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내려놓는 것과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
내가 사는 집...내려놓는 것과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
  • 이명미
  • 승인 2022.09.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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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미 칼럼] 즐겨보는 교육방송 프로 중에 '건축탐구 집'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살던 곳 대신 자신과 가족들만의 집을 짓거나 꾸민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집에 대한 소박한 인터뷰 방송이다.

구로의 공동주택에는 8가구가 산다. 대지가 ‘기역’자 형태로 나와 그걸 살려 짓다 보니 통으로 넓은 공간은 나오지 않아 가장 큰 평수가 28평 정도다. 총 5층인데, 건물 1층은 공용 거실이고 옥상은 캠핑을 할 수 있게 꾸며졌다.

신혼부부, 싱글, 노부부, 두 아이와 두 부부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입주한 이 건물은 1층의 공용 식당에서 함께 요리해 먹고 파티도 한다. 각각의 공간이 구성원들의 요구에 맞춰 다르게 지어져 각자의 공간에서 저들만의 일을 하고 놀고 즐긴다.

고양이가 사는 집에는 계단과 층이 많고, 재택근무자의 집은 책상이 크고 창이 넓다. 층간소음 없고 풍경도 좋은 데다가 함께 모여서 즐길 수 있어서 입주자들은 대만족을 한다. 무엇보다 공동주택이 자체 규약을 갖고 있어, 저리 대출 규모도 조절할 수가 있게 되어 있다.

일상생활에 지쳤다가 행복을 찾기 위해 뭔가를 얻는 대신 내려놓고 비우는 사람들

작은 시골에 땅을 사고 직접 ‘소안재’를 지은 신혼부부는 건강 문제 탓에 이사를 왔다. 계속되는 야근에 쉬어도 쉬지 못하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살다 건강이 나빠진 부부는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와서 편안한 매일을 살고 있다. 다락방에는 명상 공간을 만들고, 거실 대신 쉬는 공간을 두고, 넓은 마당에 나가 캠핑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건강이 회복된 건 물론이다.

또 다른 가족의 경우, 넓은 집에서 불편함이 없이 살던 세 가족은 어느 날, 너무 많이 쓰고 누리는 삶에 회의를 느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14평의 한옥을 마련했다. 갑자기 줄어든 공간에서 살려면, 버리고 정리하면서 지내야 하지만, 마당을 내고 하늘을 보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는 셋만의 저녁은 오붓하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그것 외에도, 화재로 잃어버린 집 대신 새로 지으면서 온 가족이 다 모이고 결혼해서 배우자까지 데려오면서 여덟 식구의 대가족이 된 시골의 축산농가도 있고, 아픈 가족을 위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가족의 행복을 찾게 된 이야기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것이다. 일상에 지쳤다가 행복을 찾기 위해 뭔가를 얻는 대신 내려놓고 비우는 쪽을 택했다는 것.

주위를 돌아보면 너무 빠르게 가고 많이 먹고, 또 많이 가지려고 허덕이며 뛰고 달리고 매달렸다. 그러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멈추고 나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얻으려고 했던 그것들은 쌓을 수도, 누릴 수도, 가져갈 수도 없다는 것을.

떠나온 이들이 했던 일들, 가장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은 바로 내려놓은 것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다가 인류는 벼랑 앞에 섰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재해와 이변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더 쌓아 두고 악착같이 모으는 것이 잘사는 거라고, 남들처럼 사는 방법이라고 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영혼까지 끌어 모으고 빚까지 져서 강남에 아파트를 샀다. 희망을 꿈꾸었지만 그 결과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너무나 분명하게 나와 있다. 이들의 잘못도 아닌데.

'건축탐구 집'에서 말하고 있는 집은 재산이나 투자가 아니다. 특이하고 보기 좋아 자랑거리나 이슈가 될 장소도 아니다. 이들이 지은 새 집에서 고민하는 것은, 얼마나 더 남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웃을 수 있느냐다. 아니, 사실 고민하지 않는다.

늘 웃게 되기 때문에. 새 생활을 위해 큰 돈을 들이지도, 영혼을 모으지도 않았다. 사는 데를 버리고 떠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아니면 다른 가족과 합치기도 했다.

이들이 했던 일들, 가장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은 바로 내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목숨을 걸고 쫓았던 그 많은 일들이 결국 자신을 쫓아 괴롭히더라는 것. 대부분 그런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집은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고 쉬는 곳이라는 걸, 이들은 말해준다. 편안하고 따뜻한 말씨로.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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