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가상화폐...거스르기 힘든 대세 인정하고 대책 마련해야
'백가쟁명’ 가상화폐...거스르기 힘든 대세 인정하고 대책 마련해야
  • 권의종
  • 승인 2021.05.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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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커졌으나 관리는 사각지대...당국, 성급한 결론보다 심층 검토와 창의적 대안을 모색해야
선거를 의식, ‘코인 민심’ 달래기용 사용 안 돼...'전심치지(專心致志)'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고사성어(故事成語), 옛이야기에서 유래된 한자 관용어는 늘 흥미롭다. ‘고사’란 옛날의 일, ‘성어’는 옛사람들이 만들어낸 용어를 뜻한다. 단어 길이는 네 글자가 가장 많으나, 짧게는 두 자부터 길게는 열두 자에 이른다. 비유적 내용을 함축한다. 교훈·경구·비유·상징어 및 관용구나 속담 등으로 쓰여 언어생활에서의 표현을 풍성케 한다.

고사성어가 많이 배출된 시기로 중국 고대의 춘추전국시대가 꼽힌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다양한 국가와 문화, 인물과 철학이 다퉜던 시기다. 수많은 영웅과 호걸들이 권력을 겨뤘다. 또 그만큼 다양한 학문과 철학이 등장했다. 후대는 이런 학파와 학자들을 가리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부르고, 다양한 학문과 철학의 분파가 토론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백가쟁명이라 일컫는다.

21세기 백가쟁명은 가상화폐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용어부터 혼선이다. 암호화폐, 가상화폐, 가상자산, 코인까지 중구난방이다. 법과 국제기구, 업계의 호칭이 제각각이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가상자산으로 명명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버추얼 애셋(virtual asset)의 용어로 정의했다. 블록체인 업계는 글로벌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크립토커런시(crypto currency), 즉 암호화폐의 명칭이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개념 정의도 나라별로 다르다. 독일은 은행법에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한다. 일본도 금융상품거래법에 암호자산을 금융상품의 하나로 명시한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 등 기관마다 다른 규정을 적용하나, 가상화폐가 일정 조건을 충족할 때 금융상품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있다. 이들 국가가 금융상품의 범위 안에 넣은 것은 투자자 보호나 과세 등의 이유에서다. 반면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2019년 가상화폐가 화폐도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용어부터 혼선, 암호화폐-가상화폐-가상자산까지 중구난방...‘투자’인지 아닌지 혼란만 부채질 해

혼란스럽기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총리는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며 “자산에 대해서는 결국 투자자의 판단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장은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화폐 투자자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해를 돕기는 커녕 암호화폐 구매가 ‘투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혼란만 부채질한다.

정부 말대로 가상화폐가 금융상품이나 투자상품이 아니라면 모순에 빠진다. 구매를 ‘투자’로, 구매자를 ‘투자자’라 부르면 안 된다. 일반상품 소비로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상화폐 거래는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 약관규제법,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 공정거래법 등으로, 거래소는 전기통신사업법을 적용해야 한다. 횡령이나 펌핑(pumping)은 형법상 사기로 처벌해야 한다. 이마저 않고 있는 정부로서는 직무유기라는 비난만 받게 생겼다.

가상화폐 난립이 어지럽다. 2017년 이후 국내에서 가상화폐 공개(ICO)가 금지되자 영리한 사업자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화폐를 발행, 국내에서 유통하는 편법을 써왔다 국산 가상화폐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이유다. 가상화폐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많아졌다. 업비트에 상장된 가상화폐는 178개이나, 미국 최대거래소 코인베이스는 58개에 그친다. 일본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플라이는 5개에 불과하다.

시장은 커졌으나 관리는 사각이다. 가격 변동에 따른 피해자가 속출한다. 피싱 사기가 횡행한다. 가상화폐를 일정 기간 거래소에 맡겨두면 가상화폐로 이자를 주는 스테이킹(staking)이 성행한다. 2030 청년층에 더해 10대와 50~60대까지 투자 대열에 합류한다. 출처 없는 정보로 수익률을 올려준다는 ‘리딩방’이 기승을 부린다.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가 막힌 북한이 해커부대를 동원해 가상화폐를 탈취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안보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건전한 거래환경 마련-투자자 보호 시급...유가증권처럼 제도권 내로 끌어들여 체계적 관리가 해법

환경과 질서가 바뀌면 인식과 대응이 달라져야 한다. 가상화폐에 대한 성격 규명이 급선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암호화폐든 가상자산이든 자산가치가 있는 건 분명한 만큼 투자자 보호는 필수적이다. 특금법 개정으로 가상자산사업자의 등록 요건과 의무 규정이 신설되긴 했다. 자금세탁방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흠이다. 해킹, 화폐 도난, 개인정보 유출, 거래소 파산 등의 피해 구제방안은 미비하다.

코인 광풍을 투기로 단정하고 규제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잠깐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거스르기 힘든 대세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투자은행 JP모건은 암호자산 펀드 출시를 결정했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수용을 발표했다.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WeWork 등 많은 기업이 암호자산을 결제 수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고, 국내에서도 가상화폐 거래대금이 코스피를 추월했다.

건전한 거래환경 조성과 투자자들이 볼 위험을 막아야 한다. 가상화폐를 꺼리고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닐 터.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처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집값 급등에다 자산 증식의 길이 막힌 젊은이들이 가상화폐 투자에 몰입하고 있다. 투자자 수가 400만 명, 직장인 10명 중 4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런 현실을 방치했다가 빚어질 결과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난제일수록 진중해야 한다. 현실을 바로 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큰 안목이 절실하다. 성급한 결론보다 심층적 검토와 창의적 대안을 궁리하는 게 지혜롭다. 노파심은 따로 있다. 경제원리에 정치논리를 대입할까 그게 걱정이다.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 ‘코인 민심’ 달래기용으로 써먹을 생각일랑 추호도 해서는 안 된다. 사자성어를 들어 결론짓자면, 백가쟁명보다 전심치지(專心致志)가 낫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면 안 될 일이 무언가.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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