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는 지역경제의 ‘양화(良貨)’
지역화폐는 지역경제의 ‘양화(良貨)’
  • 정기석
  • 승인 2023.06.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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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인구감소, 지역소멸 등에 대처하려는 지역화폐 사업이 존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정부가 2024년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비 지원이 끊기면 지역화폐 발행은 사실상 어렵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에게 독자적인 지역화폐 사업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나아가, 경제활성화, 지역사회 재생을 위한 지역의 노력과 의지는 큰 상처와 타격을 입게 된다.

지난달 말, 행정안전부는 지역화폐 사업 예산 전액 삭감을 포함한 2024년도 예산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은 2019년 533억원, 2020년 6298억원, 2021년 1조2522억원으로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6052억원으로 대폭 감소됐다.

정부는 ‘지역화폐는 지자체에서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마침내 이런 논리를 내세워 2023년 예산부터 기재부는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다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전년도 절반 수준인 3525억원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타협을 이루었다.

지역화폐는 지역순환경제생태계의 ‘혈액

지역화폐는 통상 5∼10% 할인된 가격으로 발행된다. 이 할인 금액 해당 예산을 국비와 지방비로 충당, 지원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부의 예산이 줄어들거나 삭감되면 지방정부는 지역화폐 발행규모와 할인율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더욱이 행안부는 올 2월 ‘2023년 지역사랑상품권 지침 개정안’을 개악했다. 중소기업이라도 연매출액이 30억원을 넘는 사업장은 지역화폐 사용처에서 제외할 것을 지자체에 권고했다. 그렇다면 하나로마트 등 농협 경제사업장에서도 지역화폐 사용이 제한된다. 이는 적합한 사용처가 많지 않은 농촌지역 시장경제와 민생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무지하고 무책임한 조치이다.

지역화폐란, 지방자치단체나 지역공동체가 해당 지역에서만 유통 가능하도록 발행한 민간화폐를 말한다.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달리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해 유통하는 보완화폐로서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지역경제 재생을 주요 정책목적으로 삼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상황 같은 서 지역적 재난 상황 등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적 목적으로도 요긴하게 발행된다.

지역화폐의 원형은 1820년대 영국의 사회개혁가였던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의 노동바우처(labour voucher)로 거슬러 올라간다. 협동조합적 생산과 소비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용증서를 제안하여 지불수단으로 삼았다. 일정 지역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역화폐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지역화폐는 1983년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 코목스 밸리에서 시행된 지역교환거래소(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실험이 시작이다. 이른바 렛츠(LETS)는 개인(회원) 간의 상호 신용을 기반으로 서비스와 재화를 거래(교환)하는 가상의 공동체 화폐라 할 수 있다.

초기의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에 대한 대안적 성격이 강했으나, 현대의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대립하거나 경합하지 않는다.. 대체로 지역 순환 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된 지역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굳이 법정화폐가 갖는 범용성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의 공동체 상호간 유통 시스템에 동의한 공동체에 의해 운영되기 마련이다. 제도의 운용을 위해서는 물리적 형태의 실물인 화폐, 카드 등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만한 재원조달이 가능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화폐를 기획, 운영하는 일반적인 운영주체가 된다. 시민사회단체 등이 주도하는 실험적인 지역공동체운동 차원의 민간 사례도 적지 않다.

‘야당대표의 예산’이 아닌 ‘지역주민의 예산’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역상품권 사례가 본격 도입되었다. 2006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성남사랑상품권을 발행, 아동수당, 청년배당 등을 지원하는 정책수단으로 활용했다. 현 야당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지역 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처음 도입해 일명 ‘이재명표 예산’으로도 알려졌다. 이후, 제도가 전국 시도에 전파, 2020년에는 17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약 3조원 규모의 제도로 발전되었다.

광역지자체 차원에서는 경기도가 2019년부터 경기지역화폐를 발행했다. 대형마트·백화점·대형매출업소·유흥업소·사행업소를 제외한 지역화폐 동네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하고 있다. 일반발행은 도민 전체가 최대 6% 할인 구매하고, 정책발행은 청년배당·산후조리비·아동수당과 같은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받는 형태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을 추진하는 정치적인 배경을 염려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혹여, 성남시와 경기도의 사례를 추진했던 현 야당대표의 대표적 지역정책에 대한 괜한 거부감이나 견제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야당은 지역화폐사업을 옹호하고 있어 지난해처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감된 예산이 부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해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지난해에는 소관부처가 올린 예산을 기재부가 삭감했으나 올해는 아예 소관 부처에서부터 예산을 폐기했다. 소관부처가 폐기한 예산 사업을 기재부 심의 과정에서 재론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기재부는 2024년 예산안을 8월 말에 확정한다.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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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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