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없는 살림...채우기 아닌 비우기 위한 쇼핑론
냉장고 없는 살림...채우기 아닌 비우기 위한 쇼핑론
  • 이영미
  • 승인 2022.09.0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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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냉장고 없는 신혼부부의 일화...우리는 먹을 음식을 넣는 게 아니라 욕심을 넣어두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영미 칼럼] 다시 9월, 청첩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오래 미뤄둔 결혼들을 하는 집이 많은데 그 가운데 좀 특이한 커플을 만나게 됐다. 신혼집을 채울 새살림을 마련하느라 바쁜 예비부부. 

그런데 냉장고를 사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라지만 먹고 사는게 최고의 일인데 냉장고가 없다? 인공지능이니 스마트 가전이니 화려한 가전들이 줄을 지어 나오는 시대에 불편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냉장고 없는 신혼이라니?

예비신부는 신랑과 가벼운 실랑이를 했다. 한밤중에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 차리는 알콩달콩한 밥상도 없다면? 맥주나 와인 있으면 안주 정도는 만들어 먹고 싶을 텐데 그 때는? 신랑의 대답은 다정하지만 단호했다. 

"우리 아파트는 아침밥이 나오지 않느냐고. 점심은 각자의 회사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같이 외식하고 들어오자고. 사실 지금 자기는 다이어트 중이라 저녁은 단백질 보조제 등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퇴근하고 저녁 준비도 번거로울 거라고. 쉬는 날 외식도, 배달도 되고 남는 음식을 보관하는 건 냉장고를 채우는 버릇 때문에 낭비로 가기 쉽다고. 때맞춰 필요한 만큼만 사서 남기지 않는 버릇 들이는 건 어떠냐고. 아이가 생기거나 집 밥을 먹어야만 하게 되면 그때 가서 고민해보자고..."

예비남편의 제안은 솔깃했지만 의심이 가기도 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 살아 봐라, 그렇지가 않다, 꼭 사야 된다, 그것도 큰 걸로 사라고 잔소리를 해 댈 것이다.

찬장을 쓰던 시절에는 필요한 음식만, 아니 남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에 냉장고는 필요가 없어

시대가 달라지면서 혼수도 변한다. 한 15년 전에는 신혼집에 홈시어터를 만드는 것이 대 유행이었다. 90년대는 김치냉장고나 식탁이, 80년대는 전축(오디오 셋트)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재봉틀이 인기 혼수 품목이었다고 한다.

찬장을 쓰던 시절에는 필요한 음식만, 아니 남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에 필요가 없었다.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는 더 큰 것을, 더 많이 사고 싶어 했다. 재봉틀은 진작에 필요가 없어졌고, 작은 냉장고에서 시작된 우리네 혼수와 가전은 양문형 냉장고와 자동화 된 첨단 가전이 되었다.

문제는 그에 따라 커진 것은 쇼핑 물품과 규모다. 냉장고를 채우게 되니, 장바구니 대신 거대한 카트가 필요해 졌다. 박스와 1회 용기는 주말마다 쌓아 놓았다가 분리 배출한다. 다 그렇게 사니까, 편하니까.

나 역시, 우리집의 탱크 같은 두 대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어느 집이나 아마 비슷할 거다. 2~3일 안에 먹을 몇 개의 음식만 가지런한 냉장고? 그런 집을 본 적이 없다. 

냉장고 문을 열면 쏟아져 그릇이 깨지는 일부터, 언제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몇 년 된 음식. 상하고 마른 음식 아닌 음식, 남은 약봉지,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물체(?)들. 한때는 음식이었던 것들도 있다. 

냉장고 없는 젊은 부부는 어쩌면 당장의 재미보다 훨씬 더 큰 미래를 생각하는 선구자일 지도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비슷하다. 우리네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는 냉장고에 먹을 음식을 넣는 게 아니라 욕심을 넣어두는 것은 아니었을까.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것이 낭비가 아닌 풍요와 부의 상징이었던 때가 있었다. 남기더라도 넘치게 대접해야 인정 많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마트에 가면 테입으로 둘둘 감긴 1+1, 또는 박스로 음식들을 구매해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얘기한다.

전 세계에서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진다고 한다. 반면 매일 1500명 정도가 기아로 사망한다. '제3의 녹색 혁명'의 저자 이효원은 "식량 생산의 증대로 1차, 2차 농업 혁명을 이뤄 폭발적인 인구의 식량을 해결했다면 이제 제3의 혁명은 남기지 않고 적당히 사용하는 소비자 혁명으로 이뤄야 한다"고 했다. 

식량은 매 해 줄어들고 기후 위기는 가속화된다.냉장고를 사지 않는 젊은 부부는 어쩌면 당장의 재미보다 훨씬 더 큰 미래를 생각하는 선구자일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버릴 수는 없다. 하루아침에 삶 자체를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네 냉장고를 한 번 열어보는 건 어떨까. 채우기 위한 것 말고 비우기 위한 쇼핑을 해 보는 것이다. 카트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내려놓으면서, 필요한 만큼만.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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