기를 깨닫지 못해 재기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대출금 상환 유예, 무차별적 자금지원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과거지사를 돌아봐야 한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 또한 막아야 한다. 힘들면 정부 탓부터 하고보는 악습부터 고쳐야 한다. 레임덕, 데드 덕 취급을 안 당하려면 기업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망 없는 기업에 발라줄 ‘밀가루’ 금융은 없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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