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쟁점화하는 '갑을(甲乙)문제'와 기업윤리 성찰
다시 쟁점화하는 '갑을(甲乙)문제'와 기업윤리 성찰
  • 조석남
  • 승인 2023.04.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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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의 '갑질' 다시 등장...좋은 기업윤리를 권장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기업에 그만한 가치를 줄 필요

[조석남의 에듀컬처] ‘을’들이 ‘갑’의 횡포, 즉 불공정 피해로 다시 아우성이다. 한동안 잠잠해 어느 정도 해결기미를 보이던 대기업들의 갑질이 다시 등장한 때문이다. 낡은 갑질들이 재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 탈취와 아이디어 도용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필수물품 강요와 일방적 계약갱신 거절 또는 해지는 여전히 갑의 단골메뉴다. 일방적인 상가임대료 인상 또는 쫓아내기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과 계약해지가 부쩍 늘고 있다.

‘갑을문제’ 해결이 시급한 실정이다. 올해는 지난 2013년 남양유업사태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갑을개혁 운동이 본격화된지 10년이 되는 만큼 을들의 삶은 좀 나아졌을까?

참여연대는 남양유업사태 후 10년 동안 '을'들과 함께 갑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입법 운동을 펼쳐왔으나 코로나 사태 후 갑질이 급격히 확산해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참여연대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을지로위원회는 다양한 갑을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피해들을 공론화하기 위해 지난 4월 20일부터 오는 5월 17일까지의 일정으로 국회에서 <불공정 피해 증언대회, ‘을(乙)들의 아우성’>을 열고 있다.

‘갑을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한계

갑과 을은 원래 계약관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갑과 을은 양자가 합의한 계약내용을 이행하는 대등한 주체이다. 그러나 어느새 이 말은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일컫는 말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갑은 우월적 지위에 있고, 을은 그런 갑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 낮은 위치의 존재가 돼버렸다.

원래 갑과 을은 우열 개념이 있는 말이 아니다. 갑을은 천간(天干)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에서 따온 말. 10개 천간과 12개 지지(地支)의 조합이 60갑자다. 천간은 하늘의 시간적·계절적 기운 흐름을 순서대로 나타내고 있을 뿐, 끝없이 순환하는 계절이 잘났다며 우쭐댈 리 만무하다. 인간이 임의로 갑을을 차용해 우월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갑을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재도 공정거래법 23조는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갑의 횡포'를 규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갑과 을의 문제는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기업윤리'의 차원이다. '기업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최대목표가 이윤추구'라는 점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돈만 되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왜곡된 상업문화를 만들게 하는 원인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본받을 만한 '기업윤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전남 구례 운조루(雲鳥樓)의 사연은 음미할 만하다. 대저택인 운조루는 동학농민운동과 활빈당, 일제 강점기, 여순반란사건, 6·25 전쟁과 빨치산 등 비극적인 우리 근현대사의 대변혁을 겪으면서도 230년이 넘도록 그 원형을 지키며 보존돼 왔다.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이면에는 이유가 있다.

윤리의 토대가 갑과 을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어

'타인능해(他人能解)'. 이는 '누구든지 쌀뒤주의 마개를 풀어도 된다'는 뜻이다. 운조루의 후미진 곳간채에는 커다란 쌀뒤주가 있었다. 이 뒤주의 아래 부분에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을 만들어 여닫는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뒀다.

즉, 누구든 마음대로 마개를 열고 쌀을 퍼갈 수 있었던 뒤주였던 것이다. 운조루는 200여 년 동안의 선행이 있었기에 대변혁기 속에서도 기적처럼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운조루 주인의 마음이 모두를 감동시켰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주의 최부자도 10대를 이어 1만석 이상 재산을 늘리지 않았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며 일정 이상의 소득은 소작인들에게 돌렸다. 조선 인조 때 서생인 허생은 매점매석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섬을 사들여 빈민들을 정착시켰다. 모든 재산을 그렇게 사회에 환원하고 본인은 서생으로 돌아갔다.

시대는 변했다. 이러한 윤리와 도덕을 그대로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기업윤리를 권장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기업에 그만한 가치를 줄 필요가 있다. 결국 윤리의 토대가 갑과 을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돈을 어떻게 버는 기업인가'에 관심을 기울일 시점이다. '돈만 벌면 그만인 시대'는 끝낼 때가 됐다.

보통사람들 역시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우에 따라 보통사람들도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 때때로 '갑'이 됐다고 '을'을 구박하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이런 개개인의 자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한국골프대 부총장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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