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한다
  • 임정덕
  • 승인 2022.01.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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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덕 칼럼] 한국은 기적의 나라다. 세계 최후진국의 위치에서 한 세대 이내에 산업화를 이루고 이제는 명실 공히 열강의 반열에 오른 세계경제사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거의 동시에 민주화까지 이룩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수많은 나라가 따라 하고 싶은 멋진 선례이지만 아직 뒤따르거나 뒤따를 전망이 있는 후보국도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제조업 중심의 산업 기반에서 범위를 확 넓혀 최첨단 기술과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문화, 예술, 운동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선진국 그룹의 당당한 일원으로 우뚝 서기에 이르렀다.

사람은 경험의 동물이다. 자기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과거는 실감도, 이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아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해서 자기가 겪은 어려웠던 과거의 일을 쉽게 잊어버리고 현상에 몰두하거나 스스로 과거와 단절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이 이룩한 눈부신 변화는 역사책에 기록된 과거의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노년 세대가 몸소 경험한 삶 그 자체라는 점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국가 간의 경쟁은 결승점 없는 마라톤 경기에 비유할 수 있다. 경쟁력이 있으면 선두에 서거나 선두 그룹에서 함께 내달리고, 경쟁력이 부족하면 뒤처진 그룹에 속하거나 아예 뒤떨어져 외로이 혼자 뛸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들은 유럽연합(EU)처럼 여러 면에서 같이 서로 도와 가면서 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개별 국가의 경쟁력에 좌우된다. 어느 국가도 빠르게 달려 선두가 되거나 앞선 그룹에 합류하고 싶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한국은 지난 세기 후반에 최하위 그룹에서 발전 속도를 점차 높여 경쟁자들을 추월하다가 드디어 선두 그룹에 진입한 경우이고, 세계는 그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들 부른다. 그만큼 쟁취하기 어려운 성취를 해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경기는 여느 마라톤대회처럼 결승점이 있어서 시상식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쉬지 않고 달려야 하고, 추격의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지고, 추월은커녕 현재의 위치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오는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 하지만 여야가 벌이고 있는 작금의 선거운동 과정을 보면 시상식 준비와 시상금 나눠 먹기 시합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경기가 끝났으니, 경쟁력을 높이거나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조치와 준비 따위는 필요 없어졌다는 식이다.

그동안 경기를 위해 축적해 왔던 영양분과 지방질 등 몸속의 비축물과 경기력 제고에 사용해야 할 재료들이 몽땅 탕진되든 말든 나누고 즐기면서 잔치 분위기로 선거를 이겨 보겠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고, 앞으로 더 치열한 경주 과정이 전개될 테니 어떻게 대비하자는 설득과 비전 제시는 별로 없다. 고통은 벌써 끝났고 이제는 즐기면 그만이라는 무책임, 무대책의 극치다.

소를 키우는 농장의 경쟁력은 소의 숫자와 몸집 크기로 판가름난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소를 잘 키워서 숫자도 늘리고 몸집도 불려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말은 하나도 없고, 있는 소를 열심히 잡아먹겠다는 한심한 발상만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라톤 경주에서 이기기나 적어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가장 가볍고 뛰기 편한 복장으로 나서는 게 상식이다. 일부 대통령후보는 그러나 가뜩이나 규제덩어리를 이고 지고 뛰느라 허덕이는 우리 기업들한테 새로운 규제들을 더 얹어 주겠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이래서는 현재의 위치도 지킬 도리가 없다.

나라마다 처해 있는 여건이 다르다. 한국은 다른 경쟁국들과 달리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정세 등 국가지도자가 챙기고 염두에 두어야 할 위험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이런 국가적 과제가 논의거리로 부각조차 안 되는 괴이한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마라톤 경기는 나라가 존속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 나라는 지금의 유권자 당대에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과거를 잊지 않아야 미래도 보장된다. 결전의 날이 불과 40여일 앞으로 닥쳤는데도 허접한 네거티브에 매몰돼 극도의 혼돈을 연출하고 있는 대선판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앞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정덕 (jdlim@pusan.ac.kr)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효원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저 서

적극적 청렴-공기업 혁신의 필요조건, 2016
부산 경제 100년-진단 30년+ 미래 30년, 2014
한국의 신발산업, 산업연구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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