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아이와의 전쟁'..."그 때의 나도 이랬는데"
매일매일 '아이와의 전쟁'..."그 때의 나도 이랬는데"
  • 이영미
  • 승인 2023.02.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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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칼럼] 나는 찬우다. 만 여섯 살 3개월이 되었으니 이제 혼자서 옷도 입을 줄 알고 목욕도 한다. 말도 많이 할 줄 안다.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한 발로 서서 공 멀리 던지기도 하고, 두 손으로 날아오는 공도 받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은데, 근래 들어 어쩐지 엄마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자꾸 학교에 가려면 잘 해야된다 하면서 한숨을 쉬거나 아니면 형하고만 얘기하거나,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 얘기를 한다.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프로를 틀어놓고 엄마는 또 전화를 하길래 옆에 있는 장난감을 집어 TV에 던졌다. 엄마가 자꾸 또 던질 거야? 던질 거야? 라고 했으니 말대로 던져봤다. 제법 큰 소리가 났다. TV화면이 갈라지면서 오색 빛깔이 무지개처럼 빛났다. 화면이 잘 보이지 않고 줄이 갔지만 그것도 제법 재미있었다. 엄마가 혼비백산하면서 달려왔다. 왜 그렇게 놀라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다 나한테 화를 내길래 나도 같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오후에는 센터에 치료교육을 받으러 가는 날이지만, 오늘이야말로 힘을 내서 절대로 안 질 생각이다. 교실에 들어가면 선생님이랑 수업을 안하면 얼굴이 무서워져서 다 해야 끝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만 어떻게 피하면 안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엄마도 지른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울고 주먹질을 해서 내 놀라운 힘을 과시하기로 했다. 내가 때리면 엄마도 나를 쥐어박는다. 소리도 크게 지른다. 그럼 나는 지지 않으려고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운다. 전에도 그렇게 해서 TV를 봤었으니까 아마 내 뜻대로 될 거다. 더욱 심기일전해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엄마가 표정 없이 나를 끌고 센터에 가서 교실에 밀어 넣어버렸다. 오는 길에 그렇게 크게 울고 바닥을 굴렀는데도. 그렇게 하면 눈물도 진짜 나와서 엄마가 놀라 멈출 줄 알았는데도. 결국 수업에 들어갔는데 추운 날 너무 크게 울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너무 잠이 쏟아져서 수업 중에 자꾸 눈이 감겼다. 어, 이게 아닌데!

수업을 끝내고 다시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니 잠이 달아났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 게 많은지 엄마가 모르는 것 같아서 보여주려고 빨래 건조기 문을 열었다. 옆에 있던 수건과 물병과 간장병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건조기가 돌아가고 안에 든 병들 뚜껑이 열리면서 달그락 소리가 나서 재미있었다.

내가 이런 것도 못하는 줄 알았나 보다. 뭔가를 넣고 돌리면 빨래가 따뜻하고 보송해져 나온다는 걸 모를 나이는 지났단 말이다. 엄마가 또 놀라서 달려왔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나를 욕실로 들여보내서 나는 목욕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탕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과연, 나란 인간, 목욕도 혼자 하는 데다 물도 버리고 정리도 혼자 할 줄 안단 말이다. 손에서 왜 간장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다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혼자서 할 줄 안다고 칭찬을 했다. 이제 내 진가를 알아주는군. 진작 그랬어야지.

연일 아이와 싸우다가 언어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말도 늘고 인지력도 늘고 상황 판단력도 좋아진 자기 자신을 알아 달라고 엄마와 기 싸움을 시작 한 거라고 해석해주셨다. 아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봤다.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좀 다르게 생각하고 혼자의 세상에서 놀고, 남들이 예측한 대로 행동하는 건 자존심 상해 싫었던 나의 마음. 사실은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그걸 지금 아이의 못된 행동에 대입했더니 대체로 맞아들어갔다.

아이와의 전쟁은 쉴 틈이 없다. 그런데 아이 입학을 앞둔 부모들이 많이 들 그런다고 한다. 이 애는 대체 왜 정신 사납게 돌아다닐까, 왜 남들 다 하는 것도 못할까 부터 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혹은 왜 이렇게 말이 없을까.

그 반대편에서 아이도 걱정을 한다고 한다. 내가 봐 달랄 때 엄마는 나를 왜 혼내기만 할까. 엄마는 왜 형만 이뻐할까, 내가 할 줄 안다는데 엄마는 왜 화를 낼까.

40년도 넘은 내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 때 엄마가 참 야속했는데. 이유도 없이 학기 초엔 매일 울었는데, 그 울던 아이의 얼굴에 지금 우리 아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미안하다. 엄마가 아이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구나.

새삼 떠오르면서 부끄러워졌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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