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이용후생의 참된 뜻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이용후생의 참된 뜻
  • 박수밀
  • 승인 2022.03.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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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밀 칼럼] 공과금과 집세를 내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적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이야기하고 자동청소기와 건조기가 삶을 더욱 편리하게 해주는 세상을 살아간다지만 우리 삶 뒤편에는 생활고와 힘든 삶을 간신히 견디며 생존의 막다른 곳에서 고통받는 이웃이 참 많다.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모두가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은 가능하긴 한 것일까? 연암의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은 그 꿈을 이야기한다.

1780년 반당의 자격으로 중국 사행을 떠나게 된 연암은 한양을 떠난 지 한 달 후 중국의 책문(柵門)에 도착했다. 책문은 중국 땅을 밟고서 처음으로 접하는 중국인 마을이다. 연암은 푸른 깃발을 단 술집으로 들어갔다. 연암은 탁자 위에 놓인 술잔에 눈길이 갔다. 술잔은 놋쇠와 주석으로 만들어 은빛으로 반짝였고 한 냥(兩)부터 열 냥까지 무게가 각기 달랐다. 넉 냥 술을 주문하니 넉 냥들이 잔으로 따라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싶은 양에 맞게 술을 살 수가 있었다. 술을 사면 술이 모자라거나 남았던 조선과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주변을 보니 외양간도 정갈하고 두엄더미도 그림같이 깨끗했다. 허투루 만든 생활 도구가 하나도 없었고 모든 도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었다. 연암은 크게 깨달았다.

점포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고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한 가지 일도 구차하거나 미봉으로 한 법이 없고, 한 가지 물건도 삐뚤고 난잡한 모양이 없다. 비록 소 외양간, 돼지우리라도 널찍하고 곧아서 법도가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장작더미나 거름더미까지도 모두 정밀하고 고와서 마치 그림 같았다.

그렇다! 이와 같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용(利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용(利用)이 있은 다음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고 후생(厚生)이 된 다음에야 정덕(正德), 곧 덕이 바르게 설 것이다. 그 도구를 이롭게 만들지 못하고서는 그 생활을 넉넉하게 만들 수 없다. 생활이 스스로 넉넉하지 못할진대, 어떻게 그 덕을 바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열하일기(熱河日記)』 6월 27일

이용(利用)은 도구를 이롭게 만든다는 뜻이다. 각기 쓰임에 맞게 생활 도구를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용(利用)은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일상의 삶과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을 잘 살펴서 생활의 도구를 규모 있고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다. 돼지우리같이 지저분하고 거들떠보지 않는 곳도 잘 살펴서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후생(厚生)은 삶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것 하나라도 소외시키지 않고 구석구석 잘 살피면 백성의 삶이 골고루 풍요로워진다. 백성이 골고루 잘살면 인간의 덕이 바르게 선다.

당시 사대부들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정덕이용후생(正德利用厚生)”의 구절에 따라 맨 앞에 나오는 정덕(正德)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다가, 점차 먹고 사는 문제를 소홀히 여겨 백성의 현실을 외면하고 말았다. 하지만 연암은 조선 백성의 궁핍한 삶과 중국의 발달한 문물을 눈으로 확인하고서 정덕과 이용후생의 관계를 깊이 고민했다. 먼저는 이용(利用)과 후생(厚生)이 이루어져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게 될 때 정덕(正德)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연암이 정덕보다 이용후생을 앞세운 것은 정신보다 물질을 우위에 두려는 생각이 아니다. 가난에 굶주린 백성의 삶을 살피고서 백성의 삶을 높여주어야 인간다움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허생전」에서 도둑들이 “땅이 있고 아내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되었겠소?”라고 한 말은 삶의 기반이 마련되어야 인간다움을 지켜갈 수 있다는 상식을 잘 보여준다.

연암은 정덕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어느 백성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잘 사는 복지의 바탕 위에, 도덕이 바로 선 나라를 꿈꾼 것이다. 참된 정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용후생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곧 이용후생과 정덕은 경중(輕重)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였다.

이용후생은 단순히 경제적 편리함과 물질의 부만을 추구하는 개념이 아니다. 작고 평범한 존재도 함께 잘살되 올바르게 사는 세상을 꿈꾼 한 인간의 소망을 담은 개념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를 목도하고 있지만 환경사, 정신사 측면에서 과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만 잘살고 보겠다는 욕망을 거두고 너도 잘되고 나도 잘되는 세상을 모두가 꿈꾸었으면 좋겠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 수 밀(한양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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